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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이야기

페테르 일스테드

금동원(琴東媛) 2015. 3. 5. 23:41

페테르 일스테드

시간 속에서 얼어버린 순간의 이미지들

레스까페(Rescape) 선동기

http://blog.naver.com/dkseon00/220048370118  

 

거실에 걸어 놓은 작품 중에 베르메르의 것이 두 점 있습니다. ​예전에 출장길에 미술관에서 구입한 복사본인데 워낙 정교해서 진품을 보는 느낌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때로는 저를 진정시키기도 합니다. 덴마크 화가 중에 그런 베르메르의 분위기를 옮겨 온 듯한 작품을 제작한 화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페테르 일스테드(Peter Ilsted, 1861-1933)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창문 옆에서 뜨개질하는 여인 Woman knitting by a window, 1902

밤은 깊었는데 여인의 뜨개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등 주위에 설치되어 있는 주황색 천은 마치 거대한 빛을 가득 담은 풍선 같습니다. ​빛이 한 곳에 모이자 시선도 자연스럽게 여인의 등으로 향하게 됩니다. 누구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엮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깊어지는 정적을 깨는 것은 간혹 들리는 여인의 가는 숨소리와 실타래가 풀리는 소리뿐입니다. ​그런 여인을 위해 창가에 세워 놓은 화병 속 꽃 두 송이, 손을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개 한번 들어 꽃에 시선을 줄 만한데 창에 비친 여인의 모습은 마치 굳어 있는 것처럼 조각 같습니다.

일스테드는 덴마크의 팔스테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들이 많지 않아서 유년 시절이나 그가 받은 미술 교육에 대한 것들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작가들의 일생이 섞이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기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그렇다면 늘 하던 대로 상상의 폭을 더 넓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방 The Dining Room, 50x40cm, oil on canvas, 1887

창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주방 구석구석 내려앉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빛은 부드럽게 반사되어 주방을 환하게 만들고 있고 붉은색 벽에 닿은 빛은 멋진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아침을 준비하는 여인의 몸에도 커튼을 거쳐 온 부드러운 빛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식구들이 모두 모이겠군요. ​밝고 맑은 아침의 기운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식구들 마다 식사 시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함께 모여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제겐 참 부러운 일입니다.

열여덟 살이 되던 1878년, 일스테드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오게 됩니다. ​그 후 큐피드와 프시케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늦게 소개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후 그의 행로는 성공 그 자체였습니다. ​일찍 핀 것이 반드시 마지막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요.

 

침실에서 In the Bedroom, 46.5x38.7cm, oil on canvas, 1901

침대에 몸을 눕히기 전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 때문에 순간 몸이 멎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쌓였던 것들이 그동안 잘 버텨주었던 감정의 벽을 허물고 쏟아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무너진 자신의 마음은 다시 어떻게든 만들어볼 수 있겠지만 흘러 나가버린 것들은 거두어들일 수 도 없습니다. ​사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더욱 강해지고 어떤 것에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만 이 순간만은 안타깝습니다. 탁자 위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는 등불은 따뜻한데 여인의 몸은 점점 더 어둠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 무렵 일스테드는 카를 홀소에(Carl Holsoe, 1863-1935), 빌헬름 하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와 함께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모임인 “The Free Exhibition’이라는 단체의 회원이 됩니다. 이들은 햇빛과 고요한 실내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유명해지는데 베르메르의 초기 작품과 닮았었죠. ​이들의 작품은 훗날 ‘코펜하겐 실내파(Copenhagen Interior School)’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집의 실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느낌을 담았기 때문이죠.

 

책 읽는 소녀가 있는 실내 풍경 Interior with a Girl Reading, 1903

커튼을 거쳐 온 빛은 강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천정까지 닿을 만큼 큰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읽는 소녀의 뒷모습이 평온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것을 보니 읽고 있는 내용에 푹 빠진 모습입니다. 학생 때는 그림 속 소녀처럼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소파에 몸을 적당히 기대고 읽는 것이 편했는데 언제부턴가 책을 읽기에 가장 편한 곳은 침대가 되었습니다. ​몸을 적당히 굴리면서 책을 이 손으로 저 손으로 옮겨 가는 재미도 있지요. ​전자책이 등장한 이후 가끔 종이책의 앞날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는데 제 생각에는 페이지를 넘기는 감촉을 잊지 않는 한 ‘책’은 영원할 겁니다.

