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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

금동원(琴東媛) 2018. 5. 29. 22:28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

Photo: Patti Perret, 1984

 

  옥타비아 에스텔 버틀러(Octavia Estelle Butler, 1947년 6월 22일 - 2006년 2월 24일)는 미국의 과학소설작가이다.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1995년 과학 소설 작가로서는 최초로 천재 상(Genius Grant)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십을 수상했다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서 구두닦이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데다 난독증에도 시달렸지만 책과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 창작을 즐기던 버틀러는 열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대학과 워크숍을 거치며 글쓰기를 향한 열망을 키웠다.

 

  1976년 첫 작품 《패턴마스터》를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로도 《내 마음의 마음》《야생종》《진흙방주》《새벽》《성인식》 등을 선보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버틀러는 이제껏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SF계에서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둔 흑인 여성 작가라는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아울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판타지, 과학을 융합한 ‘아프로퓨처리즘’의 대표 주자로 손꼽힌다. 페미니스트로서 인종과 젠더 문제를 작품에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SF계의 ‘그랜드 데임’으로 추앙받아온 옥타비아 버틀러는 2006년 2월,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위키백과)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흑인 여성 작가, 주류의 시선이 놓친 것을 상상하다

  한국일보 입력 2017.07.08. 04:43 수정 2017.07.10. 15:26
 
 

  <18>옥타비아 버틀러

 

  #1

  빈곤층 흑인 가정부의 내성적 딸, 용돈 모아 처음 산 책 천문학서적, 전문대 거쳐 30대 초반 작가 돼, 백인 남성 전유물 SF에 새 관점

  #2

  외계의 시각에서 본 인간보고서, 애증 통해 자기모순적 존재 탐구, 인류의 역사와 진보 통찰케 해, 지적 유희서 공감으로 SF 확장

 

  2003년 2월,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시에서는 시민들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해 감상을 나누는 행사를 열었다. 독서 토론은 물론, 강연, 시각예술 전시, 관련 영화 감상, 시 낭송회 등등의 행사가 대학과 도서관, 지역 주민센터, 서점 등에서 한 달간 진행되었다. 이 기간에 4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 책을 읽었는데 이는 로체스터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꼴이었다.

 

  이들이 모두 함께 읽은 책은 흑인 여성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킨’이다. 놀라운 상상력으로 빚어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미국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성찰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독자에게 사회의 진보에 대한 의지와 자부심까지 불어넣어 주는 명작이다. 1979년에 처음 발표된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지역 도서관 등의 추천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SF는 가장 광활한 상상력의 폭을 과시하는 장르지만, 백인 남성의 관점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없지 않았다.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는 비주류 작가의 정체성이 그 한계를 열어졎힐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SF는 가장 광활한 상상력의 폭을 과시하는 장르지만, 백인 남성의 관점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없지 않았다.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는 비주류 작가의 정체성이 그 한계를 열어졎힐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SF 상상력의 새 지평을 열다

 

  ‘킨’의 주인공은 백인 남성과 결혼한 흑인 여성이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단란하게 젊은 부부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주인공은 갑자기 시공간의 틈에 빨려들어 낯선 곳에 떨어졌다가 익사 위기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 준다. 그런데 그 백인 남자아이와 가족들이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19세기 초의 미국, 흑인 노예제도가 엄존하던 시대였다.

  그 뒤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과거로 날아가는 일을 계속 겪으면서 때로는 몇 달이나 몇 년을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가 과거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노예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과거로 갈 때마다 만나는 백인 남자아이 및 그 주변의 백인과 흑인들은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었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오랫동안 거친 끝에 서서히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에게 남는 여운은 무척 강렬하다. 미국인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백인, 흑인, 여성, 남성들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이 작품에서 깊은 울림을 느낄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작가로 데뷔한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SF 창작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작품에 반영되는 세계관이나 가치관도 한계가 있었다. 다른 시공간에 대한 상상,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감, 그리고 그를 통한 현실의 반추 등 SF적 상상력의 미덕이 잘 드러나는 명작들이 꾸준히 나왔지만 엄밀히 따지면 백인과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랬던 SF적 상상력의 한계를 깨뜨린 작가가 버틀러이다.

