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세상 이야기

이곳은 시리아에요. 우리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금동원(琴東媛) 2015. 3. 31. 18:45

 



아이들에게 일상이란 친구들과 놀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편하게 뒹구는 것이 전부입니다. 시리아 안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참혹한 현실을 체감해야 하는 시리아 아이들에게 남은 일상은 전쟁 속의 불안한 하루가 전부입니다. 소중한 일상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시리아 아이들이 예전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은 왜 이리 어렵고 더디기만 한 것일까요? 시리아 북부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만난 세 명의 소년, 이 아이들이 되찾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에 잠시만 귀 기울여 주세요.  







  

아나스(남, 8)는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다가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 동네 로마 유적지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어요. 여기엔 건물들이 모두 무너져서 학교도 남아 있지 않거든요.”


아나스는 학교를 중퇴하는 바람에 읽기와 쓰기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300~400시리아 파운드(미화 1.5~2달러)를 벌고 있습니다. 

“사장님은 아주 친절해요. 저를 나무라지도 않으시고요. 덕분에 오토바이 수리 기술을 잘 배워서 웬만한 것은 다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일이 손에 익을수록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픈 아나스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전 그래도 일하는 것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더 좋아요. 계속 학교에 가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지만, 항상 ‘내일부터’ 라고 말씀만 하시고, 계속 미루기만 하세요.” 







 

사미(남, 12)는 시리아 북부 한 마을의 무너진 학교 건물에서 부모님, 9명의 형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폭격이 심해지면서 살던 곳을 떠나 안전한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폭격이 잠잠해진 후  살던 동네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집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학교는 돌무더기만 남아 있고 벽과 지붕에는 총탄과 폭격으로 인한 구멍과 흔적만이 가득했습니다. 사미의 가족은 그런 학교 건물 중 한 곳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교실 하나는 침실로, 다른 교실 하나는 부엌으로 개조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교실 중 하나는 소 외양간으로 사용하고 다른 방에는 장작 더미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자는 건 너무 힘들어요. 여긴 집이 아니니까요. 너무 춥지만 그나마 안전해서 예전에 지내던 곳보다는 나은 편이긴 해요. 그렇다고 저희 가족이 집을 새로 지을만한 형편도 아니고요.”


사미는 주변에 어울릴만한 친구도 없고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어서 하루하루가 힘이 듭니다.

“2년 전쯤 4학년까지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 두었어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요. 제 유일한 소원은 집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 다시 다니는 거예요.








무하마드(남, 9)의 머릿속에서 학교에 다니던 예전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시리아 전쟁 때문에 그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정규 학교에 다니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요즘은 디젤 엔진을 모아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무하마드는 디젤 엔진 탱크를 운반하는 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름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스폰지에 적십니다. 그리고는 이 스폰지를 양동이에 쭉 짜서 모은 뒤, 다시 작은 병에 한 방울씩 옮겨 담아 해질 무렵 마을 시장에 갖고 가고 팔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해 디젤 엔진을 모아 팔면 하루 300~600시리아 파운드(미화 1.5~3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 이 돈으로 무하마드는 빵, 감자와 달걀 등을 사서 가족의 끼니를 해결합니다. 하루 종일 기름 탱크 뒤를 쫓아 다니느라 항상 무하마드의 몸은 진흙과 기름 냄새로 뒤덮여 있습니다. 

저의 소원은 학교에 다니는 거예요. 그리고 장난감과 제 물건들이 있던 예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아이들의 소원은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

“앗 살람 알라이쿰(안녕), 시리아!”

내전 4년의 이야기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얼마나 시리아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아는 22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잔혹한 내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22만 8000 여명으로 첫 집계되었던 시리아 난민의 수는 불과 1년 뒤에 10배 가까운 217만 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하루 평균 5400명이 시리아를 빠져나가 2013년에는 한 해에만 18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이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고 건물도 모두 무너져서 시리아가 텅텅 비어 버릴까 봐 두려워요.”


시리아 아이들의 걱정이 매일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전 4년이 지난 현재, 인구 2000만 여명이었던 시리아는 380만 명의 난민을 배출한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시리아 안에서는 매일매일 폭격과 총격이 계속되고 이를 피해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이라크 등으로 탈출하는 난민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상을 잃은 아이들, 추억을 잃은 어른들 




2011년 내전이 발발하기 전, 시리아는 아동의 100% 가 초등교육을 받고, 15살~24살 사이 연령대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던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던 국가였습니다. 4년간의 내전을 겪으면서 300만 명의 학령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학교 등록률이 낮은 국가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또 2014년에는 시리아 난민 아동의 절반이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매일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학교 등록률은 고작 6%대를 맴돌고 있습니다. 작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행한 보고서 <위협 받는 미래>에 따르면 시리아 내 학교 건물이 4955개에서 1만 4080 개의 학교가 피해를 당하고 파괴되고 무장세력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학교 다니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예전에 다니던 학교도 훌륭했어요. 영어도 배웠고 늘 그림을 그렸거든요. 제가 가장 아끼던 인형을 교실에 두고 왔는데 언젠가는 이전의 학교로 돌아가 인형을 찾고 싶어요.” 


