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 이미 완전한』
헤르만 헤세저 | 현자의숲
내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낯설고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오직 하나의 원인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고행을 통해 껍질을 벗기려고 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을 잃고 만 것이다. 나는 나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내 생각이나 내 삶을 괴로움 따위로 시작하지 않으리라. 이제 나 자신을 죽이려 들거나 조각내어 그 폐허에서 비밀을 찾는 짓도 그만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도 나를 가르치지 못하리라. 나는 나로부터 배울 것이다. 나는 나의 학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비밀을 알아내고 말 것이다.
○목차
싯다르타를 키운 것
내 영혼의 샘
고통의 사슬
명상, 일시적 마비
붓다의 선물
우리가 정작 모르는 것
사유와 감각, 그 비밀의 소리
빼앗을 수는 없는 것
더욱 훌륭한 일
누구의 밥을 먹고 사는가
자신의 궤도를 가진 별처럼
옹기장이의 물레
인생의 가을이 두려운가
어리석은 장난, 소유
거룩한 스승
여행자의 걸림돌
강에는 현재만 있다
변함없이 유용한 사상
이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생명의 흐름, 지혜의 즐거움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경탄하라
○책 속으로
“그건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오. 카마스와미만 하더라도 나만큼 지혜롭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 속에서 쉴 수는 없는 사람이오. 반면에 이성(理性)은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이따금 볼 수 있소. 세상사람들은 대부분 바람 따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낙엽과 같은 존재요. 자신의 궤도를 가진 별 같은 사람은 드물다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오래 걸어온 데서 느끼는 피로. 그것은 늙음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예전에 자기가 바라문으로서, 고행자로서 왜 부질없이 ‘나’와 싸웠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너무나 많은 지식, 신성한 시, 번거로운 제사 규칙, 지나친 금욕, 지나친 고행, 노력이 오히려 ‘나’를 정복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찾은 지혜에 대해 하는 말이네. 지식은 남에게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네. 누구나 지혜를 찾아낼 수 있지. 지혜롭게 살 수도 있고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네. 그러나 지혜를 말해주거나 가르쳐 줄 수는 없어.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진리일세. 이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사상이지.
인간은 모든 사물을 사랑할 수 있다네. 그러나 나는 말을 사랑할 수는 없네. 어떤 가르침도 나에게는 아무 이득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것은 딱딱하지도 연하지도 않고, 빛도 없고 모나지도 않으며 향기도 맛도 없고, 그냥 말이기 때문일세. 마음의 평화를 존중하는 자네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아마 그 숱한 말일 테지. 해탈이니 덕이니 윤회니 열반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말에 지나지 않네. 열반이라는 것은 없네. 열반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지.” ----본문 중에서
■ 나는 나로부터 배울 것이다
quartz2 | 2017-06-30
왜 내 삶은 이리도 힘든 걸까’
같은 일도 남들은 쉽게 넘기는 듯한데 유독 나만 버겁다. 의지를 갖고 선택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삶이 참 마음에 안 들 때가 잦다. 현실로부터 도망이라도 가고 싶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살아보고도 싶다. 삶[生]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내용을 떠나 제목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책, 헤르만 헤세의 <당신의 삶, 이미 완전한>을 읽을 지어다.
동양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대거 남겼다고, 오래 전 헤르만 헤세의 이름과 함께 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그러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작품의 무엇이 그와 같은 평으로 이어졌는지, 게으름 탓에 그의 책을 읽으려 들지 않았던 나는 알지 못했었다. <당신의 삶, 이미 완전한>의 주인공은 싯다르타이다. 이야기의 배경 또한 당연히 동양일 수밖에. 유럽인들이 품었던 동양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저자는 작품을 통해 실제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했다.
싯다르타. 그의 삶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의 신분은 바라문이었다. 승려계급으로 왕보다도 상위라고 하니 꽤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였던 모양이다. 그를 묘사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온몸 가득 고결함이 묻어났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감미로운 목소리, 걸음걸이와 완벽한 예의를 갖춘 몸짓, 고매한 사상과 열정적인 의지, 높은 사명감 깃든 영혼까지.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싯다르타의 부모는 당연히 행복을 가득 느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일이 잦다.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쪼들리고, 때론 부유함에 취해 마음이 비어있음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무엇이 싯다르타로 하여금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구도의 길을 걷게끔 만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내려놓은 채 그는 수행자들을 따라 나섰다. 친구 고빈다 또한 이에 함께했다. 온갖 욕망에 수시로 시달리는 나이기에 싯다르타의 결정이 불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가 부모가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게 되리라고 조시므레 짐작을 했지만 오히려 그는 현실에서 보다 더 멀어질 따름이었다.