하메르쇠이는 일스테드의 누나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처남 매형 사이가 됩니다. ​지나간 옛이야기이지만 친구의 여동생들은 까까머리 시절, 가슴 뛰게 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비슷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저는 크게 구별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침 햇살 Morning Sunshine

참 단출한 실내 풍경입니다. ​일찍 일어나 창가 의자에 앉았던 여인은 창문을 열고 아침을 맞고 있고 여인 옆으로는 아침 햇살이 다가왔습니다. ​마치 간밤에 잘 잤느냐고 묻는 것처럼 여인의 발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방 안에는 아직까지 새벽의 어둠이 남아 있지만 조금씩 햇살이 밀고 들어가겠지요. 작품에 쓰인 색은 대부분이 갈색 톤입니다.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어두운 정도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편안하고 고요합니다. 아직 사물들이 모두 일어나지 않은 탓도 있겠지요. ​얼마 전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게 됩니다. 그러면 산에서 내려온 맑고 찬 바람이 훅하고 밀려들죠. ​요즘 아침, 최고입니다.

일스테드와 그의 동료들은 햇빛이 사물에 반사되면서 어떻게 다른 질감을 주는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몇 안 되는 색을 이용해서 실내에 있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외로이 서 있는 장면은 고요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내에 혹시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묘한 호기심도 자극하게 만들었습니다.

 

열려 있는 문 The Open Door, 61x48.9cm, oil on panel

열려 있는 문으로 초록이 풍요롭습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의 멋진 모습에 잠시 시선을 멈추게 됩니다. ​눌러 쓴 모자, 가볍게 꼰 다리와 날렵한 의자가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열어 놓은 문과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은 바닥에 또 하나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흐르고 있을 것 같고 그 바람을 타고 작은 새들의 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저런 모습의 남편을 지금 실내에서 내다보고 있는 아내가 있다면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정말 멋진 남자를 고르셨군요!

일스테드의 작품은 미술 수집상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판화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그의 판화 제작 기술은 대단히 뛰어났고 그 분야의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관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고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어 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지요. ​그리고 그의 동료들 중에서 판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가 유일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다 Looking out the Window, 63.5x59.7cm, oil on canvas, 1908

창밖이 소란한 모양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나이인데 무엇인들 궁금하지 않을까요? 소녀가 있는 곳은 ‘전망 좋은 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방으로 창이 있어서 빛이 가득한 방이고 또 어느 곳이든지 다 내려다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분위기는 소리마저 얼어버린 것처럼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일스테드의 감각은 그랬던 모양입니다.

일스테드의 명성은 높아졌고 그의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전시되기 시작합니다. 1889년 파리 살롱 전에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유럽의 미술 시장에 그의 작품이 처음 소개된 순간이었습니다. 1900년에는 만국박람회에 출품했고 수많은 호평과 함께 삼등 메달을 수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그림 속의 고요함이 관객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붙들었겠지요.

 

리셀룬드에서의 화가의 두 딸 Two of the Artist's Daughters at Liselund, 53.3x64.1cm, oil on canvas, 1909

언니가 어린 동생을 가르치는 모습은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형이 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관객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제 기억에도 동생들을 차분하게 가르쳐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차분한 설명보다는 항상 큰 소리가 먼저 앞장섰었지요. ​넌 그 것도 모르니... 지금 후회 많이 하고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것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 두 자매의 모습을 액자 속 할머니 할아버지도 대견해하시겠지요.

그 후로도 일스테드의 작품은 영국과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전시됩니다. 그는 생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으로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화가로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일생이었죠. 일스테드는 일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시간 속에서 얼어버린 순간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 기회가 되면 꼭 베르메르의 그림 옆에 나란히 걸어 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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