 

소설 ‘킨’에서 백인 남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주인공 흑인 여성은 노예제가 버젓이 존재하는 19세기 초로 시간여행을 겪으며 차별과 억압을 자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킨’에서 백인 남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주인공 흑인 여성은 노예제가 버젓이 존재하는 19세기 초로 시간여행을 겪으며 차별과 억압을 자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주류의 틀을 뛰어 넘다

 

  버틀러가 청소년일 때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조차 ‘흑인 여성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만류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SF라는 비주류 장르로 성공하기는 더더욱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버틀러 이전에 SF 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얻은 흑인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벨-17’의 작가인 새뮤얼 딜레이니 한 명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넉넉한 집안 환경에서 자라 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문화예술 다방면에 비범한 재능을 보인 남성으로서, 흑인이라는 점만 빼면 버틀러와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반면 버틀러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모든 적대적인 환경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기어이 작가로서 성공했으며, 특히 SF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작품들을 읽은 SF 독자는 현실 역사의 부조리를 겪는 직접적인 당사자, 즉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을 새삼 자각하면서 이를 통해 SF적 상상력의 외연이 더 넓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전까지 SF적 상상력은 주로 지적 유희의 측면에서 향유해 왔지만, 버틀러는 서로 다른 존재들간의 정서적 공감과 소통이라는 접근법을 일깨웠던 것이다.

 

  대표작 ‘킨’이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사회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성찰을 새로운 시각으로 유도했다면, 그의 단편 ‘블러드 차일드’는 외계인과 그에 종속된 인간이라는 확장된 상상으로 같은 주제를 변주한 수작이다. 90년대 중반 국내에 출간된 한 단편집에 수록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이름을 알렸던 이 단편은 노예제도라는 인류 역사의 치부를 SF적으로 재해석한 탁월한 메타포로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근년 들어 새롭게 번역된 작품집 ‘블러드 차일드’에 실린 에세이에 따르면, 정작 버틀러 본인은 노예제에 대한 은유보다는 인간과 외계인의 기묘한 동거라는 설정 그대로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해본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즉, 자신의 모든 작품을 ‘흑인 여성 SF 작가’라는 틀로만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1965년 미 로스앤젤레스 와츠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발단이 돼 흑인 폭동이 일어나 6일간 34명이 사망했다. 이 와츠폭동 후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작가협회가 열었던 무료 작가 워크숍에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작가가 될 기회를 얻었다.  위키미디어

1965년 미 로스앤젤레스 와츠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발단이 돼 흑인 폭동이 일어나 6일간 34명이 사망했다. 이 와츠폭동 후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작가협회가 열었던 무료 작가 워크숍에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작가가 될 기회를 얻었다. 위키미디어          

 

  ○우주를 향한 동경, SF의 본질

 

