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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 시집《여름 낙엽》서평

금동원(琴東媛) 2009. 6. 6. 12:01

금동원의 시집《여름 낙엽》

 

 

 

지난 연말 첫 시집을 출간한 금동원의 <여름 낙엽>(월간문학 출판부)은 제목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온 책이다.

  그림을 그리는 금동원 화백과 이름이 같기도 하고, 고향도 가까운 곳이라 이삼 일을 두고 읽고 있는데, 초년병 치고는 나름 맛이 있는 시들이 많다.

 

빼곡하다//한꺼번에 모두 걸어 나온다/어떤 놈은 빠르게/된통 설쳐대는 놈에게/숨죽이고 누군가의 등뒤로 숨은/다 살아 있지는 않은/입원중/아직 사망은 없다/그러나 다친 몸들이 더 많다/깊은 기억의 물길 속에 갇힌/그래서 꺼내볼 수 없는/포르말린에 생생히 방부된/사랑도 있다/첫키스의 맛은 달지 않아/문을 닫는 순간/한 줄로 가지런히 서 있는 일상//몇 줄 남지 않았다      

                 - 수첩(전문)

 

통상 수첩을 사용하다 보면 매년 일일이 옮겨 쓸 수 없어 몇 년을 두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인의 오래된 수첩도 이제는 더 쓸 곳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다. 거의 모든 면을 사용하여 입원 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쓸모가 없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용도를 폐기하기에는 이르다. 오래 전에 쓰여진 애인의 이름이며, 친구의 이름 가운데, 이제는 기억만 남아있는 이도 있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의 연인도 있다. 사랑도 있다. 그러나 이제 새 수첩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는 일상을 정리한다.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날/미련 탓인가/지난 봄의 목련은 더욱 그립고/벌써 지루해지는 샐비어는/빗속에서 더욱 붉다//슬픔도 시리게 화려한 날/눈물은 사치스러워/흩어진 날들은 줍는다는 게/숨쉬는 일만큼 쉽지 않고/벌써 매미는 울기 시작했다//조로증(早老症)에 걸린 계절들/이미 바람이 불기 시작한/가로등 아래에서/일곱 살의 기억을 찾아/기차를 탔다                            

       -여름 낙엽(전문)

 

여름이 되면 봄날의 목련이 그립다. 아니 여름날의 샐비어는 너무 화려하지만, 떨어지는 느낌은 왠지 초라하다. 여름은 슬픔도 시리게 화려하다. 그러기에 눈이 부신다. 그러나 이내 가을의 문턱에 서니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먼 여행을 떠난다. 여름 낙엽은 여행길의 동반자가 되어 조로증에 걸린 늙은이인 나와 함께 떠난다.

 

허물을 벗은 시간이/또 하나의 시간으로 변태하는 날/막 울음주머니가 성숙된 개구리가 운다/대지는 충분히 젖어/완전한 몸으로 환생하고/더디기만 하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청춘이 그립던 봄날은 잊어도 되겠다/태양에 익어 버린 여름날의 바람소리가/뜨겁게 달아오르며 휘파람처럼 퍼진다/이제는 달라지고 싶다고 외치는 순간/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장마(전문)

 

봄의 허물을 벗고 여름에 성큼 자란 개구리는 빗소리에 잠을 깬다. 비가 대지를 적시면 올챙이의 몸은 완전한 개구리가 되어 도약을 한다. 개구리여! 올챙이 시절의 기억은 모두 잊고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실컷 울어보아라! 너의 울음소리에 놀라 하늘은 사흘 밤낮 비를 내렸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성장한 개구리를 위해

 

목욕이 끝나면 망아지처럼 벌거벗고 뛰어다니던/작은놈이 별안간 알을 가리고 욕탕을 나옵니다/이유를 물어 보니 사춘기가 왔다는 군요/사춘기가 되면 가릴 곳은 가리는 거냐고 생트집을 잡으니/이놈 빌그레 웃으며 그것이 조금 커졌다는 겁니다/어디 하루 이틀새 커졌겠냐며 다그치자 요놈 언성을 높입니다/한번 커진 고놈이 이제는 꼼짝 않고 있다고 말입니다/작은아들도 다 키운 것 같습니다/시키지 않아도 소중함을 알아 가고 감출 것은 감추는/아들을 보며 울컥 서운했지만 할 수 없습니다/친진스레 발가벗은 그 웃음과 시절을 이제는 접어야겠습니다/사춘기(思春期)란 엄마에게는 형벌 같습니다/춥고 매워 가릴 데 없는 슬픔 말입니다          

