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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세상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남은 생존자 35명

금동원(琴東媛) 2017. 10. 5. 20:22

이용수* 내 이름을 아십니까?

 

  금동원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조선의 딸 이용수입니다

  열여섯 살 소녀였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었을까요

  차라리 두려움과 공포보다 죽음을 먼저 알았더라면

  300명의 군인과 5명의 소녀를 태운 트럭은 어디론가 떠나고

  대만으로 끌려가 강간당하고

  죽음은 너무 멀어 몸부림치면 칠수록

  전기고문과 폭행, 감금과 윤간, 짐승보다 더러운

  만행을 이겨내기에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알고 싶지도 알 수도 없습니다

  석고처럼 피떡 져 죽은 심장으로 87살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47년을 숨 쉬며 죽어있는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피고름과 썩은 피는 몸 구석구석을 징그럽게 쓰다듬고

  만신창이의 세월은 털어내고 휑궈내도 뽀송하게 마르지가 않습니다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먼저 떠난 원혼들의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의 갈기갈기 찢겨 썩지 못한 살점들이 검은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닙니다.

  나는 두 눈 부릅뜨고 죽어야 합니다

  눈감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이 원통한 설움과 참혹을

  진실은 진심이여야 합니다

  진심으로 진실이여야 합니다

  역사는 정직 안에서 역사여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사가 아니라

  거짓된 진실로 눈 멀어있는 지금, 죽지 않은 현대사로 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곧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못합니다

  결코 이렇게 죽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열여섯 살 꽃다운 이용수였습니다

  오늘도 52명의 이용수는 마지막 유언처럼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담아 사력을 다한 사과 한마디면 됩니다.

  우리들이 제발 편히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용수: 2015년 5월 28일 현재 생존 할머니 52명 중에 한 분이다

  

- 시집『우연의 그림앞에서』 (2015, 계간문예)

 

 

■ "고향? 수요집회 가야지"…'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추석나기

     2017-10-03 07:00/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 나눔의 집을 찾은 특별한 손님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 아홉 분 가운데 일곱 분은 이번 연휴도 쉼터에서 보내고 있다. 고향이나 자제들을 찾아간 강일출(99), 이옥선(87)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환으로 현재 거동도 불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경기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 생활실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이옥선(91) 할머니(사진=김광일 기자)

 

  특히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기자회견에 나설 정도로 정정하던 이옥선(91) 할머니는 최근 건강악화로 몸져누워있는 상태다. 이 할머니는 "설에는 밥도 먹고 지냈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프니까 계속 누워서 보낼 수밖에 없다"며 "다른 할머니들 가운데도 누워있는 게 다수고 앓지 않는 분이 소수"라고 토로했다.

  연휴 중 할머니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합동차례를 지내고 봉사자들과 함께 명절음식을 만들어 먹을 예정이다.

  이번 명절에는 특히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다국적 봉사자'들이 함께 한다. 독일인 이네스(23) 씨, 콜롬비아인 우리아나 씨, 일본인 사카모토 씨 등이 현재 나눔의 집 직원 및 요양보호사 등과 함께 할머니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나눔의 집'에서 봉사 중인 독일인 이네스(23·오른쪽) 씨와 박옥선(94) 할머니(사진=김광일 기자)

 

  이네스 씨는 "가족이 없는 할머니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연휴에 함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할머니들과 산책하고 손잡아드리고 하다 보면 슬프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명절을 맞아 후원금이나 지원물품도 잇따르고 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영화 '귀향 : 끝나지 않은 이야기'나 '아이 캔 스피크' 등을 본 사람들이 연휴를 이용해 찾아오는 것 같다"며 "학생들의 경우 손편지를 모아 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 "학생들도 나오는데…고마움 표현해야" 

  김복동(91), 길원옥(89) 할머니의 경우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마포구에 마련한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명절을 보낸다.

  연휴에는 봉사자들과 함께하며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들이 보내온 지원물품 덕에 풍성한 한가위를 맞는다. 지난달 24일에는 의정부의 한 학교의 동아리 학생들이 손수 빚은 송편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평화의 우리집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사진=자료사진)

 

  손영미 쉼터 소장은 "할머니들에겐 제가 가족이니까 당연히 24시간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소갈비, 돼지갈비, 식혜, 전, 나물도 하고 남들 하는 것보다 더 잘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최근 왼쪽 눈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앞을 잘 보지 못하고 길 할머니는 걷기 불편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모두 추석 당일인 4일에는 1303차 수요집회에 직접 나갈 계획이다. 

  지난 25년간 요구해온 일본의 공식사죄나 법적배상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할머니들은 이날 모일 적잖은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려 한다. 

  길 할머니는 "우리들이 나오는 관계로 젊은이나 어린 학생들까지도 나오는데 아주 아플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나와야지"라며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중인 길원옥(89) 할머니(사진=김광일 기자)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명절이면 할머니들은 수요집회가 열리는 평화로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내 아이로 품으시고 세뱃돈을 주시고 축복해주셨다"면서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걸 확인해주셨다"고 덧붙였다. 

  경남 양산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15세이던 1941년 일본 순사에 끌려가 중국 광둥과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겪었다. 해방 후 22세의 나이로 귀향해서는 독신으로 지냈으며 현재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대표 격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다. 

  평양이 고향인 길 할머니는 13세이던 1940년부터 만주 하얼빈과 중국 석가장 등의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귀국해 만물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2004년 쉼터로 들어왔다. 

  한편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35명(국내 34명, 국외 1명)이 남았다. 피해자들이 고령이 탓에 올해만 5명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중앙일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 36명
  [중앙일보] 입력 2017.08.28 15:05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오전 별세했다. 89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노환으로 병원 생활을 하던 하 할머니가 이날 오전 9시10분쯤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고(故) 김군자 할머니가 지난 7월 23일 세상을 떠난 지 36일 만이다. 이로써 국내에 등록된 23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1928년생인 하 할머니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열여섯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우한(武漢) 등지에서 고통받다가 해방을 맞았다. 이후 귀향하지 않고 중국 현지에 머물던 하 할머니는 1999년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하 할머니는 지난해 2월 계단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중상을 입었다. 중국 현지에서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나빠져 국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서울 중앙대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병세가 호전돼 지난해 8월 퇴원했지만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재활·요양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패혈증 증세를 보였다.
 
  하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유일하게 한국 국적의 중국 거주자였다. 지난 2000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집회와 일본 현지 집회 등에도 활발히 참여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방안을 두고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양국 정부간 인식 차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4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정부가 자꾸 골대를 옮기고 있다”며 “한일 양국은 불가역적인 합의를 맺었고, 합의는 성실히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대표단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자민당 의원을 만나 “한국 국민은 정서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그 시기에 할머니들과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합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외교부의 태스크포스(TF)가 활동 중인데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이용수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