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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유리의 존재/ 김행숙

금동원(琴東媛) 2016. 12. 15. 21:48

 

 

유리의  존재

 

김행숙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

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

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

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거야. 나는 곧, 곧, 무

슨 일이든 저지르고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 『김행숙, 유리의 존재』, (민음사,2016) -제16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행숙 시인 특유의 다감한 어조 안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으며, 문장은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간격들을 정확하게 유지하면서 작품 전체의 사상에 깊이 긴장을 부여한다. '유리의 존재'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감각적인 포착과 깊이 있는 사유를 아우르고 있다.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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