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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가축도 타들어가는 마을…취재진에 “물, 물 좀 주세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주 북부에 지난 16일(현지시각) 오랜만에 비가 내리자 마을 아이들이 냇가로 나와 물을 길어올리고 있다.
[2016 나눔꽃 캠페인]
극심한 가뭄에 신음하는 에티오피아
“매일 알라께 기도해요. 먹고 쉴 자리를 내려 달라고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주 북부 디레다와시에서 차로 4시간여를 달리면 인구 3000명의 다렐레 마을이 나온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이곳에서 만난 하와 호시(33)는 이날도 기르던 염소 한 마리를 잃었다. 염소가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한 그는 염소 다리를 직접 손으로 잡아끌어다가 마을 어귀에 버렸다. 마을에는 이미 말라비틀어진 염소 사체가 곳곳에 쓰러져 있다.(사진) 머리에 보라색 히잡을 두른 하와 호시의 표정은 태연했다. “이젠 (가축이 죽어도) 인내심이 생겼어요.” 그는 지난 8개월 동안 기르던 가축 500마리를 버렸다. 지난 한 주 사이 180마리가 죽고 이제 남은 건 20마리뿐이다. 가축의 고기와 우유로 생계를 꾸리는 그는 이제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같은 마을에서 만난 모하메드 아뎀(7)은 가뭄으로 부모님을 잃었다. 아직 어린 아뎀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혹독한 가뭄으로 기르던 가축이 죽자 아뎀의 부모가 생계에 대한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고 전했다.
다렐레 마을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각) 한 유목민이 죽은 염소를 마을 공터에 내다 버리고 있다.
한국전쟁에 6000여명의 군인을 한국에 보낸 아프리카 동부의 혈맹국 에티오피아는 지난해부터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소말리주 북부의 상황이 심각하다. 엘니뇨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지역에선 작물 50~90%가 사라지고, 6만마리의 가축이 죽었다는 게 구호단체의 통계다. 이곳엔 ‘초록색 사막’(그린 그라운드)이 펼쳐져 있다. 초록색 식물이 대지를 뒤덮고 있지만,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은’들만 무성하다.
다렐레 마을 곳곳에 염소 사체
“기르던 가축 다 죽어 살길 막막”
그나마 초등학교서 석달전부터 ‘급식’
“콩죽 한끼 먹으려 아이들 모여”
200명이던 마을인구, 2년새 3천명
보건소 없는 마을엔 의료차량이 와
영양실조 아이들에 옥수수죽 공급
구호단체 “더많은 도움의 손길 필요”
지난 16일 마을에는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연초 찾아왔어야 할 ‘소우기’가 늦게 당도한 것이다. 화려한 색깔의 히잡을 두른 마을 아낙들이 비를 반기며 시냇가로 나와 온통 황톳빛(사진)인 그 물에 그릇을 씻었다. 이 마을 식당들은 인근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끓인 뒤에야 음식 만드는 데 사용한다. 길어온 물통에는 돌멩이와 흙, 나뭇가지가 잔뜩이다. 취재진을 태운 차량이 사막 한복판을 지나자 유목민 아이 두 명이 “하일란드! 하일란드!”라고 외치며 차를 향해 달려왔다. ‘하일란드’는 생수 브랜드 이름이다. 물을 달라는 뜻이다.
마을 한켠에 나뒹굴고 있는 가축 사체. 그래도 수도 시설을 갖춘 초등학교(사진)가 있어 다렐레 마을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브리 무지(15)네 가족이 8개월 전 이 마을로 이주한 것도 물을 얻기 위해서다. 무지네 가족은 350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살았지만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가축을 모두 잃었다. 생계가 막막해졌지만, 마실 물이나마 길어 쓸 수 있게 되면서 무지네 가족은 삶의 희망을 새로 쓰고 있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학교에 나와야 콩죽이라도 먹을 수 있다.
다렐레 초등학교에선 3개월 전부터 전교생에게 ‘급식’을 시작했다. 고작 콩죽 한 그릇이지만, 쇠약해진 아이들의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서다. 등교 뒤 1시간이 지난 오전 9시가 되면 159명의 전교생은 죽을 먹는다. 이 학교의 급식을 책임지는 학부모회 회장 마얀 알리(45)는 “학교에서 밥과 물을 주니 아이들이 모인다. 학교가 지어진 뒤 각지에서 유목민들이 모여들면서 150~200명이던 마을 인구가 2년 새 3000여명까지 불어났다”고 말했다. 학교 옆에 위치한 작은 보건실은 주민들의 건강도 돌본다. 매일 5~6명의 환자가 찾아온다. 보건소 직원 아덴 하센은 “대개 설사나 폐렴, 말라리아로 이곳에 찾아온다. 간단한 약을 주고 처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짓고 마을을 일군 것은 민간의 힘이다. 국제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2014년 6월부터 소말리주 북부에서 구호 사업을 시작했다. 학교가 없는 곳에는 이동식 보건 시스템을 만드는 등 현재까지 약 900만달러(103억여원) 넘게 지원했다.
4500명이 사는 이웃 마을 말카셰카 마을엔 보건소가 없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마을로 찾아오는 이동식 의료차량을 기다린다. 마을에 의료차량이 방문한 16일엔 아침부터 갓난아기를 업고, 양손에 아이 손을 잡은 주민 등 80여명이 몰려왔다. 5남매를 둔 아사 누르(25)는 이날 두 살 된 딸이 영양실조를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하루에 3번, 일주일을 먹일 수 있는 옥수수 영양식을 받았다”며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일주일치 영양식으로는 아이가 완쾌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눈치다.
더 많은 영양식을 나눠주고 싶지만, 세이브더칠드런에티오피아가 확보한 예산은 그리 넉넉지 않다. 이동식 의료차량 팀장 키파는 “말카셰카 주민 절반가량이 영양실조 환자였는데, 그나마 올해 1월 이 이동식 의료차량이 생긴 뒤로 그 수가 20%가량으로 줄었다”며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려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티오피아의 찰리 메이슨 인도적지원국장은 “상황이 열악하지만, 계속 노력해 결국 이 상황을 이겨낼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돈의 절반밖에 모금이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도 혹독한 가뭄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에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약 60만달러(7억4000만원)를 보냈다. 하지만 더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한국의 지원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디레다와(에티오피아)/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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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