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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영화 이야기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금동원(琴東媛) 2022. 10. 8. 15:04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A Man Who Paints Water Drops, L'homme qui peint des gouttes d'eau, 2020

-다큐멘터리 /프랑스, 한국

 

 

 

50년간 묵묵히 '물방울'만을 그리며 물방울 작가로 사랑받은 화가 김창열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는 기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예술가인 '인간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아들은
그리움의 시간을 살다 간 그의 삶을 담는다

 

 

[ HOT ISSUE ]

 

매 경매마다 최고가 경신!

백남준, 김환기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김창열 화백!

전쟁, 죽음, 분단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삶을 담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외삼촌에게 각각 서예와 데생을 배우며 미술과 가까운 유년기를 보냈다.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공부하는 등 화가로의 활동도 잠시, 김 화백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한국의 역사적 격동기를 몸소 지나오며 탱크에 짓밟힌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비명, 곪아버린 틈 등 상처받은 개인의 기억 안에 뒤엉켜 있는 시대적 상흔들을 비구상의 공포로 재현한다.

이후 서울, 제주, 뉴욕 등 여러 도시를 거친 끝에 1969년 백남준의 부름으로 프랑스에 정착한 김 화백은 캔버스 뒷면에 뿌려 놓은 물이 반사되어 생긴 ‘물방울’의 신비로움에 매료되고, 이후 약 50년간 오로지 ‘물방울’만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1972년 ‘살롱 드 메展’에서 첫 번째 ‘물방울’ 작품인 ‘밤에 일어난 일(Event of the Night)’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김 화백은 백남준, 김환기, 박서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함은 물론, 문화 예술 발전을 통한 국가 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2012년 은관문화훈장 및 한국 화가 최초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레지옹 도네르 오피시에를 받았다. 지난 2021년 타계 이후에는 매 경매마다 최고가를 경신하며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추산 2021년 낙찰총액 전체 2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 추상미술 거장으로 입지를 견고히 했다.

김창열 화백에 관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화가는 모르더라도 물방울 그림은 알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그의 삶의 궤적을 충실히 담아낸다. 그리고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화백의 사소한 일상과 내밀한 모습까지 포착한다. 영화는 김창열 화백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트라우마와 ‘물방울’을 마주하던 때 그리고 고향 ‘맹산’을 향한 향수 등 화백을 이루는 기억의 조각들을 천천히 맞춰 나간다. 또한,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눈물을 담으며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인간’ 김창열이 탄생시킨 ‘물방울’의 세계를 함축한다. 여기에 영화 속 한국 근현대사 아카이빙 자료들은 역사의 광풍 앞에서 스스로를 구원한 한 인간을 향한 깊은 몰입을 불러일으킨다.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이자 올라운드 아티스트 김오안 감독 연출 참여!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아버지에 관한 시네마 에세이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연출을 맡은 김오안 감독은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이다.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의 침묵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기묘함을 풍겼던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에 풀어내며, 늘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의 침묵 아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한다.

김오안 감독은 ‘어느덧 연로해지고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버지와 영화를 찍게 된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영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5년여에 걸쳐 완성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는 감독의 내레이션과 그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부자간의 문답으로 흘러간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 대신에 달마대사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산타클로스보다는 ‘스핑크스’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부터 성인이 된 현재까지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아들은 익숙하지만 결코 잘 알 수 없는, 가깝고도 먼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김오안 감독이 알고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고 고독하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곳에서 벗어난 어떤 틈을 지닌 사람이었다. 감독은 그런 아버지를 이루는 알 수 없는 침묵과 균열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그를 알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들이 아버지의 시간으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화백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죽음의 트라우마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조우한다. 감독은 침묵 안에 커다란 공포와 비명을 간직한 아버지를 발견하고, 자신 역시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기묘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오안 감독은 202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업을 안 했다면 정말 큰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촬영하는 동안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는데 지금 보니 아버지가 저와 형을 낳았을 때 지금 저의 나이더라. 그 당시의 아버지와 동질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라며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마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던 아버지에 관한 복잡한 퍼즐을 맞춰 나가는 과정이자, 어느덧 또 다른 예술가가 된 아들이 써 내려간 ‘인간’ 김창열에 관한 시네마 에세이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데뷔작으로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캐나다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공식 초청!

