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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금동원(琴東媛) 2016. 4. 19. 01:21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년도 제11회 이상문학상작품집

 -이문열 지음/ 문학사상사/ 1쇄 1987년 09월 01일-2006 4월 19일 개정판



  책소개

 

  1987년도 제1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인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비롯해 우수상 수상작인 최일남의 <젖어드는 땅>, 전상국의 <썩지 아니할 씨>, 문순태의 <문신의 땅>, 이승우의 <못>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87년도 한국 소설문학의 큰 흐름과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상 작품을 포함한 4편의 우수작상이 지닌 각기 다양한 작품세계가 이 한 권 속에 펼쳐져 있다. 1987년도 제1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문열 씨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가 선정되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권력의 형성과 몰락의 과정을 읽을 수가 있다. 이것은 민족사의 규모를 국민학교의 교실에 집약시킨 것이기도 하고 하나의 분자식처럼 권력의 실상을 생활 영역에 확대해 보인 것이기도 하다. 우화가 그 테두리를 넘어 문학으로서 가능하려면 현실 이상의 리얼리티를 필요로 하는데, 구조를 분석에 대치한 수법은 참신하고, 주제를 추구하는 데 나타난 집착력은 소설가적 역량의 비범함을 제시한다. 이상(李霜)이 살아 있어 이 작품에 접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책 속으로

 

 우리들의 석대는 그렇게 작아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속된 성공으로 그쳐서는 이미 실패의 예감이 짙은 내 삶을 해명할 길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또 우리들의 석대는 그렇게 쉽게 그의 힘과 성공이 눈에 띄어서도 안 되었다. 보다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어 지금의 이 반을 주물러대고 있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하기만 하면 다시 그의 곁에 불러앉혀주어야 했다. 내 재능의 일부만 바치면 그는 전처럼 거의 모든 것을 내게 줄 수 있어야 했다.--- p.85


 

아직 같은 반이 된 지 한 시간밖에 안됐지만 그 아이만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례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60명 가운데서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 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모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앞서 말한 그런 실없는 것들이나 묻고 있는데, 문득 그들 등뒤에서 그런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왔다. 잘 모르는 나에게는 담임 선생이 들어온 것이나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어른스런 변성기(變聲期)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이 움찔하며 물러서는데 나까지 놀라 돌아보니 가운데 맨 뒤쪽에 한 아이가 버티고 앉아 우리 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같은 반이 된 지 한 시간밖에 안됐지만 그 아이만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담인 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계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육십 명 가운데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어서라기 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머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 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그가 좀 전과 똑같은, 나지막한 힘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았느나 나는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이상한 힘으로 나를 끌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닳은 아이다운 영악함으로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이게 첫 싸움이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며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볼 작정이었다. 처음부터 호락호락해 보여서는 앞으로 지내기 어려워진다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까닭 모를, 저의 절대적인 복종을 보자 야릇한 오기가 난 탓이가도 했다.

「왜 그래?」

--- p.18

 

  실업자가 되어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세상이 한층 잘 보였다. 내가 갑자기 낯선, 이상한 곳으로 전학 온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전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거기서 빛났던 내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들만의 질서로 다스려지는 어떤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진 느낌 - 그리고 거기서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 나왔다.

  이런 세상이라면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었을 것이다 -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공부의 석차도 싸움의 순위도 그의 조작에 따라 결정되고, 가짐도 누림도 그의 의사에 따라 분배되는 어떤 반. 때로 나는 운 좋게 그 반을 찾아내 옛날처럼 석대 곁에서 모든 걸 함께 누리는 꿈을 꾸다가 서운함 속에 깨어나기까지 했다.
--- pp. 76-77


  석대와 나의 대화가 끝난 뒤에 석대가 도시락을 책상 위로 올려놓자 아이들도 모두 도시락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대여섯 명이 무언가를 들고 석대에게로 갔다. 그애들이 석대의 책상 위에 내려놓는 걸 보니 찐 고구마와 달걀, 볶은 땅콩, 사과 같은 것들이었다. 뒤이어 맨 앞줄의 아이 하나가 사기 컵에 물을 떠다 공손히 놓는 것까지 모두가 소풍가서 담임 선생님께 하듯 했다. 그런데 석대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것들을 받았다. 기껏해야 달걀을 가져온 아이에게 빙긋 웃어준 게 전부였다.


