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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고백/레프 톨스토이

금동원(琴東媛) 2022. 9. 26. 15:39

 

《고백》

-레프 톨스토이 저/홍창배 역 | 바다출판사 

 

 

 

◎책 소개

 

“나는 어떤 행위에도, 나의 모든 삶에도 어떠한 합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내가 애초에 어떻게 이것을 깨달을 수 없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가 이 모든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곧 여러 가지 질병과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나에게 찾아올 것이고(그리고 이미 왔다가 갔다), 악취와 구더기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위가 어쨌든지 조만간 모두 잊힐 것이고,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안달한단 말인가? 인간은 어떻게 이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 점이 정말 놀랍다!” 톨스토이는 반평생을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 보내며 그의 후기 작품의 토대를 이루는데, 그 시작이 『고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속으로
 
 

“나의 삶은 멈추었다. 나는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고,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마시지 않을 수 없었고, 잠을 자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삶은 없었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생각되는 그런 욕구가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원했다면, 내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든 못 시키든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 p.29, 「4장」 중에서

 

“나도 나를 찢어 죽이려 하는 죽음의 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생명의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다. 나는 왜 내가 이런 고통에 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예전에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꿀을 빨아 먹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꿀은 이미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 흰쥐와 검은쥐는 밤낮으로 내가 붙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다. 나는 분명히 용을 보고 있고, 나에게 이미 꿀은 달지 않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한 가지, 그건 피할 수 없는 용과 쥐들이다. 나는 용과 쥐들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없다. 이는 우화가 아니라 진실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모두가 이해하는 진리다.”

--- p.33~34, 「4장」 중에서

 

“이성적 지식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인식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의 삶은 정지되었고, 나는 내 삶을 끝내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과 전 인류를 돌아보고 난 후, 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그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껏 삶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 p.74, 「9장」 중에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삶이 무의미하거나 악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이토록 명백한 진리의 언저리에서 서성였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삶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는 몇몇 기생충 같은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86, 「11장」 중에서

 

“나는 우리 계층의 삶을 거부했다.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단지 거짓의 삶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풍요로운 삶의 조건 때문에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생충 같이 사는 소수의 삶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순박한 민중의 삶과 민중이 부여한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 p.98, 「13장」 중에서

 

“종교적 가르침 속에 진실이 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적 가르침 속에 거짓이 있다는 것도 의심할 수 없다. 나는 진리와 거짓을 찾아내어 이 둘을 구별해야만 한다.”

--- p.118, 「16장」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는 ‘죽음’이라는 공포와 대면하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숙고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삶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급기야 자살의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톨스토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가진 이성적 지식(학문)과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지식의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 죽은 자가 행복하고, 죽음이 삶보다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만약 내가 삶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단순히 깨달았다면, 나는 이것이 나의 운명임을 알고 조용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 하지만 나는 숲에서 길을 잃어버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그는 길로 나오려고 허우적댔고, 걸음을 뗄 때마다 더 헷갈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우적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무서웠다. 나는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고 싶었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앞에서 공포를 느꼈고, 내가 처한 상황보다 이 공포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이성적 지식의 오류와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톨스토이는 지식의 숲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교양 계층의 사람들이 지닌 무지와 쾌락, 나약함을 보고 또다시 절망한다. 좌절해 있던 톨스토이는 열심히 살아가려는 민중의 삶 속에서 결국 진리를 발견하게 되고, 진정한 삶의 목적과 참된 신앙을 찾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꿔버린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삶과 문학에서 제2의 탄생이라고 불리는 ‘전향(轉向)’으로, 이러한 전향의 과정을 《고백》을 통해서 진솔하게 담고 있다.

 

제2의 탄생, 톨스토이의 삶과 문학은 《고백》의 전과 후로 나뉜다

후기 톨스토이 문학의 기반

 

톨스토이의 삶과 문학을 《고백》(1879~1882)이 나오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고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톨스토이는 《고백》에서 자신의 지난 삶과 신앙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치열하게 고뇌하면서 삶과 문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 중심에는 삶의 의미와 목적의 탐구, 그리고 교회와 교회신앙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고백》 집필 전, 톨스토이의 대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1873~1877)에서는 당시 톨스토이가 겪었던 정신적 위기가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다. 《안나 카레니나》 속 톨스토이의 제2의 자아라고 불리는 주인공 레빈은 자기 세계관의 기반을 고통스럽게 의심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끊임없이 찾는다. 이 과정에서 레빈은 농민들의 소박한 삶과 신앙을 접하면서 기존의 자신이 속한 계층의 삶이 모순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과 교회의 독선과 배타성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레빈의 모습이 톨스토이가 《고백》에서 가진 주된 고민과 연결이 되고, 훗날 후기 톨스토이 문학의 꽃인 《부활》(1898~1899)로 이어지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과 죽음을 통해 인생에 대한 답을 찾다

 

톨스토이는 《고백》을 중심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학문적 지식(문명)과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영혼)의 영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그가 결국 찾아낸 것은 ‘도덕’, 즉 ‘선善’이었다. 내 마음속의 도덕(선)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의 작품 《부활》의 주인공인 네흘류도프를 통해 톨스토이는 지난날의 속죄와 도덕적 ‘부활’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회심의 바탕에는 《고백》이 있다.

 

거짓된 삶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을 거부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톨스토이의 여정은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고뇌와 자기반성의 모습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거장의 내면과 마주할 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이 독자들로 하여금 100년 넘게 톨스토이 작품을 읽게 하는 힘이자, 톨스토이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소개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역자: 이항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투르게네프의 후기 중단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 단국대학교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의 정치학 : 투르게네프 소설 연구』『사냥꾼의 눈, 시인의 마음』『러시아 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고 러시아 문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썼다. 옮긴 책으로 미르스키의 『러시아 문학사』, 투르게네프의 『귀족의 보금자리』와 『첫사랑』, 부닌의 『아르세니예프의 생애』『숄로호프 단편집』『추콥스키 동화집』『내가 처음 만난 톨스토이』『학교에 간 필리포크』『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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