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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사물의 정다움/ 정현종

금동원(琴東媛) 2019. 2. 12. 15:07

사물의 정다움

 

정현종

 

의식의 맨 끝은 항상

죽음이었네.

구름나라와 은하수 사이의

우리의 어린이들을

꿈의 병신들을 잃어버리며

캄캄함의 혼란 또는

괴로움 사이로 인생은 새버리고,

헛되고 헛됨의 그 다음에서

우리는 화환과 알코올을

가을 바람을 나누며 헤어졌네

의식의 맨 끝은 항상

죽음이었고.

 

죽음이었지만

허나 구원은 또 항상

가장 가볍게

순간 가장 빠르게 왔으므로

그때 시간의 매 마디들은 반짝이며

지나가는 게 보였네

 

보았네 대낮의 햇빛 속에서

웃고 있는 목장의 울타리

木幹의 타오르는 정다움을,

무의미하지 않은 달밤 달이 뜨는

우주의 참 부드러운 사건을,

어디로 갈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길과 취기를 뒤섞고

두 사람의 괴로움이 서로 따로

헤어져 있을 때도

알겠네 헤어짐의 정다움을,

 

불붙는 신경의 집을 위해

때때로 내가 밤에 깨물며

의지하는 붉은 사과, 또는

아직도 심심치 않은

오비드의 헤매는 침대의 노래

뚫을 수 없는 여러 운명의

크고 작은 입맛들을.

 

 

-『고통의 축제,(문학과 지성사, 1974)

 

 ○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5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과 시선집 『정현종 시전집』 『섬』, 시론집 『숨과 꿈』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네루다 메달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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