  그 뒤 내 삶도 숨가빴다. 학교와 부모의 성화 속에 남을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모르게 입시공부에 허덕이며 보낸 덕으로 나는 겨우 괜찮은 중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를 시작으로 경쟁과 시험속에 10년이 흘러갔다. 따라서 한동안은 제법 생생했던 석대의 기억은 차차 희미해지고, 힘들게 힘들게 일류고등학교와 일류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왔을 때는 짧은 악몽 속에서나 퍼뜩 나타났다 사라지는 의미없는 환영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석대를 잊게 된 것은 반드시 내 삶이 숨가쁘고 힘겨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따. 그보다는 그동안의 내 환경에 그 시절을 상기시킬 요소가 거의 없었다. 일류와 일류, 모범생과 모범생의 집단을 거쳐 자라 가는 동안 나는 두번 다시 그 같은 억눌림 또는 가치박탈의 체험을 안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노력, 특히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 자율과 합리에 지배되는 곳들만을 지나와, 그때까지도 석대는 여전히 부정의 이미지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p.75


  ~ 저 화려한 역사책의 갈피에서와는 달리 우리반의 혁명은 갑작스럽고 약간 엉뚱한 방향에서 왔다. 그 이듬해 담임선생이 갈린 지 채 한달도 안돼 그렇게 굳건해 보였던 석대의 왕국은 겨우 한나절로 산산조각이 나고 그 철권의 지배자는 한낱 범죄자로 전락해 우리들의 세계에서 사라져 간 것이었다.

  ~ 학급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감과 아울러 굴절되었던 내 의식도 차츰 원래대로 회복되어 갔다.

  ~ 석대의 질서가 가졌던 편의와 효용성을 떠올린 때가 있었지만, 그것도 금지돼 있기에 더 커지는 유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 p.53, ---p.74


 

  목차

 
  제1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대상 수상작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수상소감- 불혹의 나이에 얻은 두려움

  우수상 수상작 
  최일남/ 젖어드는 땅
  전상국/ 썩지 아니할 씨
  문순태/ 문신의 땅
  이승우/ 못

  각 심사위원들의 중점적 심사평
  김동리/ 뛰어난 작가적 역량과 솜씨
  김윤식/ 작가적 오기와 사상의 표정
  이병주/ 집요한 의욕의 압권
  이어령/ 도식성을 벗어난 높은 문학적 경지
  이청준/ 개성적이고 값진 눈길과 목소리

  '이상문학상'의 취지와 선정 방법

 

 

 

  저자소개: 이문열( Lee Mun-yol,李文烈,)

  Lee Mun-yol,李文烈, 본명:이열 194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황제를 위하여』, 『선택』 등 다수가 있고, 중단편소설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5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대하소설 『변경』, 『대륙의 한』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를 선보였다.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대구매일신문》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가작으로 뽑힐 때까지 이문열은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사범대까지 모두 중도에 포기했으며, 신춘문예, 사법고시 등에서 연이어 실패를 맛 보았다. 77년에 등단하고 이듬해 『사람의 아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4년 학문 연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제의를 받아들여 세종대 강단에 섰으나 3년만에 개인적인 이상실현의 문제와 작가로서 충분히 작품 세계를 이룩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지는 것을 우려, '창작전념'을 위함이라며 교수직을 사임했다. 2003년 12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조각가 친구의 권유로 경기도 이천에 땅을 구입하여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깊은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자리를 젊은 친구들에게 마련해주고자 뒷동산 부아악負兒岳이라는 산 이름을 따와 〈부악문원〉을 설립하여 새로운 지식의 샘을 젊은 학도들과 함께 탐구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2000년 5월 이문열의 책 판매량이 2천만 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삼국지, 수호지 평역을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판매량이 천만 권 이상이라니, 한국인 4명에 한 명은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을 따지면 그의 글을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 성공은 이문열을 이해하는 단서 가운데 작은 하나일 뿐이다.

  이문열의 작품 세계엔 그의 경험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좌절, 전통적인 가풍의 집안은 그의 경험이며,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 쉽사리 읽어낼 수 있는 특징이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선택』 등의 책은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험이 한국 현대가 겪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거듭 묻는 질문, 전통과 현대의 문제, 분단 상황의 문제 등은 바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며 한국사회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이문열의 대답은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수구주의나 남성우월주의로 비판받기도 했다.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나, 총선연대 활동이나,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문열이 자신의 소설에 담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든 그가 소설을 통해, 또는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은 확실하다.

  최근 역사적 인물 '안중근'에 관한 소설 『불멸』을 출간하였다. 이문열은 ‘관념’에 헌신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에 한 뮤지컬 업체를 통해 안중근에 대한 대본을 의뢰 받았고 이를 통해 안중근의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뮤지컬은 거절했지만, 그 이후 산문으로 풀어나가며 신문 기고로 연재하였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 2009매 중 200~300매 정도를 수정과 첨언을 거쳐 책으로 발간하였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최고 작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또한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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