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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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여행 이야기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

금동원(琴東媛) 2017. 3. 16. 01:25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관은 대만을 여행하는 관광객의 70% 이상이 가장 기대하는 곳이며,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라고 한다. 워낙 많은 진기한 보물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 모든 것을 살펴보려면 며칠이 걸려도 다 보지 못 할 것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유명 작품이나  박물관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작품들을 시대적으로 대충 보고 돌아 올 수 밖에 없다. 여행지 어느 곳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해도 똑같이 느끼는 아쉬움이자 여행객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화교 출신의 현지 가이드에게 전해들은 몇 가지 정보를 소개하면 첫째, 예전에는 박물관 안에 있는 작품들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카메라 자체를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었다. 지금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여 몇가지의 진기한 작품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박물관은 어디나 대부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작품들을 전시해놓는다. 때문에 선사시대에서 부터 시작하여 고대와 근대까지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은 1층부터 시작) 이렇다보니 동선의 구조상 관람객들이 분산되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시대적 유명작품들을 골고루 보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 시대를 섞어 전시장을 재배치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선사시대와 송나라 혹은 명나라와 청나라 뭐 이런식이라고 한다.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꼭 보고 와야 할 10대 보물은 이 박물관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 코너이다. 실제로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정교하고 대단한 작품들이다. 다만 많은 국보급 보물들은 특별 관리를 하기 때문에 일반 관람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청나라 육형석'은 전시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청나라 취옥백채'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코너였으며, 정밀하고 사실적인 세공에 새삼 감탄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에 전시를 시작했다는 비장의 새 전시 작품 '서태후의 옥병풍'은 화려함과 정교함, 색감이 주는 화려하고 신비로운 호사스러움에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그 외에 '양귀비 조각'과 청동 그릇으로 만든 땅문서등이 인상적이다.서태후의 옥병풍,취옥백채의 옥 원석 모형, 서주 말기의 모공정등... 일일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면면히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영국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침략과 노략질로 가져다 놓은 각 나라의 보물들을 자신들의 문화예술품의 일부 인양 전시해놓은 뻔뻔스러운 태도)에서 유물들을 보면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이 있었다. 대만의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순전히 중국의 것이니 그 오천년 역사와 예술적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박물관의 명칭도 장제스 총통의 호인 '중정(中正) 박물관'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여담이지만 장제스 총통이 중국을 탈출할 때, 군함 8척에 싣고 나온 60여만 종의 보물들은 당시 군인들의 도움 없이는 운반이 불가능 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당시 군인들이 보물 운반이 아닌 전쟁에 투입되었다면 혹시 중국이 공산화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나라는 농담도 한다고 한다. 진위가 어찌되었건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대만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몇 시간이고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는 자유 여행을 권하고 싶다. (참치)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

    궈리 구궁 보우위안 , Taiwan National Palace Museum , 國立故宮博物院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궈리 구궁 보우위안, 國立故宮博物院)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궈리 구궁 보우위안, 國立故宮博物院)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궈리 구궁 보우위안, 國立故宮博物院)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궈리 구궁 보우위안, 國立故宮博物院)

 

 

   타이완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인 국립 고궁 박물원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전시품은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네 왕조의 황실 유물로, 본래는 중국 베이징의 고궁 박물원 등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948~1949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해 온 것들이다.

