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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금동원(琴東媛) 2016. 4. 10. 01:30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역/ 김영사/Sapiens: A Brief History df Humankind

 

 

  책 소개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장 논쟁적이고 대담한 대서사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한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수렵채집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 곳에 모여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였는가? 인간은 왜 지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멀고먼 인류의 시원부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쳐 끊임없이 진화해온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 경제학, 종교학, 심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 생생하게 조명한 전인미답의 문제작.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까지, 기나긴 역사의 시간을 한 권으로 써내려간 문명 항해기.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것인가.

 

  저자소개

  Yuval Noah Harari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로,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역사에 정의는 존재하는지,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졌는지 등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세계사 연구는 유튜브 등의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전 세계 8만 명 이상이 그의 수업을 듣고 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폴론스키 상Polonsky Prize for Creativity and Originality in the Humanistic Disciplines’을 수상했고, 2012년에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The Young Israeli Academy of Sciences’에 선정되었다.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오랜 연구의 결과물인 《사피엔스》는 처음 이스라엘에서 출간되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이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국 30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자:조 현욱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5~2009년 중앙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국제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2009년 한국 외국어 대학교 언론 정보학부 초빙 교수를 지냈다. 2011년부터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 칼럼'을 매주 연재하면서 건강 의학 포털 '코메디 닷컴'의 미디어 콘텐츠 분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메모리 바이블』, 『싱크』, 『최종 이론은 없다』,『이성적 낙관주의자』,『의사, 인간을 어루만지다』등이 있다.

 

  책 속으로

  전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 p.10~11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백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 명이 있었겠는가?
--- p.133~134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칙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과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최선의 경제체제인 것은 애덤 스미스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불변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 p.169~170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 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 p.346~347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출판사 서평

  머나먼 인류의 시원에서 사이보그까지,
  한 권으로 읽는 인류의 탄생과 진보 그리고 미래!

  작년과 올해 전 세계 출판계와 언론을 들썩이게 한 책이 있다.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젊은 이스라엘 학자의 책 한 권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세계뿐 아니라 브라질 등의 남미와 중국과 대만 아시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올해의 책에 선정하거나, 출판상을 수여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였고, 재레드 다이아몬드, 데미안 허스트, 헨닝 망켈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명사들이 주저 없이 읽기를 권했다. 인류의 기원과 발전, 진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인류학,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행복에 대한 논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에 바쳐진 찬사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주목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한국나이로 갓 마흔에 접어든 이 젊은 저자는 이미 유튜브, TED, MOOC 등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전 세계 8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역사를 읽는 포괄적인 시선과 방대한 이야기를 정교하게 펼쳐내는 놀라운 문장력, 그 문장력을 압도하는 비상한 이론과 깜짝 놀랄 만한 통찰 그리고 절묘한 재치와 대학교 1학년도 읽을 수 있는 책, 전 세대가 공감하고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을 쓰고 싶었다는 열정까지, 이것들의 훌륭한 조화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의 팬으로 만들었고, 《사피엔스》는 이 모든 것을 녹여낸 유발 하라리 사고의 정수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인간은 마침내 신이 될 것인가

《사피엔스》는 약 135억 년 빅뱅으로 물리학과 화학이 생겨나고 약 38억 년 전 자연선택의 지배 아래 생명체가 생겨나 생물학이 생기고,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이 발전하여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개척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이 거대한 수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인간의 진로를 형성한 것으로 세 가지 대혁명을 제시한다. 바로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약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고, 농업혁명은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지만, 인지혁명은 여전히 많은 부분 신비에 싸여 있다. 끝나지 않은 발견과 빈약한 사료들을 근거로 펼쳐내는 상상의 언어들은 놀랍도록 이성적이며 빈틈이 없어 독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저자는 역사 발전 과정의 결정적인 일곱 가지 촉매제로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을 지목했다. 인지혁명의 시작으로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선 인간은 언어(뒷담화)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수렵채집인에 머물던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한다. 늘어난 인구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는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들이다(물론 수렵채집인 사회를 지배한 것도 역시 허구의 신화들이었다). 농업의 발달은 부의 증가와 정착생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돈을 맹신하게 되었으며, 돈의 맹신은 사회적 모순을 야기한다. 500년 전 과학혁명은 우리에게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보였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19쪽) 40억 년간 자연선택의 지배를 받아온 인류가 이제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인간의 지적설계로 만들어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피엔스》는 이런 중요한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이 있는지, 지금이 전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저자는 이런 장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모순의 순간순간을 통해 역사에 결코 자비가 없음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이 세 혁명을 통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질주해왔지만, 과연 “이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19쪽)라고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여섯 종의 인간 종이 살던 평원이 마치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이 어떻게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사실은 이렇다. 2백 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26쪽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진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고,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대형 동물군들이 홍수에 쓸려가듯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복종한 소, 돼지, 양, 개 등 몇몇 종만이 개체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산업적으로 강제사육 당하는 그들의 삶은 비참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다. 유럽 사람들에게 돈은 죽음도 불사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활용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했다. 노예산업에 돈을 투자한 평범한 유럽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무관심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이런 자본은 서구 세계의 과학과 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이제 인간의 과학은 불사(不死)의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약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기술 발달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예견한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세상. 이런 미래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이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이 천재 생쥐를 만들 수 있다면 천재 인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일부일처제 밭쥐를 창조할 수 있다면 평생 배우자에게 충실하도록 유전적으로 타고난 인간을 왜 못 만들겠는가?”
-570쪽

