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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다시 쓸 수 있을까 /칼리파티데스

금동원(琴東媛) 2019. 3. 17. 11:44



다시 쓸 수 있을까』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저/신견식 역  | 어크로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스웨덴 문학 거장이 전하는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운, 인생 후반기 아포리즘
“50년간 써오던 글이 갑자기 멈췄을 때, 깨달았다, 시시포스와 같은 삶은 축복이었다고”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77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 했을 때, 그는 이제 작가로서 은퇴할 때라고 결심하게 된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곧 시시포스와 같은 운명(바윗돌을 언덕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는 벌을 받은, 그리고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윗돌이 굴러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을 저주했던 그는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에서 곧 깨닫는다. 시시포스와 같은 삶은 축복이라고.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뮤즈(시와 음악의 신)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고 칼리파티데스는 이렇게 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칼리파티데스에게 모든 책은 다음 책으로 가는 다리와 같았다. 마치 하나의 연애가 또 다른 연애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랬기에 더욱더, 자기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글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작가에게 이 사태는 매우 치명적이며 중대한 사건으로 찾아왔다.



 ○작가 소개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77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 했을 때, 그는 이제 작가로서 은퇴할 때라고 결심하게 된다. 그는 뮤즈(시와 음악의 신)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고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쓴다. 자기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글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작가에게 이 사태는 매우 치명적이며 중대하게 다가왔다. 『다시 쓸 수 있을까』는 이 사건 이후 칼리파티데스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그를 만든 정신적, 물리적 세계를 거슬러 탐색하는 일종의 여행기다.

 나이 든 작가의 회한과 괴로운 고민을 담고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시 쓸 수 있을까』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우울함보다는 낙관에 가깝다. 칼리파티데스는 친구로 삼고 싶을 만큼 상냥하고 재치있는 가이드다. 불만에 차 있을지언정 비관적인 쪽은 아닌 그의 다양한 만남과 길안내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야 하나를 얻게 된다. 기품 있고 동시에 유머러스한 이 에세이에서 나이 듦, 글쓰기, 자유와 관용에 대한 심오하고, 매혹적이며, 철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 : 신견식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비교언어학, 언어문화 접촉, 전문용어 연구 등이며 15개가 넘는 현대 언어및 해당 언어의 옛 형태까지 번역한다. 지은 책으로는 『콩글리시 찬가』가 있으며, 『불안한 남자』 『블랙 오로라』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미친 듯 푸른 하늘을 보았다』 『언어 공부』를 번역했다.

15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언어 괴물’.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그리스어, 일본어, 중국어, 라틴어 등을 사전 없이 읽는다. 더 놀라운 것은 중세 영어나 중세 프랑스어처럼 옛말까지 다룬다는 점이다




○책 속으로


힘든 때였다. 소설 집필에 온 힘을 기울이다 진이 몽땅 빠지는 바람에 글쓰기를 관둘까도 생각했다. 몸을 버리느냐 글쓰기를 버리느냐.

--- p.11

어느 날, 작업실 샤워기 밑에서 옷을 입은 채로 온몸을 푹 적셨다. 안톤 체호프가 조언했던 실패에서 회복하는 방법을 따라 해본 것이었다. 말 그대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커다란 차질이거나 엄청난 실패다. 체호프는 이럴 때물에 젖은 개를 따라 하라고 말했다. 몸을 흔들어 물을 털어 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정반대였다. 나는 감기에 걸려 덜덜 떨었고 슬픔은 뼛속들이 파고들었다. 나는 물에 빠진 개였을 뿐만 아니라 감기까지 걸린 전 작가였다. 나는 77년을 살았다. 세월은 물보다 무거웠다. 무게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기는 할까?

--- p.12

선원들은 순풍에 대해 얘기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쭉 끌려가다 보면 큰길이든 오솔길이든 이야기가 알아서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고,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무슨 일이든 생길 수도 있다. 나는 그걸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도무지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다. --- p.19

“이보시오, 내 친구여. 어쩌다 보니 작가이자 철학자가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시포스 신화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것 같군요. 제우스는 벌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니까요. 그 반대죠. 자비를 베풀어준 거라고요.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 p.30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내가 아내의 사생활에 끼어드는 듯한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앞서 말했듯 이, 따로 방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 방에는 잘 때만 갔다. 나는 거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런 것은 모두 시내의 작업실에서 했다. 거기에 내 책과 음반과 담뱃대들이 있었다. 내 방은 낯설고 서글프고 조그마하게 느껴졌다. 남은 나날을 이 감방에서 보내야 하는 것일까? --- p.55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었다. 대답은 ‘떠나라’였다. 그래서 떠났다. 일흔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는 이런 대답이 머릿속에 자주 맴돌았다. “돌아가라.”

--- p.92

우리가 무엇을 주문할지 서로 의논하는 동안 웨이터가 끼어들더니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 스웨덴어로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몇 년간 일하다가 귀국했다고 했다. “그리스도 세상의 모든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달콤한 삶이 있는 곳이거든요.” 내가 트위터에 그 말을 올려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 p.161

어린 배우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유명 연예인이 고전 비극을 연기하면서 자기 말도 이해하지 못하고 관객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봤다. 그런데 이 젊은 목소리들은 제대로 해냈다. 나는 그들에게, 아이스킬로스의 말에 나를 맡겼다. 가슴이 터질 듯이 뿌듯했다.                             