   박물관은 20만 6천m2의 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본관은 중국 궁전 양식의 4층 건물로 녹색 기와와 황색 벽면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여러 동의 부속 건물이 있으며, 본관 뒤로 보이는 산의 중턱에는 지하 수장고를 지어 귀중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값을 따질 수 없는 오천 년 역사의 중국 보물과 미술품 69만 점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전시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아 인기 있는 것들은 상설 전시관에 전시하고 옥, 도자기, 회화, 청동의 보물들은 일정 기간을 두고 테마를 바꾸어 가며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일 년 내내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쉬는 날이 없이 개방하며, 매일 여러 나라 언어로 가이드 투어를 실시한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입구에서 카메라를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고궁 박물원 투어를 결정했다면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 번에 다 보겠다는 욕심을 부리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유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전시관마다 차근차근 다 돌아보려고 한다면 반도 안 돼 포기하게 된다. 고궁 박물원을 방문하기 전 홈페이지에서 미리 전시품들을 살펴보고 꼭 보고 싶은 목록을 미리 작성하고 위치를 확인한 후 관람하는 것이 좋다. 또는 고궁 박물원 도착 후에 우선 박물관 지도를 잘 살펴보면서 가장 보고 싶은 유물부터 찾는 것이 현명한 관람 요령이다. 그래도 짧은 일정이 아쉽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한국어로 자세히 소개된 고궁 박물원 책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또한 오래 서 있어야 하므로 불편한 신발은 곤란하다는 점도 기억하자.

  가격
일반 : NT$250
국제 학생증을 소지한 학생 및 유스트래블 카드 소지자 : NT$150
취학 전 아동, 장애우 및 동행하는 보호자 1인 무료
무료 관람일 : 1일 1일 신정과 정월 대보름, 5월 18일 세계 박물관의 날, 9월 27일 세계 관광의 날, 10월 10일 타이완 국경일 등 5일.         

                                            

     

국립 고궁 박물원 층별 소개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 1층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 2층

 

타이완 국립 고궁 박물원 3층

 

 

  ◆고궁 박물원에서 꼭 봐야 할 주요 전시품 TOP 10

  청나라 고종 황제의 옥새(碧玉璽)

  고종[1711~1799, 이름 홍력(弘曆), 연호 건륭(乾隆)]은 옹정(雍正) 황제의 넷째 아들로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나 중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황제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고궁 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대부분이 건륭 황제가 수집한 것들이기 때문에 서화와 기물, 도서 문헌에서 고종의 낙관과 인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청나라 고종 황제의 옥새(碧玉璽)

 

  당나라 회소(懷素)의 자서첩(自叙帖)

  회소는 8세기 말에 활동한 승려로서 성정이 소박하면서도 호방하고 술을 몹시 좋아해 취할 때마다 붓을 들어 초서를 쓰곤 했다. 〈자서첩〉은 당나라 서예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날아갈 듯한 운동감이 서양 현대 예술의 추상 회화와 견줄 만하다.

  당나라 회소(懷素)의 자서첩(自叙帖)

 

  서주(西周) 말기의 모공정(毛公鼎)

  ‘정(鼎)’은 세발솥을 뜻하는데, 원래 고대에 고기를 삶는 냄비였던 것이 후대에 와서는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기물이 되었다. 모공정은 안쪽에 500자에 달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문장이 고아하고 서체도 뛰어나 국보로 칭송받는다.

서주(西周) 말기의 모공정(毛公鼎)

 

  당나라 궁악도(宮樂圖)

  궁중에서 10명의 후궁이 커다란 사각형 탁자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차를 마시거나 돌아가며 시를 읊거나 독특한 동작을 하는 유희를 통해 흥겹게 술을 마시고 있으며, 가운데 위치한 네 사람은 음악을 연주하여 흥을 돋우고 있다. 인물들의 도취된 표정이나 탁자 밑에 있는 강아지의 편안한 자세를 볼 때 무척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궁악도(宮樂圖)

 

신석기 시대 룽산(龍山) 문화 말기의 응문규(應紋圭)

‘규(圭)’는 옥으로 만든 홀(笏)을 뜻하며, 왕이나 귀족의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 이 규의 양면에는 아주 연하게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한쪽은 깃털을 꽂은 관을 쓰고 있는 얼굴 문양이고, 다른 한쪽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의 형상과 귀걸이를 한 여인의 모습이다. 청나라의 건륭 황제는 이 응문규를 매우 좋아하여 나무 받침을 제작하고 규의 표면에 자신이 지은 시와 옥새 문양을 새기기도 하였다.