  버틀러가 SF 작가로서 뛰어난 점은 ‘흑인 여성’이라는 불리한 환경을 작가로 성공하는 전화위복의 요소로 삼았으면서도 결코 그것에 안주하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성별이나 인종 이전에 미지의 우주를 동경하는 한 인간으로서 원초적 상상력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키워왔다. 그가 쓴 에세이에 따르면 어린 시절 가난한 형편에서도 용돈을 모아 처음 서점에 갔을 때, 제일 먼저 구입한 책들 중 하나가 천문학 서적이었다. 이 장면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또 다른 SF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콘택트’를 쓴 과학자 칼 세이건이다. 세이건이 어린 시절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사서에게 요청한 책도 천문학 서적이었다. 이 때 세이건이 ‘스타’에 관한 책을 달라고 했더니 연예인에 관한 서적을 먼저 꺼내주더라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1940년대 미국 동부의 백인 소년 세이건과 1950년대 미국 서부의 흑인 소녀 버틀러는 크게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SF의 원초적 동기인 우주와 별들을 향한 동경, 그리고 다른 세계와 다른 존재에 대한 상상이라는 견고한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형상화하고 싶다는 욕망에 관한 한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버틀러의 작품세계를 성별과 인종적 맥락으로만 해석하려는 관점은 오히려 역차별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더 열린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이 버틀러라는 작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버틀러의 작품들에는 일관되게 감지되는 한 가지 정서적 특징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외계의 지적 존재가 본다면 인간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인류학 보고서 같은 이야기들이다. 인간의 생태학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의 계몽과 진보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 통찰을 버틀러는 ‘애증’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감정을 통해 탐구한다. 사실상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코드인 ‘애증’은 인간 그 자체가 자기모순적인 존재임을 웅변하는 정서라고 할 수 있는데, 버틀러만큼 여기에 천착한 SF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 애증이라는 모순적 정서로 탄탄하게 형성된 관계. 이것이 버틀러 작품세계의 핵심이며, SF적 상상력에 독특한 층위를 더한 비결이다.

  -글: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옥타비아 버틀러

 

  1947년 6월 22일~2006년 2월 24일. 미국의 SF 작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흑인 빈곤층 집안에서 외동으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구두닦이였던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및 독실한 기독교도인 할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하녀 일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 백인 집에 드나들며 인종차별을 경험했으며,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은 성장기를 보냈다. 어머니가 가져오던 버려진 책들을 쌓아놓고 계속 읽었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거나 습작에 몰두하다 10세 때 어머니를 졸라 타자기를 장만했다.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 지역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써서 마침내 30대 초반에 작가로 자리 잡았다. 휴고상 및 네뷸러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창작 기금이 설립되고 2010년에는 SF 및 판타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대표작으로 ‘킨’ ‘블러드차일드’ 외에 ‘야생종’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소개된 책]

 

 

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이수현 옮김/비채 발행

 

 

 ○책 속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케빈에게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어.”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케빈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흐릿하게 회색 바지와 파란색 셔츠가 보였다. 그리고, 케빈은 나에게 손을 내밀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집도, 책도, 전부 다 사라졌다. 나는 난데없이 야외에서, 나무가 자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숲 가장자리, 녹지였다. 앞에는 넓고 잔잔한 강이 흐르고, 그 강 한가운데에서 어린아이 하나가 허우적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빠져 죽기 직전이었다!
--- p.15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둥이였으니까.(…)” 나는 침대에 앉아서 루퍼스를 건너다보았지만, 그 눈빛에서는 흥미와 되살아난 흥분밖에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날 두고 뭐라고 했다고?” 나는 물었다. “그냥 못 보던 검둥이였다고. 엄마 아빠 둘 다 당신을 본 적이 없었어.” “자기 아들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그런 표현을 쓰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루퍼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나는 루퍼스를 노려보았다. “뭐가 잘못됐어? 왜 화가 났어?” “너희 어머니는 언제나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니, 루피?”
--- p.38

  와일린은 나를 조금 더 끌고 가더니 세게 밀쳤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채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고, 첫 번째 타격이 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채찍은 떨어졌고, 달군 쇠처럼 내 등을 내리쳤다. 그것은 얇은 셔츠를 뚫고 내 살갗을 지졌다……. 나는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와일린은 머리에 총을 겨눈다고 해도 일어설 수 없을 몰골이 될 때까지 나를 때리고 또 때렸다. 나는 계속 기어서 채찍질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었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비명을 질렀는지, 그냥 흐느끼기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오직 고통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 p.202

  ○출판사 리뷰
  SF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은 ‘그랜드 데임Grand Dame’ : 옥타비아 버틀러
 