--- p.184



출판사 리뷰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삶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문학적 위기를 마주한 스웨덴 현대문학 거장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철학적인 은퇴 번복 에세이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77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 했을 때, 그는 이제 작가로서 은퇴할 때라고 결심하게 된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곧 시시포스와 같은 운명(바윗돌을 언덕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는 벌을 받은, 그리고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윗돌이 굴러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을 저주했던 그는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에서 곧 깨닫는다. 시시포스와 같은 삶은 축복이라고.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뮤즈(시와 음악의 신)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고 칼리파티데스는 이렇게 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칼리파티데스에게 모든 책은 다음 책으로 가는 다리와 같았다. 마치 하나의 연애가 또 다른 연애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랬기에 더욱더, 자기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글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작가에게 이 사태는 매우 치명적이며 중대한 사건으로 찾아왔다.

“내 소설이 처음으로 출간된 1969년 이후 나의 나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글쓰기가 막히는 일도 없었고 흐름이 방해받은 적도 없었다. 모든 책은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다리였다. 연애와도 참 비슷했다. 하지만 이제 2015년이고 내 기력도 점점 쇠약해져 갔다. 여태까지 나를 이끌어왔던 헌신적 열정을 그러모을 힘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14쪽)

다행히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한 게 분명하다. 왜냐고? 우리가 들고 있는 바로 이 책이 그가 뮤즈에게 버림받은 이후 나온 책이기 때문이다. 『다시 쓸 수 있을까』는 이 사건 이후 칼리파티데스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그를 만든 정신적, 물리적 세계를 거슬러 탐색하는 일종의 여행기다.


뮤즈(예술의 신)에게 버림받은 작가 테오도르 다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떠나다
아내의 집으로, 여름 별장으로, 트위터로, 그리고 고향 그리스로

“무엇이 또는 누가 나를 나 자신으로 되돌려놓을까”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다시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서, 그는 일상이었던 스톡홀름 집필실에서 벗어나 아내의 집으로, 여름 별장으로, 트위터로, 그리고 고향 그리스로 움직인다. 일상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발걸음과 시야를 옮기면서 자신의 무뎌진 관찰력을 가다듬을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다시 쓸 수 있을까』는 칼리파티데스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 여정은 외부보다 내면의 여행에 가깝다. 이 작은 책은 방황하는 이가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서, 과거와 화해하고 어정쩡한 봉합을 시도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기 자신과 고국, 그리고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해온 스웨덴 모두에서 발견되는 분열과 위선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신을 키워낸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기록에 가깝다. 칼리파티데스는 모국어로 글을 쓰면서, 고향 땅을 방문하면서, 발걸음과 시야를 옮겨보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새것을 얻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더욱 의미 있는 자의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그는 쓴다. “나는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칼리파티데스는 우리가 이주자의 여정을 재현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당장에 실현해본다면, 우리가 원하는 세계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 괴물’ 역자 신견식 번역으로 유려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해지는 노작가의 은퇴 번복 에세이
“첫마디를 내뱉자마자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에서 이상야릇한 단맛이 났다.”


고국 그리스를 바라보는 칼리파티데스의 감정은 두 가지를 오간다.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며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노스탤지어(향수)에 잠기거나. 『다시 쓸 수 있을까』 4부에서 그는 잠시 후자에 기운다. 그리하여 낭만적이고, 심지어 몽롱하게 변한다. 특히 아내와 함께 고향 마을을 방문하면서. 아테네 식장의 종업원은 이야기한다. “그리스도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있겠지만 여전히 달콤한 삶이 있는 곳이거든요.” 이 ‘달콤함’은 칼리파티데스의 나머지 여정에서 일종의 키워드가 된다. 그는 처음에는 이 개념을 거부한다.

“달콤한 삶이 그냥 생기겠어? 그러려면 뭐가 있어야지. 내가 바라는 것은 품위라고. 그게 없으면 꿀에서도 쓴맛이 난다니까.”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이따금 내가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럼 그들에게 어쩌라는 거야?” 아내가 쏘아붙였다. 나는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음식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162쪽)

하지만 달콤함은 계속 찾아온다. 고향 친구들과의 우정에 담긴 달콤함, 거리에서 한 남자가 건넨 무화과의 달콤함, 그를 환대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달콤함, 그를 맞는 공연의 달콤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50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어로 글을 쓰며 맛보는 달콤함. 그의 노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힘든 시절이었다. 첫마디를 내뱉자마자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내 입에서 이상야릇한 단맛이 났다.”
자칫 무게 있고 진지하게만 읽힐 수도 있는 책은 하지만 ‘언어 괴물’이라고 불리는 역자 신견식의 번역으로 달달하게, 또한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15개 언어를 구사하는 신견식 번역가는 스웨덴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 등을 대조해가며 번역했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한물갔다”처럼 생생한 입말을 활용한 번역 덕분에 그리스 출신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변화하는 감정과 문학적 깊이가 더 실감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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