세상에 진실로 현명한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참스승이 없다는 탄식의 목소리를 숱하게 들어왔다. 정해진 제도가, 사람들이 좇는 풍토가 진실된 가르침을 허락지 아니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일단 경쟁에서 승리부터 하고 봐야 하는 상황이요, 패배를 생존 실패 즈음으로 해석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지혜 따위를 배우는 건 사치에 불과할 따름이다. 나름 사명감으로 가득했던 교사들은 시일이 흐를수록 열의를 상실하고, 나중에는 입시에 초점을 맞춘 것만이 교육이라는 식의 왜곡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싯다르타는 참된 스승을 필요로 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분명 아니었을 터임에도 그가 스승으로 삼으려 들었던 이들은 제 몫을 끌어안으려 드는 모습을 보였다. 거친 음식을 먹거나 때론 굶는 등의 노력을 가치 폄하하려는 건 아니나 물질의 절제가 고귀한 정신의 획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부처는 조금 달랐다고 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부유함에 취해보고 쾌락에도 빠져본 그는 아들과의 영원한 작별을 경험하며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생성의 강과 생명의 흐름이 일치되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 흐름에 따라 단일한 것을 지향하는 지혜의 즐거움이 감돌’ 정도의 상태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 평생에 걸친 방황과 수행 끝에 싯다르타가 눈뜬 가치는 사실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처럼 누구 하나 사랑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것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들여야 하는 시간은 어쩌면 평생일 수도 있으며, 끝끝내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제법 된다.
세계와 나,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경탄하며 존경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기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 즈음 되면 과연 난 내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 싯다르타처럼 수련을 떠날 수도 없는 나는 그저 기다려 본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날, 나를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로부터 무어가 됐건 배울 수 있는 바로 그날을!
『헤세의 생각』 -너희는 지금 손에 꽃을 들고 있는가?
헤르만 헤세저 | 힘찬북스
너희는 손에 꽃을 들고 있는가, 총을 쥐고 있는가?
너희는 그리운 편지를 쓸 것이냐, 남을 헐뜯는 글을 쓸 것이냐?
좋을 대로 하라. 하지만 잠시라도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생각해보라.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의 잠언집.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데미안을 만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데미안』, 지성과 감성으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게 그려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빛나는 언어들이다. 인간은 가야 할 길을 뻔히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엉뚱한 길로 갈 때가 많다. 그것은 몰라서 가지 않는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이다. 인간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그 길 끝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헤세의 물음을 이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헤세와 더불어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여행하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작가 소개
(1877~1962) 내면의 변화를 주제로 오랜 작품세계를 그려온 작가로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습들을 주로 그리고 있다. 1877년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하였다.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에 어려운 주(州)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천성적인 자연아로 기숙학교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1904년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를 간다. 여기서 그는 시를 쓰는데 전념했고,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초기의 낭만적 분위기의 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쟁 중 극단적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 아내의 정신병과 자신의 병 등 힘들어져가는 가정 생활 등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출구를 찾으려하는데 융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로는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첫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게 된다. 특히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는 R.M.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도 그를 주목하게된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1904)였다.
주요작품으로 현실의 무게는 수레바퀴 밑으로 그들을 밀어 넣지만 결코 짓눌려서도 지쳐서도 안 되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로 가수 무오토, 작곡가 쿤,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르트루트를 그린『게르트루트 Gertrud』(1910),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전편을 통해 끝없는 대립 상태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주인공 베리구드가 나름대로의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 『로스할데 Rosshalde』(1914)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 Knulp』(1915)등이 있다.
또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미안 Demian』(1919)은 신앙이 깊고 성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 악의 세계가 자신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수수께기 소년에 의하여 자기발견의 길로 인도되어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비평가의 문체 분석에 의해 작가가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Siddhartha』(1922) 또한 헤세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복음서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깨달음을 갈망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속세의 쾌락과 정신적 오만을 초극하고 완성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3년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는 1931년에 시작되어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긴 성립시기는 나치시대와 일치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문화의 침체와 정신의 품위상실, 야만과 원시의 시대에 작가 헤세는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속에 세운다.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하였다.
○목차
머리말 -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희망
1장 - 모든 날들은 추억의 한 토막이 된다
2장 - 사랑이란 미소 지을 수 있는 능력
3장 - 언젠가는 평화가 찾아오겠지
4장 -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5장 - 마음을 주어야 아름다움을 얻는다
헤세에 대하여 - 완전한 존재에 다가서기 위하여
○출판사 리뷰
헤세의 작품은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도 왠지 낯익은 듯한 친근감을 준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동양적인 색채와 정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편안하게 잘 읽힌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헤세의 문장은 아름답고 따스하면서도 경쾌하다. 읽고 나면 아련한 정감과 여운이 오래 남고, 무언가 소중한 것을 새로 발견하고 얻은 듯한 행복감이 가슴속을 뿌듯하게 채운다. 헤세의 작품은 자전적인 성격의 것이 많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고뇌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만큼 진정성이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찾고자 하는 내면의 길을 함께 가는 산책과 탐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헤세가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그의 꿈과 희망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증오보다 사랑이, 전쟁보다 평화가 아름답다’라는 그의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재미없다는 푸념이나 각박하고 삭막한 세태를 탄식하는 목소리도 간단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인간이 저마다 이 소중한 사랑과 평화를 먼저 실천하려는 마음가짐만 가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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