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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이야기

백건우 “내게 베토벤은 투쟁의 대상…(6/26~27일, 예술의전당 )

금동원(琴東媛) 2015. 6. 25. 19:47

백건우 “내게 베토벤은 투쟁의 대상… 내 그릇에 담아내는 데 몇십 년 걸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ㆍ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협연

▲ “베토벤 음악은 ‘자존심의 음악’… 예순 넘으면서 연주할 자신감

인터뷰 장소인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면서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은 ‘왜 젊은 시절에는 베토벤을 연주하지 않았는가’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피아니스트 백건우(69)는 한 작곡가에 일정 기간 몰입하는 스타일. 그래서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60세가 되기 전까지 그의 음악적 연표에서 베토벤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타난 그가 털어놓은 답변은 이랬다. “나에게 베토벤은 투쟁의 대상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죠.”

26~27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4번을 협연하는 백건우를 24일 만났다. 프랑스 노앙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마치고 곧바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다소 지쳐 보였지만,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가며 답변을 내놨다. “모든 음악에는 작곡가의 정신이 있어요. 연주자의 그릇이 얼만큼인가에 따라 그것을 담아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내 또래들은 가슴을 펴지 못하고 살았던 세대잖아요. 음악 공부도 거의 고학하다시피 했어요. 어린 나이에 미국 가서도 얼마나 많이 위축됐는지 몰라요. 유태인들이 거의 장악한 음악계에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 청년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베토벤의 음악은 ‘자존심의 음악’이잖아요. ‘세상에 베토벤은 나 하나뿐이다’라고 외쳤던 사람이잖아요. 내 그릇으로는 담아낼 수 없었어요.”

 

 

 

사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베토벤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독일적인 음악이 나하고 안 맞나? 문화적인 차이인가? 그런 생각을 했죠. 한데 결국 그릇의 문제였어요. 예순이 넘으면서부터 연주자로서, 또 인간으로서도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내 음악 세계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 생기니까, 그때부터 베토벤을 연주할 수 있겠더라고요. 거기까지 몇십년 걸렸어요.”

스스로 밝힌 ‘위축된 청춘’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 신동으로 불렸던 그는 16세에 뉴욕으로 건너가 ‘하이스쿨 오브 아트’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음악에 대한 한때의 좌절, 그 대신에 영화와 사진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때의 뉴욕은 지금 같은 도시가 아니었어요. 아주 멋지게 미친 도시였어요. 제가 다녔던 하이스쿨이 46번가였고, 47번가가 바로 타임스스퀘어였어요. 비틀스가 상륙하고 히피들이 거리를 누볐죠. 그때 나는 영화와 사진에 완전히 빠졌는데, 돌이켜보면 영화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다양한 인종에 대한 생각들을 접했던 것 같아요.”

- 줄리아드 음악원 후배인 이대욱 교수(피아니스트·한양대)한테 들은 얘기인데, 도둑이 들어와서 카메라를 죄다 훔쳐갔다면서요?

“아휴, 말도 마세요. 애지중지 사용하던 라이카 M3 카메라, 또 캐논 카메라는 세 대나 도둑맞았어요. 황당했어요. 점심 굶으면서 산 카메라들이었는데.그땐 점심 자주 걸렀어요. 그렇게 돈 아껴서 음반 사고 카메라도 사고 그랬어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해는 1974년이었다. 그때부터 40년 넘는 세월을 그곳에서 살았다. 결혼은 그로부터 2년 뒤였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하지만 “오늘은 진희 아빠 인터뷰니까, 난 빠진다”를 끝까지 고수한 배우 윤정희씨가 “내년이면 결혼 40주년”이라고 말했다. ‘진희’는 두 사람의 딸,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다보니 어느새 40년”이라고 부연한 백건우는 “둘이 함께 나누는 사소한 즐거움은 아무래도 여행”이라고 말했다. 아내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피곤해 있다가도 비행기만 탄다면 얼마나 좋아하는데”라며 하하 웃었다.

이번 무대에서 협주곡 3·4번을 연주할 그에게 최근 유행하는 당대 연주 스타일의 해석, 말하자면 베토벤 시절의 연주를 복원하려는 경향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그런 스타일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유럽도 그래요.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아요. 베토벤 음악은 강약의 폭이 넓어요. 그걸 무시하고, 빠르고 가볍게 연주하는 것이 못마땅해요. 옛날엔 이렇게 연주했다? 그건 우스운 얘기입니다.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 선생은 ‘고정된 것은 이미 진실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진실은 항상 변해요. 음악도 그렇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313&artid=201506242134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