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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이야기

씨네프 무비 페스티벌-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전

금동원(琴東媛) 2017. 10. 18. 00:39

 

 

 

<씨네프 무비 페스티벌-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전>

 

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폭 넓은 깊이에 담긴 아버지의 성장담 (오락성 8 작품성 7)  

 

 

  시놉시스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 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무엇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들까.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는 혈육에 대한, 아버지의 됨됨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며 아버지의 성장담을 풀어낸다. 극중 아버지 료타는 기른 아들 대신 낳은 아들을 택하면서 혈육의 의미, 아들의 의미, 아버지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그렇다고 료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영화는 두 부모와 두 자식 모두를 통해 입체적 캐릭터들을 구현하며 동일한 상황에 처한 다른 등장인물들을 그려낸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폭 넓은 깊이를 보여주며 영화란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아들과의 생이별이란 신파적 주제를 정제된 감정으로 갈고 닦은 감독의 역량은 가히 놀라울 정도. 스필버그의 추천대로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픈 영화다.

 글 최지나 기자(무비스트)   

 


https://youtu.be/F9nGquesDug?list=PL5Pj5HR6QY54Ynl8zCmMiQHGuMbdA1uSf

 



 

 

   2. 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닷마을 다이어리 포스터

 

 

 

  15년 전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
어릴 적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만났다.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추억도 어느덧 희미해졌지만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에게만은 왠지 마음이 쓰이는데..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표 가족 드라마’는 일상 속의 사소한 아름다움과 슬픔, 기쁨을 발견해내는 섬세하고도 탁월한 솜씨로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울림을 선사한다. <걸어도 걸어도><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아무도 모른다>등의 가족 드라마로 영화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온 올해 데뷔 20년 차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작은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가 15년 전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남겨진 이복 동생 ‘스즈’를 만나면서 시작된 네 자매의 일상을 담아낸 가족 드라마.

 

  부모의 부재로 어린 나이부터 서로 의지하며 살던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를 만나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의 외도로 버려진 세 자매가 이복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된다는 이야기의 설정에 끌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첫째 ‘사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듯한 이복 여동생 ‘스즈’, 내면의 아픔을 안고 있지만 밝게 살아가는 둘째 ‘요시노’, 셋째 ‘치카’가 진정한 가족이 되면서 펼쳐지는 일상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 따뜻한 울림을 선사한다.

 

 

https://youtu.be/DPzKltwk1kE

 

 



  3.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포스터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태풍이 지나가고' 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태풍이 지나가고>(7월27일 개봉)의 이야기 아래로는 두 줄기 상실의 강이 흐르고 있다. 주인공인 료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료타와 교코의 이혼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극중에서 파편처럼 틈입될 뿐 온전히 서술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주인공들은 결국 ‘남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냥 선량하거나 정직하지도 않다. 부당이익을 취하기 위해, 료타는 자신이 일하는 흥신소 소장을 속이고 소장은 고객을 속인다. 마냥 사람 좋게 보이는 료타의 어머니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남들이 안 볼 때는 쓰레기도 거리낌없이 버린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뜻하지 않게 남겨진 그 보통 사람들은 이제 다가오는 태풍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무엇을 확인하게 될 것인가.

 
 

   료타(아베 히로시)는 소설가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 때문에 남의 뒤를 캐며 흥신소에서 일한다. 헤어진 아내 교코(마키 요코)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를 가끔씩 따로 만나지만,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료타는 아들과의 심리적 거리만 확인한다. 료타의 어머니(키키 키린)는 태풍이 휘몰아치던 날, 자신의 집에 들른 예전 며느리 교코를 설득해 재결합의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고작이라 말할 수 있는 <걸어도 걸어도>와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두 편 모두 키키 키린과 아베 히로시가 모자로 출연하는데, 아베 히로시가 맡은 극중 인물은 이름까지 같다. 모녀가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시작하는 도입부, 대중가요 가사에서 따온 제목 작법(<태풍이 지나가고>의 경우 원제인 <바다보다 더 깊이>)도 공통적이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나머지 가족들의 삶에 드리운 짙은 음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두 작품은 온도나 태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걸어도 걸어도>의 후반부에서 아들이나 어머니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전까지 함께 궁금해했던 스모 선수 이름을 각자 불현듯 떠올리게 되지만 그냥 혼자만 알고 만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가고>에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전 대화에서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피겨 스케이터 이름을 어머니가 떠올린 후 딸에게 곧바로 말해준다. 정확하면서 서늘한 면모가 있는 <걸어도 걸어도>에 비해, <태풍이 지나가고>는 넉넉하면서 좀더 따뜻하다. 

 

  직전에 내놓았던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이번 작품 <태풍이 지나가고>를 함께 묶어놓고 보면, 최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화술은 확실히 이전보다 친절해졌고 그만큼 더 대중적으로 되었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사가 좀더 직접적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실어나르고 있고, 장면 설정은 좀더 관습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대사로는 종반부에서 어머니가 등려군의 노래에 대해 언급하다가 사실상 이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대목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부산행>의 어떤 대사에서도 그런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노골적인 메시지 대사를 늘어놓게 되면 각본을 쓴 사람은 스스로 그 과도함을 의식한 나머지, 배우의 매력에 기대어 유머러스하게 눙치는 마무리 문장을 추가하기도 한다(여기서는 키키 키린이 “나 지금 엄청난 말을 했지?”라고 너스레를 떤다). 어머니가 우두커니 불단을 마주하고 서 있는 료타를 보고서 “왜 우울해하니?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그 향이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라며 관객들에게 그 마음의 궤적을 곧바로 일러주는 대목 역시 조급한 작법의 예로 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습적인 장면 설정으로는 료타의 도박 습성과 관련된 묘사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몇몇 대목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지나가고>가 건네는 위로는 곡진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 역시 한 가지 질문을 끈질기게 던진다. 당신은 예전에 당신이 원했던 어른이 되었습니까. 하지만 그 물음 앞에서 황망해지는 관객들에게 <태풍이 지나가고>는 이렇게 슬쩍 덧붙이는 것만 같다. 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에요.

 
 

   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뤄지지 않은 꿈이 뜻하는 것은 그저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 꿈이 곧 삶 자체인 것은 아니다. 료타는 삶의 시제를 계속 착각했다. 미래의 일을 질투하고 과거의 업을 따라갔다. 어쩌면 행복은 오래도록 움켜쥐었던 것을 손아귀에서 놓아버린 후에야 새로 쥘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할 때면 같은 말을 세 번 거듭하는 버릇이 있었던 료타는 극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떤 말을 자기도 모르게 세 차례 반복하고서 흠칫 놀란다. 그러자 그는 그 말을 의식적으로 한 번 더 힘주어 되뇐다. 혹시 료타는 애초에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을 그저 위로하기 위해 건넸던 걸까. 그러나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같은 상황을 무기력하게 되풀이하는 관성이 아니다. 조금 늦었더라도, 기필코 한번 더 덧붙여서 믿음을 끌어안으려는 다짐이다.

 

 

 

 

https://youtu.be/zCwFeG2mc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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