신석기 시대 룽산(龍山) 문화 말기의 응문규(應紋圭)

 

  신석기 시대의 채도(彩陶)

  최초의 중국 도자기는 채도와 흑도(黑陶)에서 출발하였다. 채도는 매끈하게 문지른 오렌지색 질그릇 위에 천연 광물질 안료인 자석과 산화망간으로 도안을 그려 불에 굽는다. 매우 풍만하고 호방하며 안정적인 조형을 보이는 이 도기는 원시 예술의 거칠고 소박한 미감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채도(彩陶)

 

청나라 취옥백채(翠玉白菜)

취옥백채는 고궁 박물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흰색과 녹색을 띤 옥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배추라는 친근한 소재를 표현하였다. 배추 잎에는 여치와 누리가 앉아 있는데, 둘 다 번식력이 뛰어난 곤충이다. 신부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황비에게 자손이 많아 대대손손 황실의 혈통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청나라 취옥백채(翠玉白菜)

 

청나라 진조장(陳祖章)이 조각한 감람핵주(橄欖核舟)

청대의 궁정 장인 진조장이 길이가 1.5인치에 불과한 올리브 씨에 조각한 작은 배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배 위에 탄 쌀알 크기의 인물 8명은 물론 여닫이 창문과 탁자, 의자, 심지어 탁자 위의 잔과 접시까지 완벽하게 조각해 냈다. 심지어 배 밑에는 소동파의 〈후적벽부(後赤壁賦)〉 전체 300여 자까지 새겨져 있다.

청나라 진조장(陳祖章)이 조각한 감람핵주(橄欖核舟)

 

청나라 육형석(肉形石)

신선하고 육즙이 많은 ‘동파육(삼겹살 조림)’과 너무나 똑같아서 보는 이들의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층 한 층 다른 색깔로 형성된 천연 마노를 재료로 삼아, 본연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색을 입히고 정교하게 조각하여 모공과 피부결까지 표현해 낸 진귀한 작품이다.

청나라 육형석(肉形石)

 

청나라 중기 상아로 조각된 사층투화제식합(四層透花提食盒)

상아로 만든 4단 찬합이다. 뚜껑의 무늬 장식에는 인물과 동물, 새, 초목, 집, 정자, 배 등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종이보다도 더 얇고 투명하며 정교하고 우아하게 장식된 이 상아 조각품이 정말로 음식물을 담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 조형만큼은 찬합으로서의 실용성을 구현했다.

청나라 중기 상아로 조각된 사층투화제식합(四層透花提食盒)

 

 

 → 여기 부터는 참치가 찍은 사진

 

 그 유명한 취옥백채- 두 마리의 여치와 한 마리의메뚜기가 함께 조각되어 있다. 찾아보시라!

 

 

 

 

비사-오래 전 우리나라 종이 성냥갑에 상표로 쓰였던 동물이다

 

 

 

 

 

 

동자 배개- 다산을 기원하며 신혼부부들의 신방에 넣어주었던  아기의 표정이 앙증맞게각된 돌배개이다

 

 

실제 양귀비를 조각한 것이라고 함- 그 당시 귀여운 돼지(?)라는 별명이 있었다는데, 발이 기형적으로 작았다고 한다.

전족의 유래라는 확인되지 않은이야기와 함께.

 

 

3대에 걸쳐 상아로 조각한 이 작품의 용도와 실제 의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상아로 조각한 이 작품은 실제로 보면 입이 쩍~~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무한능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서태후의 옥병풍-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서주(西周) 말기의 모공정(毛公鼎)

 

 

 

 

 

 

 

 

 

 

대대 손손 물려주려고 종이 문서가 아닌 쇠로 된 그릇에 글씨로 토지에 대한 소유건을 기록해 둔 작픔-썩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관람이 끝나면 나오는 후문 쪽(뒷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