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탄식》
-마종기/ 문학과 지성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시인 마종기,
아주 멀리서, 실은 당신 곁에서 건네는 그의 맑은 위로
올해 시력 60년을 맞이한 마종기 시인이 신작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0)을 펴냈다. 제2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마흔두 개의 초록』(2015) 이후 5년 만의 시집으로, 타국에서 한 편씩 써온 시 54편이 3부로 나뉘어 묶였다. 시인은 60년간 타국의 일상 속 성찰이 담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시어로 씌어진 1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 산문집을 꾸준히 선보이며 시인 자신과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왔다.
젊은 시절 이 땅을 떠나야만 했던 시인 마종기는 시 쓰기로 고국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왔다. 이번 시집에는 퇴직 전 반세기 동안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살아가며 겪었던 외로움이나 고국의 작은 골목을 그리워하는 일에서부터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깊은 회한, 삶에서 마주한 소박한 존재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까지, 마종기 시 특유의 쓸쓸하고 따스한 아름다움이 더욱 짙푸르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평생 시인, 의사,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그가 자신의 시적 기원을 밝은 눈으로 돌아보면서 언젠가 다가올 세상과의 이별, 그 다음의 만남을 준비하는 겸허한 시들로 가득하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시인에게 이별이란 슬프지만 따뜻하다. 그렇게 어떤 슬픔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이 시집에서 빼어난 서정적 지성이 가꾼, 연민과 응시와 회억의 큰 숲을 본다. 일찍이 규모와 세련을 이룬 마종기 시인의 언어적 도구는 세월이 흐르면서 근간의 안정과 성숙을 성취했고 그 도구를 다루는 몸과 마음은 뚜렷한 연륜을 더하여, 그의 시 시계는 광활하고 울창해졌다. 이제 눈앞에 펼쳐진 풍요로운 숲을 걸으며, 지속과 변화의 미세한 결을 찾아 읽는 일은 앞으로 오래 독자들의 행복이 될 것이다.
― 이희중(시인, 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갔다.
저희들끼리 자라고 저희들끼리
날아다니다가 짝을 찾아
여러 모양의 열매를 맺었다.
그 후에는 방문 두드리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들리다 말다 한 소리는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들이었다.
모두가 필요 없다며 버린 인연들.
어느 날 저녁부터는 주위가 작아지고
흥얼거리는 박자인지, 누가 오는 건지
밤새도록 속삭이는 음성이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밤과 눈을 부지런히 섞고 있었다.
보이는 게 다 흐렸지만 고백하자면
그것이 바로 내 질긴 평생이었다.
그래도 끝이 흰색이라는 게 좋았다.
체세포에 묻은 인내는 무게만 있는 건지
한 발 두 발 걷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참는 법을 몰라 헤매던 날들은 떠났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차가운 후회들이 모여 눈이 되었겠지,
맨몸을 감는 겨울밤이 오히려 정답다.
겨울의 끝은 저만치에 오고 있지만
그 뒤에 오는 날들은 누구의 진정인가,
숨이 끝나도 한동안 귀는 열려 있다지.
나이 든 후부터 자라난 힘든 물음들이
다 되살아나 내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안에 나를 부르는 정든 목소리 하나.
--- 「겨울의 끝날」중에서
잘 익은 산소여, 그래도 살아 있다고
너를 마신다. 주름살 깊은 맥박이 뛴다.
살아 있는 체온을 나누어 가지는 이 아침,
체온이 없는 시는 죽은 시라고 말해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상처의 저 나무.
움직이고 숨 쉬는 것만이 사는 게 아니다.
나이 들수록 놀랍게 너그러운 날들 많아지고
쉬어갈 나무 그늘이 한 아름씩 늘어난다.
나무의 손가락이 심장의 중심을 위로해준다.
--- 「아침 산책」중에서
그럼 잘 가요.
가다가 길 잃지 말고
여린 영혼은 조심히 안고
가야 할 곳 잊지 말고
조심해 가요.
길을 잃고 회오리 속을 헤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당황하다가
나는 눈물까지 흘린 적이 있었다.
먼지만 차 있던 도심의 하늘에서는
눈을 떠도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누르던 창백한 날갯짓도
아무도 비상의 낭만이라 부르지 않았다.
