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모자 임영조 나의 새해 소망은 진짜 ‘시인’ 이 되는 것이다 해마다 별러도 쓰기 어려운 모자 하나 선물 받는 일이다 ‘시인’ 이란 대저, 한평생 제 영혼을 헹구는 사람 그 노래 멀리서 누군가 읽고 너무 반가워 가슴 벅찬 올실로 손수 짜서 씌워주는 모자 같은 것 돈 주고도 못 사고 공짜도 없는 그 무슨 백을 써도 구할 수 없는 얼핏 보면 값싼 듯 화사한 모자 쓰고 나면 왠지 궁상맞고 멋쩍은 그러면서 따뜻한 모자 같은 것 어디서나 팔지 않는 귀한 수제품 아무나 주지 않는 꽃다발 같은 ‘시인’ 이란 작위를 받아보고 싶다 어쩌면 사후에도 쓸똥말똥한 시인의 모자 하나 써보고 싶다 나의 새해 소망은. -제6시집 『시인의 모자』, (창작과 비평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