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신달자
종이 안에서 울리는 것을 듣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종이 앞에서
뜨거운 과욕의 갈망을 걷어 내는 순간
울리는 종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리고
넝마같이 귓전에 펄럭이는 소음을 지나
해거름에 더욱 눈 찔리는 불빛들 헐떡이는
울화처럼 치솟은 빌딩 숲을 걸어와
간절히 마주하는 종이 앞에서
맑은 랩으로 싸 얼려 놓은 순수라는 말
두 손을 비벼 더운 사람의 기운으로
풀어 녹이는 순간
저 지하 층층 어둠 속에서 푸르게 다가와
내 가슴에 울리는 종
종 울린다
-『종이』, (민음사, 2011)
○ 신달자 시인은 1964년 〈여상〉을 통해 시 〈환상의 밤〉으로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면서 재등단했다.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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