통증을 참던 사이에 길들은 떠나고
가고 싶은 마을은 이미 문을 닫았다.
죽었다 살았다 하는 미망 때문인지
변화무쌍한 한밤의 별에 취해서인지
앞뒤로 찾으며 날아다닌 방탕한 날들이
바로 살아 있는 생의 흔적이란 것을
나는 오래 모르고 비웃기만 했었다.
어느 인연 아래서건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우선 영혼끼리 인사를 나누고
내 숨소리가 편하게 당신께 가는지,
당신의 체온이 긴 다리를 건너
내게 쉽게 오는지도 지켜보아야겠지.
그럼 잘 가요.
가는 여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디 아무 상처받지 않기를,
모쪼록 돌아가는 당신의 길이
늘 빛나고 정갈하기를……
--- 「이별하는 새」중에서
○출판사 리뷰
길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피워낸 깊고 투명한 희망
그게 정말 길이었을까,
가쁜 숨 쉬고 땀 흘리느라
고개 숙이고 주위를 살피느라
정작 지나온 긴 나날은
보지도 못했네. 길이었을까.
헤치고 밝히며 온 발걸음은
춥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더워서 지치기도 했었지만
스쳐온 밤낮에 흩어져 있던
꽃냄새, 빗소리, 강물 빛까지
그게 온통 한 생의 속살이었네.
―「친구를 위한 둔주곡」 에서
시인은 매해 두세 달씩 고국에 머물곤 했지만 올해는 팬데믹 탓에 올 수 없었다. 여느 해 같았다면 고국에서 보냈을 시간 동안, 마종기는 차분하게 자신의 삶과 시력 60년을 반추하며 시적 기원을 찾아간다. 그는 이십대에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당했고 추방당하다시피 미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은 시인에게 긍지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사람의 신음 사이로 열심히 배어드는 일,/그 어두움 안으로 스며”(「신설동 밤길」)들어갈 때마다 마종기를 붙들어주는 것은 마음속 고향 서울의 노을을 닮은 “따뜻하고 편한”(「노을의 주소」) 모국어와 시였을 것이다. 시와 함께 그의 삶을 지탱해온 다른 한 축은 신앙이었다. 천주교 신앙은 낯선 세상에 던져진 채로 늘 “삶과 죽음”을 응시할 수밖에 없던 의사 마종기에게 시인으로서의 “고통과 희생과 보살핌”(「시인의 글」)을 기쁘게 자처하고 매 순간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로써 “내 안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울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마종기 깊이 읽기』)라는 의연한 다짐이 가능했으며, “꺾이지 않았던 날들”을 모아 “꽃이나 열매로 이름을 새”기는 ‘후회 없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신설동 밤길」).
지금 같은 환란의 시기는 오히려 “무섭고 겁이 나도 돌아설 수가 없”는 때다(「파타고니아식 변명」). 길을 잃고 모든 것이 흔들리는 이때, 마종기는 초월적이며 거대한 존재인 대자연과 ‘신’에 한발 더 다가선다. 표제시이자 최근작인 「천사의 탄식」 초반부에서 그는 “창궐하는 역병”을 마주하고 무력함을 느낀 채 “60년 전 시인이 되겠다고 한 건방진 약속”을 취소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문하고, 자신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거칠었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시의 말미에 이르러 오늘 들려오는 “탄식”은 호통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자주 들었던” “다시 시작하라는” “다정한” 위로임을 비로소 자각한다. 그렇게 시인이자 의사이자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은 초월자 앞에 선 ‘인간’ 마종기 안에서 하나가 된다. 시집 『천사의 탄식』에 수록된 여러 시에는 이렇듯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야 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과정이 담겨 있다.
재회를 기다리는 청명한 이별
세상에는 도대체 몇 개의 마지막이 있을까.
―「마지막/시차 적응」에서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는 나이”(「갈리폴리 2」)에 이른 시인은 그리운 것이 많다. “어릴 때 살던 헌 집” 마당에서 챙겨 온 흙을 종종 들여다보며 소중히 간직한다. “혹시라도 내가 이국땅에서 갑자기 가면/이 한 줌 흙을 꼭 내 손에 쥐여달라”(「서울의 흙」)는 서러운 마음. “모든 사람이 태어난 나라에서 죽지는 못한다”(「갈리폴리 2」)고 하더라도 “이승을 하직한 후에는 안동에 와 살고 싶다”(「안동행 일지」)며 겨우 그 마음을 달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은 이별이겠지만/내 흙을 보고 있으면 이별도 부드럽다”(「서울의 흙」).