  우리는 수렵채집인 선조들보다 더 행복할까

  한 권의 책으로 역사의 모든 것을 재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피엔스》에서 한눈에 본 인간의 역사는 매 순간순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각할 거리로 넘쳐난다. 가진 것은 얼마 없었지만 기대는 높았던 옛사람과,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지만 좀처럼 만족할 수 없는 현대인 중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는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이 지금보다 더 강력했던 적은 없지만, 우리가 선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진일보한 현대 인류는 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이전 시기에는 타인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다면 이제 사피엔스는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있다. 권력도 돈도 기술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이것들을 추구한다. 위험한 만큼 매혹적인 기술은 신성모독 그 자체이다. 저자는 “우리는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길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본주의, 민족주의 등의 의미들은 망상일 뿐이고, 개인의 환상을 집단적 환상에 맞추어 행복을 찾으려 해도 결국 이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우울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행복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행복에 대한 가능성은 더 많이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고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552~553쪽

  유발 하라리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유발 하라리는 한국에서 출간을 기념하며 특별히 한국의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보내왔다. 서문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1위다. 행복도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등 저개발 국가들보다 뒤처져 있다. 이에 저자는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숙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10쪽)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또 남한과 북한의 예를 통해 한 민족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사회 변화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도 보여준다. 한 세기 안에서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었고 폐허 속에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라는 사회가 보여준 사례를 통해, 인류가 멸종할 것인지, 더 나은 진보를 이룩할 것인지, 어떤 것에 방점을 두고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인류가 함께 고민하자고 한 번 더 강조한다.

  《사피엔스》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유발 하라리의 대담하고 뛰어난 시도이다. 우리가 겪고 있고 만들어야 할 대단한 기술 진보를 위해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인간의 역사를 오늘날 우리가 이해가능한 틀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허구를 이용해서이고,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를 지탱하는 돈과 법과 인권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중 어떤 것도 사람들이 지어내고 전달하는 이야기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가진 사피엔스는 국가에서 기업까지 모든 권력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이면 종교 활동을 하는, 오늘날 한국에 사는 사피엔스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책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 리뷰   진화의 승자 인류, 그래서 더 행복해졌을까  한겨레 |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 2015-11-26
  농업혁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오늘날까지 인류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90% 이상을 제공하는 밀·쌀·옥수수·감자·보리·수수 등을 작물화함으로써 수백만년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이 처음으로 정주할 수 있게 해준 약 1만년 전의 농업혁명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렇지 못했단다. 옥스포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로 학위를 받고 히브리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유발 하라리(39) 교수는 거대사(빅 히스토리)의 한 갈래인 [사피엔스]에서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은 분명 크게 확대됐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진 않았단다.

“오히려 (식량 총량 증산에 따른)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그래선지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말까지 박아놓았다.
  그러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후손인 농부, 양치기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다수 노동자, 사무원들보다 더 안락하고 보람있게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50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지은이는 현대산업문명에 치여 더 오지로 들어간 지금의 칼라하리 사막 수렵채집인보다 더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누렸을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으로 본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의 추가보다는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인지과학을 넘나드는 박식과 참신하고 발랄한 비유, 삶과 역사의 의미에 대한 진중한 문제제기가 빛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이런 얘기도 보탠다.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 농부와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집에 가져가는 식량은 500년 전보다 더 적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인류는 이처럼 진화론적 승자가 됐을지 모르나 구성원 개개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류 전체 고통의 총량도 오히려 늘지 않았을까. 지은이는 과학혁명과 밀접하게 엮여 있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에게 저지른 착취와 학살, 노예무역 등의 끔찍한 만행들도 다시 떠올린다. 
 
 이 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류 진화의 진실과 그 의미를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개별 생물체들이 처한 삶의 조건 또는 ‘행복’ 여부와 연관지어 살피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손에 끊임없이 개량되고 개체수를 불려 진화론적으론 승자가 됐지만 태어나서부터 도살당할 때까지의 짧은 삶을 폐쇄공간에 갇혀 지내는 소나 닭의 지옥같은 삶에도 그는 관심을 기울인다. 오늘날 지구상 경작물의 대종을 이루면서 역시 진화론적 승자가 된 밀이나 쌀 등에 대해서는 인간이 그들을 길들인 게 아니라 그들이 인간을 길들인 것이라 본다. 그들의 번성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밤낮없이 노동하지만 소수 엘리트계급에 그 노고의 대가를 거의 몰수당한 채 허덕이는 인간들.
 