     - 사춘기, 3 (전문)

 

아직 열 살이지만, 자신이 어른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제 아들 연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반항과 격동의 시기인 사춘기를 맞은 아들은 성큼 성장해 있지만, 그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걱정이 앞섭니다. 어린 시절 아이가 가졌던 천진난만한 웃음과 망아지 같은 순진함은 이제 성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부모 곁을 떠나갑니다. 시인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 든 둘째 아들을 보면서 자신은 형벌을 받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춥고 매워 가릴 데 없는 슬픔이라는 벌을 받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향기가 없으면 어떠랴/웃음이 있으면 되지/그냥 마주보고 웃으면 되지//사랑이 없으면 어떠랴/믿어 주면 되지/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언제는 뭐 달랐던 것처럼/그렇게 정들면서 사는 것이지/너도 나도 우리도 다 그런 거지       

   -사람이 좋다(전문)

 

우리들의 세상살이나 결혼한 부부의 평범한 삶을 시어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향기가 무슨 소용있노? 웃음이 있으면 되지. 사랑이 무슨 소용있노? 믿음이 있으면 그만이지. 부부 사이 그냥 정으로 사는기다, 라고 말씀하시는 옛 어른들의 지청구가 떠오르는 멋진 시다.

 

산다는 게 말이지//멸치 우려낸 국물에 뚝뚝 떼어 낸/까짓것 대충, 밀가루 반죽처럼/야들야들 쫀득쫀득 희한하게 씹히는/수제비 맛 같기만 하다면야/몇 번이고 뜨거워도, 뜨거워도//웃을 것 같단 말이지                             

         - 수제비(전문)

 

산다는 것이 간단한 요리의 대명사인 수제비 같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세상살이 모든 것이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이니, 수제비를 만들어 먹듯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내어 만들어 먹자. 하지만 수제비도 몇 번은 뜨거워져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이거늘 인생도 어디 쉽게 되겠어.

 

어느 날 문득/집 안을 들여다보니 퇴락한 초가처럼/뒤숭숭하다/봄이 오신 거다/침대 밑을 털어내고 노란빛 침대 시트를 깔고/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일상의 게으름을/제각각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주고/무거운 옷치레도 깊은 서랍 속에 잠재운 뒤/액자에 쌓여 있는 무료함마저 털어내고 나니/사진 속 우리 식구들 모두 활짝 웃고 있네            

     - 봄 청소(전문)

 

겨우내 먼저 쌓인 집이 마치 초가처럼 퇴락해 있다. 봄이 오면 침대 시트도 갈고 겨울 옷도 모두 옷장으로 넣은 다음, 이방 저방에 쌓인 먼지를 털고 나니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가족들이 모두 웃고 있는 듯하다. 봄을 맞이하여 대청소를 하고 있는 주부의 모습이다. 청소를 끝내고 행복감에 젖어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행복할 것 같아 환한 웃음이 나온다.

 

꺼진 모니터는 두렵다/깜박이는 커서의 움직임은/맥박수의 파장 그래프/산소를 공급하는 산소마스크처럼/마우스는 표정이 살아 있다//길을 잃고 헤매다가 안착한/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초점 없는 의지/별 상관도 없는 간절한 희망으로/굶주림의 습성은 이미 석화되었다                          

- 컴퓨터를 끄지마 (전문)

 

21세기 문명의 이기가 된 컴퓨터에 빠진 나를 발견한다. 마우스를 만지고 있어야 숨을 쉴 수 있고, 꺼진 모니터를 보는 것이 두렵기만 한다.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길을 잃은 방랑자와 같은 모습이다. 나는 이미 중독되었다. 컴퓨터의 노예가 되었다.

 

2008년 연말 첫 시집<여름 낙엽>을 출간한 금동원 시인은 경북 봉화군 출신으로 상명대 생물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시 여성백일장 시부문 입상, 지구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경력이 있다.
 

 

 

출처 :豊友會 원문보기
글쓴이 : 김수종(안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