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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미투에 삐딱한 한국사회 민낯

금동원(琴東媛) 2018. 3. 10. 13:11

 ■ “이제 여직원들과 일 못하겠네” 미투에 삐딱한 한국사회 민낯




   [한겨레] 정치인들은 ‘꽃뱀론·음모론’ 제기

   일부 언론은 피해자 선정적 보도 , 여성 배제하려는 ‘펜스룰’ 부각도

   전문가들 “전사회적 반성 필요, 동등한 인격체 인식 뿌리내려야



  거센 ‘#미투’ 물살에 씻겨 성폭력에 둔감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에선 위기감을 드러내며 이를 거스르려는 움직임 또한 격렬해지고 있다. 용기를 낸 피해 고백마저 ‘꽃뱀론’ ‘음모론’ 등으로 폄훼하거나, ‘펜스룰’을 내세우며 여성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미투의 기회를 성평등 구조의 강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낡은 가치관의 역행에 편승하기보다, 공고한 성차별 관행을 깨려는 성찰과 노력을 전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투의 의미를 깎아내리거나 왜곡하는 시도는 미투마저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오찬 자리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대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획했다는 얘기가 돈다”고 ‘음모론’을 띄웠다. 같은 당의 성폭력근절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순자 의원도 8일 “우리에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거의 ‘터치’(접촉)나 술자리 합석에서 있었던 일들이었지 하룻밤 지내고 이런 일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투 폭로 대상이 된 여당 쪽을 공격하기 위해 미투의 의미를 비틀거나, ‘강간’만을 성폭력이라 인정하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를 구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투에 지지 의사를 밝혀온 여당도 ‘2차 가해’ 혐의를 피해 가긴 어렵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폭로되자 같은 당 윤주원 부산시의원 예비후보는 트위터에 “달라는 ×이나 주는 ×이나 똑같다”는 글을 올렸다가 당에서 제명 처리됐다. 민주당 전북도당의 한 당직자도 6일 페이스북에 “알 듯 모를 듯 성상납 한 것 아니냐”고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사직서를 냈다.

  미투를 다룬 언론 보도도 ‘피해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6일 <엠비엔>(MBN)은 안 전 지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김지은씨는 안희정 전 지사의 열혈팬이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피해 사실과는 무관하게 피해자의 ‘전력’에 집중한 것이다. 명백한 성폭력을 ‘(가해자의) 나쁜 손’, ‘성추문’ 등으로 묘사하면서 피해 사실을 축소할 우려가 있는 표현을 쓴 경우도 발견됐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투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회식 등 모임에서 여성과 섞이지 않겠다는 남성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성 직장인 이아무개(30)씨는 “이제 여자 직원들과는 말도 못하겠다”는 푸념을 자주 늘어놓는다. 이씨는 “미투 당할까 두려운 탓에 아예 여성과는 접촉을 최소화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성들 사이에 성폭력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펜스룰’도 실제로는 미투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다. ‘펜스룰’이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인터뷰에서 언급한 규칙으로,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미국에서는 성차별·성폭력이 일어나면 개인은 해고를 당하고, 회사는 수십억원 수준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담한다”며 “한국은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매우 미약한데 벌써부터 ‘펜스룰’이 언급되는 행태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연합회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행진을 마친 뒤 부조상 앞에 장미를 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실제 펜스룰이 극단적으로 작용하면 오히려 여성 해고나 격리 등 성차별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 한 국회 비서진은 “오늘 의원님이 ‘요즘 주변에서 여직원들 전부 자르고 남자들로만 고용하라 그런다’고 웃으며 농담(?)을 하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펜스룰을 통해) 여성을 일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성차별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것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최악의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만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현실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미투 고백으로 ‘성차별적인 문화를 바꾸자’고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가해자에 대한 사법 처리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미투에 참여한 공익제보자들이 다시 자신의 일터에서 굳건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비 최민영 송경화 박준용 기자 withbee@hani.co.kr



  ■여직원에 말 안섞고 톡으로 지시.. 미투 이후 또다른 차별

  김선엽 기자 입력 2018.03.07. 03:07




  성추행 오해살라.. 과도한 여성 경계 '펜스 룰'에 그녀들이 운다
  男직원들은 동행출장 거부하고 상사들은 여직원 빼놓고 회식
  전문가들 "또 다른 가해 행위.. 직장 내 남녀 갈등 골만 깊어져.. 여성 경력에도 장벽 세우는 일"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일상에서 벌어지던 성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일부 남성들이 직장에서 '성폭력 가능성을 미리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회식이나 출장에서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있다. 이런 부당한 대우가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가해 행위'라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중견 기업에 다니는 4년 차 직장인 박모(여·29)씨는 "요즘 회사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고 했다. 박씨의 상사는 며칠 전 "여직원들은 집에 들어가고, 남자들만 회식에 참석하라"고 했다. 2~3차로 이어지는 회식에 '여직원이 있으면 '성폭력 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박씨는 업무 효율을 위해 동료와 친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회식 참석을 금지당한 것이다. 박씨는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인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서울의 한 해운 회사에 다니는 윤모(여·31)씨는 요즘 부장과 직접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평소 여직원과 소통을 잘하던 부장인데, 최근엔 업무 지시를 사내 메신저로만 한다. 부장은 주변에 "여직원과 대화 중 말실수를 할까 걱정돼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씨는 "부장과 업무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과도한 경계를 '펜스 룰(Pence Rule)'이라고 부른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엔 '펜스 룰'을 하고 있다는 남성들이 올린 글이 돈다. 게시물엔 '여직원이 무섭게 느껴진다' '여자와 얽히면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니 남자들이 여자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직장인 고모(31)씨는 "남자 직원들끼리 방심하다 '미투' 당할 수 있으니 여직원들 조심하자고 말한다"며 "얼마 전 친한 친구로부터 '웬만하면 여직원들은 피하라'는 조언도 받았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 기업에 다니는 성모(38)씨는 "얼마 전 팀장이 회식 직전 '잘못했다간 요즘 큰일 난다'며 카드만 주고 본인은 일찍 집에 들어갔다"며 "확실히 회사 내에서 윗분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에 노출돼 있는 여성들이 '펜스 룰'로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성들의 경력에 장벽이 된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의 한 의료 기기 회사에 재직 중인 이모(여·29)씨는 다음 달로 예정돼 있던 사장 동행 중국 출장 일정이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이씨 대신 남자 선배가 사장과 출장을 가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오랫동안 현지 바이어를 설득해가며 출장 준비를 했던 게 헛수고가 됐다"며 "'미투 운동' 후 사장이 여직원 동행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업무 업적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다.


  미국에서도 '펜스 룰' 논란은 뜨겁다. 고위 임원급 멘토들이 여직원들을 피하거나 업무 미팅 등에서 배제하면서 여성들이 고위급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도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성들이 여성들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시간을 피하는 게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는 방법이라면, 이는 여성들에게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펜스 룰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줄어들게 할 것'이라고 썼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 연구원은 "'펜스 룰'은 잘못된 방법론"이라고 지적했다. 고 연구원은 "이같이 문제의 본질을 피하는 방법으론 남녀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며 "여성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대화와 소통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펜스 룰(Pence Rule)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인터뷰에서 언급한 자신만의 철칙에서 유래한다. 그는 당시 "아내 이외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설에 오를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내 외 다른 여성들과 개인적인 교류나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