농업혁명과 함께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출현시킨 인지혁명, 500년 전에 시작된 과학혁명, “이 세 가지 혁명이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600쪽이 넘는 이 책의 주재다.
  지은이는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유대인인 지은이가 그렇다고 절대적 존재(신)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유신론자인 것 같지는 않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에 정의는 없다”는 그의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처럼 비판적 시각으로 인류사의 특징적 국면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지만, 그렇다고 지은이가 비관론자거나 염세론자인 것은 아니다. 그는 ‘중도’를 얘기한다. 이들 세 가지 혁명을 거치면서 이룩해낸 인간의 성과를 인정하며,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그에겐 ‘행복’(또는 절대 평정)이 그 판단의 기준인 듯하다. 그가 종교, 특히 불교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불교적 사유에서 궁극적인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교의 ‘고집멸도’ 또는 해탈에 그는 주목한다.
 
지은이가 전망하는 인류의 미래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다. 인간은 지금 빠른 속도로 진행중인 생명(유전자)공학,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디지털 인공지능 등)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진화다. 영생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지적 설계’에 따라 계획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인데, 지은이는 이를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이는 전지전능의 외부 절대신을 상정한 유신론의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과는 다르다. 그 결과가 어찌되든 그것이 현생 사피엔스의 종언으로 귀결될 것만은 분명하다. 머지않아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게 될 그날을 앞두고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것이 돼야 한다고 지은이는 얘기한다
  문명의 창조자 호모 사피엔스, 상상을 허하라  중앙일보 | 중앙일보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 2015-11-28
  몇 년 전 일이다. 친한 이스라엘 친구가 책 한 권에 빠져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책인지 물어보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란다. 유발 누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예루살렘 히브리대 젊은 역사학 교수. 전 세계 몇 명 안 될 전문가나 관심 있어 할 『중세기 기사들의 특수부대 전략』이란 책을 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대중을 위한 ‘큰 역사책’ 한 권을 쓴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 친구 역시 단골로 가는 미장원 주인이 추천해 읽고 있다고 했다.
 
 미장원 주인이 대학교수에게 추천할 만한 책. 궁금해졌다.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니 번역판을 구해야 했다. 아직 영문 버전은 없었고, 겨우 얼마 전 출간된 독일어 버전 전자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을 샜다.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135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해 인공지능으로 끝나는. 이것이 과연 역사책일까. 우리는 역사를 고대·중세기·르네상스·근대, 그리고 또 역시 동양·서양·중동 역사로 나누고 쪼개는 것에 적응해 버렸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와 135억 년 전 빅뱅 간에는 단 1초의 갭도 없었다. 모든 역사는 연결이고 인과관계다. 하지만 무조건 우주의 역사를 나열해 놓았다면 미장원 주인이 추천했을 리 없다.
 
하라리의 ‘큰 역사책’은 큰 질문 하나를 대답하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을 피해 나무 위에 숨죽이고 있었던 인간.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인가. 물론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뇌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호모 사피엔스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사피엔스보다 더 건장하고, 더 큰 뇌를 가진 그들은 먼저 동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를 개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피엔스가 도착하자 그들은 멸종했다. 단순히 멸종한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에게 식량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의 후손인 것이다.
 
 더 큰 뇌를 가졌다면, 적어도 사피엔스와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졌을 네안데르탈인들. 왜 그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남은 걸까.
하라리는 사피엔스만 가지고 있는 ‘창조적 정신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삶의 목표는 세대간의 유전자 전파다. 적어도 진화적으로는 말이다. 나와 동일한 50%의 유전 형질을 가진 형제·부모·자식들. 그들과 음식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행동의 유일한 동력이 유전자라면, 우리는 여전히 몇 명 안 되는 가족과 친척으로 구성된 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 전 우리보다 더 힘센 네안데르탈인들에게 먹혀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한 돌연변이 덕분이었을까. 사피엔스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시작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원숭이에게 천둥은 단순한 천둥이지만, 사피엔스는 천둥을 내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한다. 네안데르탈인에게 타인은 단순한 타인이지만, 사피엔스는 수백 만 명의 타인을 같은 민족, 같은 국가, 같은 종교라는 허상 아래 묶어 버린다. 보이지 않는 전통·종교·이데올로기 덕분에 사피엔스는 거대한 초집단을 만들었고, 여전히 보이는 것만을 믿기에 작은 집단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킬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피엔스만의 ‘정신병’ 덕분에 우리는 피라미드를 짓고, 제국을 세우고,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달에 사피엔스를 보냈고, 이제 우리의 상상력은 스스로 지능과 상상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동물로 시작한 사피엔스는 서서히 자신의 상상에만 존재하던 신이 되고 있다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된 『사피엔스』. 먹방과 헬조선과 여의도 정치를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2015년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말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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