유수 영화제를 휩쓴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김오안 감독과 브리짓 부이요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장편 데뷔작이다. 김오안 감독은 포토그래퍼와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 연출을 맡은 브리짓 부이요 감독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이자 시노그래퍼이다. 김오안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영화와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전에도 브리짓 부이요 감독과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김오안 감독은 그에게 바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영화에 참여하게 된 브리짓 부이요 감독은 오히려 김오안 감독에게 아버지와 아들만이 할 수 있는 내밀한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대중에게 친숙한 아티스트 김창열 화백의 모습부터 침묵하는 아버지와 그를 이해하고 싶은 아들 간의 긴밀한 대화를 담아내며 깊이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다.

영화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 중 하나인 제28회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트스케이프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티스트와 아티스트 간의 대화이자 초상화”라는 평단의 화제와 주목을 받았으며,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 신진감독상 수상했다. 또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를 위한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국제 영화제인 제61회 크라쿠프영화제 국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영화에 수여하는 실버혼상(은각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크라쿠프영화제는 “상처를 간직한 한 남자와 그의 예술에 관한 아름다운 명상 같은 에세이”라는 평을 남기며 인물의 삶에 아름답게 접근하는 영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밖에도 영화는 제15회 코르시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젊은심사위원상 수상 및 제24회 바르셀로나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3회 텔아비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2회 뉴욕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유서 깊은 유수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어 전 세계 영화제 관객들과 만났으며, 오는 9월 28일 국내 개봉을 시작으로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 MOVIE KEYWORD ]

 

#물방울

감독은 아버지인 김창열 화백에 대해 “자신의 화실에서 마치 연금술사처럼 오랜 세월 연구 끝에 그가 본 모든 흐르는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변형하기까지 평생 일했다”, “하나의 물방울을 그리는 건 하나의 구상이지만 십만 개의 물방울을 그리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종류의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김창열 화백과 ‘물방울’의 만남은 그가 파리에 정착한 첫해에 일상생활과 작업을 병행하던 마구간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뒤집어 놓은 그림 위에 뿌려둔 물에 맺힌 수많은 ‘물방울’이 그 자체로 그림이 되어 빛나는 것을 보며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약 5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오로지 ‘물방울’에 천착한다. 마대, 신문, 천자문, 나무, 한지 등 다양한 질감과 글자에 물방울을 결합시키며 [물방울], [회귀] 시리즈 등의 대표작을 탄생시킨 그는 오랜 시간 ‘물방울 작가’로 명성을 떨치며 “아름다운 물방울을 그려낸 추상미술 거장” (The New York Times), “추상미술의 선구자” (OCULA)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김창열 화백은 그의 ‘물방울’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물방울을 그리는 건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는 거다”라고 밝히며 자신이 경험했던 비극을 씻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삶을 시사함은 물론, 관객들에게 늘 침묵으로 일관했던 김창열 화백이 자신의 그림에 담긴 진짜 의미를 스스로 털어놓는 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달마대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는 김창열 화백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가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달마대사’인데, 그는 화백이 오랜 시간 마음 쏟은 인물이자 그의 삶의 동반자 같은 역할을 하며 화백의 인생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김오안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자르는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김창열 화백이 매료되곤 했던 이야기는 주로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결단을 감행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는 달마대사의 일화를 통해 자신 안에 내재된 집념과 폭력성을 잠재움과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결의를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과 만났고, 영화는 화백이 수만 개의 ‘물방울’을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을 그가 스스로 택한 ‘예속’이자 ‘인내심’ 그리고 예술을 향한 ‘야심’이라고 설명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물방울’은 그토록 원하던 달마의 순간을 맞이하는 과정이자 결과이며, 그가 노자의 사상처럼 ‘무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만물의 본질인 ‘물방울’에 머물고 탐구했음을 알아차린다.

 

 

 

 

#음악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속 대다수의 음악은 김오안 감독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포토그래퍼, 영화감독 등의 커리어와 함께 밴드 ‘Chinese Army’의 프론트맨 그리고 ‘Oan Kim & The Dirty Jazz’ 등의 앨범을 발매한 재즈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물방울’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선율과 동•서양이 결합된 개성 넘치는 사운드 등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이며 아트 무비로의 매력과 몰입을 배가시킨다. 특히, 영화 속에는 김창열 화백이 직접 노래 부르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김오안 감독은 화백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와 다양한 사운드와 혼합하며 기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한, 피아노와 관현악 등 여러 악기의 소리를 이용해 극의 풍성함을 극대화하는 영화는 김창열 화백의 다양한 순간과 그림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며 한 편의 시처럼 고요하게 흘러가는 듯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