  옥타비아 버틀러는 SF의 프레임을 전복시킨 작가다. SF는 인간의 상상력을 아무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임에도, 마치 백인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된 채 성별과 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뽐냈다. 하지만 옥타비아 버틀러는 그 장벽을 딛고 올라가 우뚝 섰다. 1976년에 첫 작품 《패턴마스터》를 발표한 이래,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며 자신만의 독보적 위치를 확립한 것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인종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작품에는 어떤 백인 작가도 감히 알지 못하던 세계가 담겼고, 작가 자신이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였기에 젠더 문제를 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버틀러는 2006년 돌연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라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SF 역사에 새겨진, 가장 깊고 뚜렷한 발자국!
 
  1976년 6월 9일은 다나의 생일이었다. 약혼자 케빈과 동거를 시작한 다나는 짐 정리로 분주하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몸을 일으킨 곳은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속이었다. 그곳에서 호수에 빠진 한 소년을 발견해 구해낸 다나는 몇 분 뒤 다시 1970년대로 돌아온다. 당황하는 것도 우왕좌왕하는 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또 과거로 끌려간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일이 당연시되던 시대, 1815년.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나는 한 명의, 혹은 한 마리의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과거의 세상에서 만난 소년(루퍼스)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작품은 출간 즉시 독자와 평단의 이목을 끌었고, 오래지 않아 옥타비아 버틀러의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타임슬립과 노예.인종 문제라는, 결 다른 모티프 간의 결합은 뜨거운 반응을 촉발하며 미국에서만 45만 권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SF로는 이례적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수십 년째 각종 북클럽에서 필독서이자 베스트 추천 소설로 꼽히고 있다.

  출간 후 40여 년, 스스로 클래식 반열에 오른 걸작!

  1990년대 후반, 국내에 버틀러를 최초로 소개한 서울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는 ‘작가 해설’을 통해 《킨》은 “외계의 지적 존재가 본다면 인간에 대해 상당 부분을 알 수 있을 법한 하나의 인류학 보고서 같은 소설”이라고 평했다. 버틀러는 혹독하게 부려먹기 위해 일상적으로 채찍질을 하는 모습, 여자 노예를 성적으로도 유린하는 모습, 부모(노예) 몰래 아이를 팔아버리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즉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기인한 일방적 폭력,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등 인류의 치욕적 역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인종과 젠더 문제는 현재까지 완벽한 해결을 이룩하지 못했기에, 소설이 전하는 충격과 울림은 출간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와 더불어,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가서 자신의 조상을 만난다는 기본 줄거리가 자아내는 소설적 재미도 결코 놓칠 수 없다. 다나가 타임슬립을 하는 이유는 ‘죽음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여기서 비롯되는 박진감과 긴장감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과 미움이 온통 뒤섞인, ‘애증’이라는 인간 특유의 감정이 등장인물 간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더 높인다. SF가 다소 생소한 독자이더라도, 《킨》을 통해 ‘그랜드 데임’의 힘을, 시간의 무게에도 잊히지 않고 외려 스스로 클래식 반열에 올라선 작품의 저력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을 향한 찬사들
  버틀러는 SF라는 틀에 가둘 수 없는 리얼리스트다. 사회 비평의 디테일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작품 속 여성 캐릭터는 살아 움직일 듯 생생하다._빌리지 보이스

  사랑과 증오, 인종적 딜레마를 녹여낸 가장 강렬한 예술 작품! 이 소설은 독자의 인생을 전복시킬 것이다._LA해럴드 이그재미너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작품이다. 끝까지 읽기 전까진 결코 내려놓을 수 없다._에센스
노예 문제는 아직도 수많은 논쟁을 양산한다. 버틀러는 문학이 이 뜨거운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완벽한 모범을 보여준다._LA타임스
이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_월터 모슬리(소설가)

 

 

 

 『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비채 발행

 

 『야생종』/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이수영 옮김/오멜라스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