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수상록』1~2
몽테뉴 저 / 손우성 역 | 동서문화사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니고, 나의 본질이다.”
‘나’라는 개인을 통해 보편적 인간에 이르고자 했던 몽테뉴.
대략 500년 전에 태어났으나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
다른 것에 대한 가치, 다양함에 대한 존중 등
오늘날에게까지 무시할 수 없는 사상적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있는
그의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에 모럴리스트 전통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문학에 영향을 미쳤고,
파스칼, 셰익스피어, 존 로크, 루소 등
다양한 분야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의 삶의 조각들이
『몽테뉴 수상록(Les Essais)』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도달점이자 프랑스 모럴리스트 문학의 원천을 이루는 프랑스 사상가 M.E. 몽테뉴의 에쎄『몽테뉴 수상록』전3권 107장이 완역되어 출간되었다.(동서문화사)
프랑스 역사상 가장 험악한 시대에 쓰인 문집인 이 『몽테뉴 수상록』은, 1570년 몽테뉴가 보르도고등법원 참사를 사퇴한 뒤 집필하여, 80년 보르도에서 전2권으로 간행되었다. 그 뒤 대폭적으로 가필하여 새로이 제3권을 집필하여 88년 파리에서 간행하였다. 그 뒤에도 죽을 때까지 가필·정정을 계속하여 사후인 95년 신판이 나왔다. 전3권의 독립된 107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토론과 회의 진행방법, 신앙과 과학, 어린이 교육, 남녀평등과 성(性) 문제, 문명과 자연, 재판과 형벌, 전쟁의 참화, 식민정책의 비리 등,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들을 격언과 일화, 시(詩)와 유머와 역설을 섞어가면서 자기 본연의 상태를 중심에 둔 고찰형식으로 되어 있다. 두께에 놀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며, 장황하지만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의 인용이나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시대적 간격을 뛰어넘는 그의 탁월한 시각도 접할 수 있다.
○역자: 손우성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다. 일본 법정대학불문학과를 졸업, 아테네프랑세에서 프랑스문학 전공. 이하윤.김진섭.이선근.정인섭 등과 외국어문학연구회 결성 [해외문학] 창간동인 활동. 서울대 교수, 성균관대 교수, 성균관대문리대 학장, 성균관대 대학원장,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프랑스 문화훈장, 프랑스 공적훈장, 한국펜클럽번역문학상을 받다. 학술원 회원, 평론집『비정통사상』 옮긴책 부르제『제자』, 사르뜨르『존재와 무』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죽음은 인간의 자유가 가진 마지막 무기”
친구 라 보에시의 죽음으로 독서와 집필을 시작하게 되면서 몽테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죽음이라는 주제.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의 자유를 지향하는 스토아주의적 논조를 보이지만, 동시에 쾌락주의적 경향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작품을 일관하는 온당한 회의주의 정신에 의해 누그러져 있다.
몽테뉴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졌던 경험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던 것을 묘사하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욕주의적으로 맞서는 것이 절제나 지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살을 옹호하는 고대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자살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고 비겁하며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공격한다. 그리하여 그는 금욕주의를 비롯한 모든 독단론에 맞서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576년에 집필한 [레이몽 스봉의 변호]라는 글(2권 12장)이다.
“끄세즈? 나는 무엇을 아는가”
<레이몽 스봉의 변호>에는 고대에 원천을 둔 회의주의가 강조되어 기술되고 있으나, 거기에 나타나는 유명한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구절은 인간의 이성, 인식력, 그리고 학문적 지식의 허망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관찰에서 우러난 상대주의와 패러독스, 또는 인간에 대한 자비와 관용의 표현이며, 후세의 과학주의, 민주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기 때문에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으로, 스봉의 학설을 변호한다는 것은 구실일 뿐 스봉을 다룬 것은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으며, 몽테뉴는 여기서 대부분 자기 고유의 사상을 전개한다. 게다가 스봉을 다룰 때도 변호하기보다는 반박하는 경우가 더 많다. 몽테뉴는 여기서 인간의 지식을 공격했지만, 자아에 대한 인식까지 공격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자신을 알 수 없다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적어도 우리는 자신을 강요하여 현명해져야 한다"는 몽테뉴의 말은 자아 인식이 가능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아인식이 지식과 지혜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회의주의는 몽테뉴를 독단적인 철학에서 자아에 대한 연구로 이끌어간다.
1578년 여름에 신장결석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지병이었던 이 병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나타날 것을 전부터 두려워해왔던 그는 그 두려움에 비하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며 어느 정도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초연한 경지에 이르렀다. 교육에 대한 견해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교육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에서 그는 좋은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를 논한다. 그에 의하면 단순히 기억 속에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키움으로써 도덕적으로 독립된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이야말로 좋은 교육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때 행복할 수 있다”
1588년에 파리에 머무는 동안, 몽테뉴는 에쎄『Les Essais』를 증보해서 제5판을 출판하는 동시에 별도의 13장으로 이루어진 제3권 초판을 펴냈다. 인간에 대한 그의 신뢰와 유대감은 외국인들과 맺은 우호관계, 보르도 시장으로 두 번이나 선출된 일, 흑사병이 창궐하는 동안 영웅적 행동을 보여준 농부들에게 느낀 애정 등으로 인해 깊어져 있었다. 제3권은 첫 문장부터 인류와 개인에 대한 이 새로운 유대감을 선언하며, 그의 자화상은 인류의 자화상으로 확대된다.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그는 더욱 솔직해지고 공적 활동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성찰이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그 자신을 향해 쏠리는 것은 자아 연구야말로 인간 본성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와 행복은 남과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생활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자신의 타고난 조건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성찰과 자제를 통하여 정신적 독립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항상 자신의 심판관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나를 심판하는 나 자신의 법률과 법정을 갖고 있다. 나는 어느 곳보다도 자주 그 법정에 출두한다"고 몽테뉴는 말했다.
결국 몽테뉴는 인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위험한 유혹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 개선의 전제 조건이다. 몽테뉴는 질병을 통해 고통을 쾌락과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받아들이고 고통과 쾌락을 조화시키는 법을 배웠고,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이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그는 말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몽테뉴
몽테뉴(Montaigne, Michel Eyquem de. 1533. 2. 28~1592. 9. 13)는 프랑스 최대의 사상가, 모럴리스트 또는 프랑스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가이다.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현재의 생 미세르 드 몽테뉴 마을) 출생으로,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1565년 프랑수아즈 드 라 샤세뉴와 결혼, 156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번역한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자연신학(自然神學)』을 1569년에 간행하였다. 1571년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인생 에세이』(2권)를 보르도에서 간행하였고, 이 해 신장결석 치료를 겸하여 독일·스위스·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여행기 Journal de voyage』(1774)가 나왔다. 1586년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 집필을 계속하여 1588년 3권 107장의 에쎄『수상록』신판을 간행하고, 독서와 글을 쓰면서 지내다 1592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수상록』에서 몽테뉴는 인간성의 공통보편이라는 논거에 입각하여 그 자신의 성격·행동·체험·주장을 솔직하게 적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독자는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와 직접 부딪쳐 인간성 일반에 대해 고찰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자연과 사회의 사물·사실을 병립 또는 대비시켜 고찰케 함으로써 회의와 판단전환을 도입하여, 선입견을 물리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 독자 스스로가 검증과 탐색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다. 몽테뉴는 지식을 체계화하지 않고 사고와 판단력의 자유로운 활동만을 중시, 그 실현을 매력 있는 문장표현으로 이루어냈다.
그는『몽테뉴 수상록』에서 프랑스 모럴리스트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이래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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