시리아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샐리는 폭격 때문에 살던 마을을 떠나 1년 전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하는 학교에 다니며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 2013년 8월부터 지난 달까지도 최소 23 차례의 공중 폭격과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폭격이 다시 시작되면 또 학교를 다니지 못할 것 같아 샐리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시리아를 벗어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해도 현지 아이들과 어울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시리아에서 배우던 내용과는 다른 수업 내용, 언어 장벽, 이미 포화상태인 교실, 또 알게 모르게 난민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로 시리아의 난민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나은 생활을 위해 시리아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 시리아 내 다른 지역으로, 터키로, 레바논으로, 요르단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한 시리아 주민은 총격과 폭격의 위험은 이전보다 덜하지만 살아 온 흔적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서 삼촌들, 고모들, 친척 동생들과 어울리며 자랐습니다. 이웃의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모두를 잃었습니다. 피붙이 형제들은 레바논, 터키, 요르단에서 난민으로 여동생은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겠지만 이제 우리 어른들은 완전히 끝난 거 같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4년간 국제 사회의 노력, 성적은 낙제점

  




“제가 뭘 보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싶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2012년 12살 시리아 난민 소년 알리(가명)의 증언을 시작으로 인간 방패로 사용되고 고문과 잔혹한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를 탈출한 수천 명의 아이들과 가족이 머무르는 난민캠프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기에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폭탄과 총에 맞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으로 2012년 9월 세이브더칠드런은 전 세계에서 인권 유린에 대한 온라인 서명을 실시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6만 705명이 온라인 서명에 동참을 해주었고, 이것은 분쟁의 와중에서 시리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대응하고자 약속했던 유엔에게 전달되었습니다. 2014년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평화회담을 앞둔 1월 21일 “아이들을 상대로 전쟁하지 말라” 는 메시지와 함께 아이들의 안전을 촉구하는 3만 2347건의 서명을 전달했습니다. 

  




또 온라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영국, 네덜란드, 독일, 요르단, 미국, 덴마크 등에서는 시리아 내전의 종식을 염원하는 촛불을 일제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전의 당사자들과 유엔 안보리 회원국, 유엔 회원국들이 그 동안 결의안을 무시하고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의 평화 노력은 낙제점을 받으며 올해는 시리아 난민과 시리아 내 주민들에게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네 번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아이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4년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과 시리아 등에서 시리아 아동과 가족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옷과 신발, 담요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바우처와 현금지원 등을 통해 난로와 연료 구입을 지원해 왔습니다. 하지만 연료와 방한복,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갖춘 보건소나 병원, 의약품이 부족해 시리아 아이들은 호흡기 질환, 이상고열과 흉부감염, 동상 등 심각한 질병과 전염병에 노출되는 등 네 번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왔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올해 말까지 시리아 난민의 수가 4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내전 발발 후 4년이 지난 오늘도 시리아 안, 밖에서 아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실상을 보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아이, 수 차례 국경을 넘었던 아이. 지난 4년간 시리아에서 들려온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무너질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억지로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붙들게 하는 것은 시리아 내전의 현장과, 난민이 살고 있는 이웃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학교를 지키는 교사, 자원봉사자, 간호사, 의사, 생명을 살리는 구호 단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폭격을 맞은 건물 잔해더미에서 끝까지 생존자를 구해내고 생필품을 나눠주며 불빛이 꺼진 시리아에서 휴대폰의 불빛을 의지해 부상자를 치료하는 어두운 가운데에도 희망을 바라보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5년째로 접어든 내전으로 인해 타지, 타국에서 네 살을 더 먹은 시리아의 아이들. 이들이 평화로운 조국으로 돌아가 밝은 미소로 “앗 살람 알라이쿰(안녕)?” 인사를 건네는 그 날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김지연 (커뮤니케이션부)

https://www.sc.or.kr/support/supportMonth.do?CAMPAIGN=0420
 

시리아 아이들이 되찾고 싶은 일상 이야기에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귀 기울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