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인생론』,『참회록 』
레프 톨스토이 저 | 육문사
○작가 소개
1828년 9월 9일,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란 그는 1847년, 카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대학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자퇴한다. 1851년에 캅카스군에 입대하고, 이듬해 첫 소설인 『유년시대(Detstvo)』(1852)를 발표한다. 군 복무 중에 『소년시대(Otrochestvo)』(1854)와 『세바스토폴 이야기(Sevastopoliskie Rasskazy)』(1855~1856)를 집필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1862년에는 궁정 의사의 딸 소피야와 결혼하고, 1869년에는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Voina i mir)』를 발표한다. 1877년에는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를 발표하고, 1899년에는 장편 소설 『부활(Voskresenie)』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신부(神父) 세르게이』(1898), 희곡 「산송장」(1900), 단편 「항아리 알료샤」(1905) 등의 문학 작품과 「종교와 도덕」(1894), 「셰익스피어론(論)」(1903), 「러시아 혁명의 의의」(1906) 등의 논문을 집필하고 발표한다. 그러다가 1910년 11월 20일, 여행 중에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한다.
○출판사 리뷰
모든 인간은 신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신은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타락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게 창조했다. 인간이 삶에서 갖는 사명이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인생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참된 신앙에서 온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더 큰 행복에 도달하려는 영혼의 순례이다. 인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행복에 있다. 인생이란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큰 행복으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론』에 대하여
『인생론』은 톨스토이가 58세 때인 1886년 가을부터 1887년 여름에 걸쳐 쓴 노작이다. 즉 『전쟁과 평화(1863~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3~1877)』를 쓰고 『부활(1899)』을 쓰기 전의 톨스토이의 ‘위기’라고 불리던 때에 쓴 작품이다.
그는 『참회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5년 전부터 나는 때때로 무언가 매우 기묘한 일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의혹과 생활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 같은 순간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순간이 갑자기 나를 덮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회의에 사로잡힌 채 갈팡질팡했다. 나는 곧 그곳에서 빠져나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지만 그 후 이러한 의혹은 더욱 빈번하게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항상 나의 내부에 남아 있었다. 생활의 정지는 항상 무엇을 위해? 그리고 그 다음에는?이라는 동일한 의문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한 의혹은 마치 먹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 가슴 속을 검게 물들였다.’(『참회록』 제3장)
‘나의 생활은 정지했다. 나는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자지만 그곳에는 참된 생활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를 충족시키는 합리적인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참회록』 제4장)
인생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회의는 곧 톨스토이즘 혹은 톨스토이 주의라고 불리는 확고한 신념으로 바뀌어 그 신념의 일단이 『인생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인생론』을 집필했던 1886년 8월 초순, 톨스토이는 어떤 가난한 과부를 위해 건초를 운반해 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마차에 다리를 다쳤는데 그 상처가 악화하여 의외로 심각해져 40도의 고열과 구토, 심한 고통을 일으켰다. 이 병은 어쩌면 톨스토이의 생명을 거의 앗아갈 정도로 몹시 위중했다. 그 무렵 어떤 출판사의 기자였던 안나 콘스탄티노프나 지테리프스(후에 그의 친구인 체르토코프의 부인이 됨)라는 여성이 이것을 알고 톨스토이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 왔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의 편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인생관, 생사관을 쓴 긴 편지였다.
톨스토이는 이에 회신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이 편지가 가필에 가필이 반복된 후 독립된 논문이 되어 불후의 명작인 『인생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저작은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명저로서 유명한 반면에 난해하기로도 이름난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인생이란 행복하게 되려는 욕구이며 그러한 노력 속에 인생의 의의가 있다.’고 전제해 놓고 동물적 개인의 행복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참된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참된 행복, 즉 참된 생명은 동물적 자아를 이성적 의식에 종속시키는 활동, 즉 사랑의 활동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참된 생명은 죽음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통은 인간을 참된 생활로 인도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이며 인간은 모두 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이 목적을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사랑에 의해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는 사랑은 이성의 활동이며 인간은 이 이성, 즉 신의 활동인 사랑에 의해 선한 목적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1888년 말 『인생론』이 발간되자 러시아 검열위원회는 ‘이 책은 신의 말이 없고 인간의 이성만을 강조하여 교회와 교의에 불신을 일으키므로 무조건 판매 금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종무원(宗務院 : 제정 러시아 정교회 최고 기관)은 『인생론』의 발행을 금지시키고 인쇄소에 있던 책 600부를 모두 몰수했다.
『참회록』이 발표된 것이 1882년이었고 『인생론』이 발표된 것이 1887년이었다. 톨스토이 자신은 『참회록』을 끝내면서 이것의 제2부를 쓸 예정임을 밝혔다. 그런데 그가 말한 제2부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인생론』인 것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의 성질상, 그리고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본서에서는 『인생론』을 앞에 실었고 『참회록』을 뒤로 하였다.
『참회록』에 대하여
『참회록』은 톨스토이가 51세 되던 해인 1879년부터 54세 되던 해인 1882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다른 모든 사상가, 철인들의 참회록, 고백록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이 『참회록』 속에는 1870년대 후반기, 즉 ‘톨스토이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오직 자살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그의 내적 고뇌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위기는 187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비로소 그를 덮친 것은 아니다. 의식적 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그의 생활은 넓은 의미에서 위기의 연속이었으며 1870년대 후반의 그것은 끊임없이 물결치는 그의 영혼의 가장 높은 파도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유년 시대부터 톨스토이에게는 그의 도덕적인 면의 최초의 특징이 나타났다. ‘이상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다종다양했으며 항상 변했다. 그의 이상들은 한결같이 ‘전체냐 아니면 무(無)냐’를 추구하는 그의 열정적인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형 세르게이가 그의 이상이 되었던 일도 있으며, 또 맏형 니콜라이가 그의 이상이 되었던 일도 있었다. 또한 그는 막연하게 ‘만인의 행복’을 동경한 일도 있었으며 그의 사상이 서서히 회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을 때에는 외적 세계의 실재를 의심하고 세계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추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유년 시대가 끝날 무렵 이 이상들은 더욱 분명해졌으며 ‘선으로의 진로 탐색’과 ‘만인의 행복으로의 진로 탐색’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수많은 모순에 부딪쳤으며 때로는 심각한 의혹의 심연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현실 세계는 그의 마음을 자극하여 인생의 모순의 해결을 향해 매진하도록 그를 채찍질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자기의 이상과 현실 세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는 현실 세계에 대한 그의 욕망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방종과 혼란의 몇 년을 보낸 것도 그의 이상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의 악전고투의 감정을 봉쇄해 버리기 위해서였으며 코카서스의 은둔 생활로 들어간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톨스토이가 코카서스의 원시적인 대자연의 품에 안기자 그의 영혼은 무한한 힘의 근원인 대자연의 품속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의 내적 욕망, 즉 진리에 대한 욕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갈망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후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을 향해 돌진했다. 톨스토이 자신도 ‘나는 항상 인생의 의의를 탐구하기 위해 돌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일기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외적 조건의 소산이어서는 안 되며 영혼의 소산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로 『참회록』은 그의 삶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그의 생의 전반부의 작품들은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참회록』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참회록』은 태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다.’라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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