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종'이 온다···이어령이 본 '알파고' 그 후
역사를 움직이는 ‘문명 극장’이 있다. 스토리가 복잡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30분 늦게 극장에 들어선 사람은 어떨까. 그는 앞의 이야기를 모른다. 옆에 앉은 사람은 다르다. 예고편부터 봤다. 두 사람은 같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같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지각한 사람은 ‘전체의 맥락’을 놓치고 있어서다.
AI 알파고 스스로 진화
2050년 인간두뇌 수준으로
이세돌 직관·끼가 인류 희망
알파고의 AI(인공지능)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와이어드(WIRED)’라는 과학지는 지난해 12월 AI를 특집으로 다뤘다. 딥 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와 알파고를 소개했다. 2014년 허사비스는 와이어드 콘퍼런스에서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도 알파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딥 마인드는 그가 2010년에 창업한 회사다. 이를 구글이 2014년에 4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동안 구글이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을 사냥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은 그리고 충격을 받아야 할 것은 구글이 재빠른 인공지능을 이용해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일상의 모든 기기들을 인공지능 네트워크를 통해서 신문명을 만들어가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놀음처럼 그 경쟁을 구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30분 늦게 들어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면서 울고 웃는 관객처럼 말이다.
알파고는 딥마인드를 인수하기 전 구글이 보유하고 있던 인공지능과는 다른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무장했다. 올해 초 중국의 대표급 기사와의 대국에서 5연승을 거뒀다. 구글은 이번 이벤트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나.
인간·AI 상생, 서양의 디지털과 동양의 지혜가 만나야 가능
왜 일본·중국을 놔두고 한국을, 그리고 이세돌을 택했을까. 이것이 알파고 대 이세돌의 바둑경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문명게임이다. 동양 대 서양 게임, 체스와 바둑으로 상징되는 두 문명권의 게임이 몇 십 배, 몇 백 배 흥미진진하다. 거기에서 우리의 사활이 달린 미래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인공지능이란 말을 처음 만든 미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 존 매카시는 2050년쯤이면 무어의 법칙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이 붙어 그 기술이 ‘특이점’에 이른다고 예측했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DQN(Deep Neural Network·신경 네트워크)과 구글의 딥러닝(Deep Learning)이 결합하면서 한국의 서울에서 한국인 프로 기사의 손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그게 우리에게 그리고 지구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가를 지금 공천에만 마음졸이는 우리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이 알고 있을까. 구글과 상대하게 될 우리의 기업가들은 그 실황중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파고가 개발한 AI는 바둑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응용 가능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범용 인공지능)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 기술의 IT(정보공학)가 NT(나노공학)와 BT(생명공학)의 미래 기술과 손을 잡게 되면 터미네이터 로봇에 지배당하는 신인종 ‘포스트 휴먼’의 새 문명의 역사가 쓰여질 것이다.
물은 잠잠하다가도 100도의 비등점이 되면 갑자기 끓는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도 갑자기 어느 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로 비약한다. 그것을 기술 용어로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부른다. 2050년이면 인공지능이 바로 그 지점에 이른다는 게 대체로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대국은 어쩌면 알파고와 이세돌이라기보다도 ‘바둑문화권’ 동양의 지혜와 ‘체스문화권’ 서양의 지성 간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은 쪼개고 나누는 아톰의 분석법을 쓴다. 그게 디지털이다. 그들은 0과 1로 세상을 풀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 삼국,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아날로그적 자원과 마음이 강하다. 정보통신이라는 말에 정과 마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IT라도 아날로그적 감정이 강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대립하는 것인가. 한쪽이 다른 하나를 배제해야 하는 것인가. 인공의 디지털 문명과 자연에 기반한 아날로그 문명이 서로 보완하고 협력해서 바둑의 오묘한 기술 아닌 예술을 이룰 수는 없는가. 디지로그의 시대가 유일한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준 게임은 아니었는가.
글로벌 ‘문명극장’에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딥마인드와 이세돌 9단의 직관과 끼가 있는 인간의 마음, 동양의 지혜가 결합된다면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는 윈윈의 상생문명이 도래한다는 것을.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중앙일보 고문
정리=백성호·윤재영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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