이처럼 ‘부드러운 이별’은 이번 시집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 친구들…… 그리운 이름들을 가만히 하나씩 불러보고, 추억을 되새기며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렇지만 “지상의 날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자화상 2」) 쓰면서도 그 ‘떠남’이 절절히 슬프기보다 “청명하고 명랑한” 것은(「즐거운 송가」), 먼저 떠난 오랜 친구의 약속, “내 옆에 남겠다는 그 약속”(「는개의 시간」)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이치이든 삶에 대한 비유이든 “질긴 평생”을 마무리하는 “겨울의 끝날”은 “그 뒤에 오는” 봄이 있어 “오히려 정답다”(「겨울의 끝날」). 지극한 그리움 끝에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가워 웃을지 오래 참아 우는 얼굴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딘가 함께 모여 사는 곳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므로(「다시 만나야 하니까」). “나이 들어가는” 길 위에서 “다행이다”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오래 바라본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은 그렇게 시인의 시선을 거쳐 쓸쓸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어둠 속에서 혼자일 때, 세상을 헤맬 때” “기댈 곳이 늘 있으니 다행이다”(「다행이다」).
[시인의 글]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존재다. 왜냐면 세상은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아마도 내 직업이 의사였던 때문일까. 내 관심사는 언제나 삶과 죽음, 고통과 희생과 보살핌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내게는 제스처이고 껍데기고 믿을 것이 못 되는 것들이었다.
의사였을 때는 보이는 것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고 들리는 소리를 확실하고 분별 있게 듣는 것이 필수였다. 그런데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싶어서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고 싶어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시인이라면 시인의 감수성이나 상상력이란 것이 어디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난 시집 이후에 발표한 시들,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
5년 동안 모은 시들이지만 그게 내 평균 속도였으니
큰 게으름은 없었다고 믿고 싶다.
시를 읽어줄 당신께 감사한다.
2020년 9월
마종기
○작가 소개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매년 봄과 가을 고국을 방문해 연세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머지않아 ‘고국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천사의 탄식』 출간 기념 마종기-이병률 서면 인터뷰
이병률: 새 시집 『천사의 탄식』 내신 것 축하합니다. 그리고 시집 내주셔서 (뜨겁게)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먼 곳에서 어쩌면 이렇게 나란히 관통하고 있지만 어느덧 여기는 가을바람이 선뜻선뜻 우리를 맞아줍니다. 그곳, 새로 옮긴 마을은 아직 더운 기운이 많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그곳 아침의 풍경은 어떤지요. 또 가을에 방문하실 계획이 미뤄졌는데 오셔서 하고 싶은 계획들은 뭐였을지요?
마종기: 나란히 관통하고 있다는 말이 고맙고 정이 갑니다. 한데 지난 몇 해 나는 그런 느낌이 많이 줄어버렸어요.
아무래도 나는 나 혼자인 것 같다는 느낌. 아마도 코로나 그리고 나이 때문인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고국과 고국의 친구와 함께인 듯 살아온 그 믿음이 자꾸 죽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몇 해 전에 발표한 시 「마지막/시차 적응」에서처럼 요즈음은 그 시차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인사를 받았는데 그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거든요. 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 정말 내가 너무 오래, 아주 멀리에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에 힘들 때가 갑작스레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기는 아직 많이 덥고요, 꽃이 많고 새도 많은데 사람은 적어요. 아내를 빼고 하루에 두 사람을 보면 평균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람이나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분도 못 보고 지나가지요.
