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는 길 · 5
임영조
가다보면 길들은 자주 끊기네
끊어진 길은 때로 아련한 기억 속
메꽃빛 등불로 사운대거나
벼랑 끝에 이르면 언어로 집을 짓네
먼 마을 스치는 구름의 기척에도
마음 벽 쩍쩍 금이 가는 집
온 채가 제 무게로 기우뚱거려도
모든 길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네
가파른 삶은 때로 길을 비뚤게 하고
고행은 서역처럼 멀고도 쓸쓸하나
더러는 가슴 아린 열락을 덤으로 얻네
이녘은 조용한데 밤낮 치대는 파도
그 소리 좀 엿듣다가 오던 길 놓고
한결 순해진 귀로 그대에게 가는 길
아직도 위험한 불씨를 감춘
그대 뜨거운 언어의 중심으로 들어가
나 화려하게 자폭하리라, 그 후는
바다에 떠 출렁이는 그리움되리
오래된 시집처럼 헤어진 , 그래서
눈길보다 추억이 먼저 닿는 섬
허나, 제부도는 늘
물때를 알고 가야 길을 내주네
-제 5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0)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도의 비양도
'시인의 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 / 정진규 (0) | 2017.05.27 |
---|---|
시인의 모자/ 임영조 (0) | 2017.05.21 |
민중/ 파블로 네루다 (0) | 2017.05.17 |
나무 /박목월 (0) | 2017.05.05 |
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0) | 2017.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