귀국해서의 계획이 무엇이었냐고요? 병률 시인도 잘 알다시피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귀국하지 않아요. 시집을 출간하고 귀국할 때라면 관련된 할 일이 있기도 하지만 내 귀국은 거의 언제나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억지로 생각을 해본다면 아마도 병률 시인을 만나 소주 한 병에 감자탕을 같이 먹는 것, 칼국수를 같이 먹는 것 정도지요. 언젠가 심심해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십대 후반에 고국을 떠난 후 태평양을 건넌 적이 백 번이 훨씬 넘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에 나오고 5년만이었던 그 첫번째 귀국,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겠다고 나선 그 한 번의 계획된 귀국 말고는 귀국에 계획이 붙은 적은 없었지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병률 시인같이 여행가도 아니고 무슨 사업을 크게 해서 사업차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항공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고국과 고국의 친구가 그리워서 태평양을 오락가락했으니…… 병률 시인은 나를 바보로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병률: 이제 저는 선생님 하시는 말씀 가운데 어떤 일화나 쓰신 시들 중에 제가 선생님 옆에 있었구나 싶어서 참 좋습니다. 몇 해 전 서울의 신설동 밤길(「신설동 밤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그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아끼셨던 것 같습니다. 어둠을 좋아하시기보다는 그 오래전 서울의 조도가 생각나서였을 텐데요. 세상을 살면서 밝은 것만 좇으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마음은 어떠세요?
마종기: 정말 그렇네요. 「신설동 밤길」도 그렇고 「안동행 일지」도 그렇고요. 그 신설동 밤길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길은 넓은 편이었는데 왜 그렇게 어두웠던지요. 우리는 전철에서 내려서 한 15분 정도 걸어서 그 술집을 찾았지요? 어둡구나, 생각하면서 안온한 기분도 들어 기분이 공연히 좋았는데 동행 중 한 분이(정끝별 시인인가 나희덕 시인이었죠?) 어두워서 겁이 난다고 했어요. 물론 나는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답을 하고 있었지요. 아니 이 따듯한 기분은 어쩌라고, 하면서 내가 중얼거린 그 답이 바로 시가 되었네요. 누가 나보고 어두움에 더 익숙한 것 같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런 어두움에서 내 몸의 짐을 내려놓는 듯한 가벼움과 그래서 기대고 싶은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병률: 『천사의 탄식』에 수록된 시에서 어머니 이야기(무용가의 초상)가 나옵니다. 무용가로 활동하셨던 어머니 고 박외선 여사께서 ‘새로운 첫번째만이 예술’의 자격이 된다고 엄격하게 말씀하셨는데 동시에 자신을 길어 올리는 일을 하는 행위가 예술일 것입니다.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견인하려면 새로움을 배양해야 하는 몫이 남아 있는데요. 선생님은 그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의식하시는지요.
마종기: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자신의 실체를 찾아보는 일은 나같이 주위에 아무도 없이 늘 혼자 시 쓰기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쉬운 과제여야겠지요. 무엇보다 다른 선택의 조건이 없으니까요. 새로움이라는 명제도 같은 선상에서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어느 시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단지 혼자서 오래 살아온 내 시여서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가끔 방향이 선명치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주위의 시 쓰는 친구와 시에 대한 대화를 나누거나 조언이나 충고를 들을 조건도 되지 못하고 문학에 대한 강연이나 토론을 듣거나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남들이 보면 내 시가 아마도 야생의 막 자란 시, 좋은 비료나 도움의 손맛을 보지 못한 거칠고 못난 시로 보이게 되는 적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남들을 따라 모두 산문시를 쓴다든가 여기저기에서 외국어 단어의 시 제목이 남발하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나 여러 글씨체를 써서 의미가 다양하다고 하니 그걸 또 따르는, 그런 겉핥기식 새로움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기도 하지요.
이병률: 마침내 우리는 기도가 필요한 시대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기도의 방식 중에 기도를 하면서 살지 못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다면요.
마종기: 내가 존경하는 어느 수도자의 말에 의하면 기도의 절정은 절대자와의 대화라고 하더군요. 나의 절대자가 되려면 나보다 나은 자가 되어야겠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상대를 나보다 나은 자로 인정하려면 내가 우선 겸손해져야겠지요. 진정한 기도의 절대 조건은 그래서 겸손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내가 정말 완전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어지간한 새보다 훨씬 못한 시력, 개보다도 못한 취각, 야수들보다 못한 힘, 뭇 짐승들보다 지능만 조금 앞선 우리의 불완전한 몸이 부끄러울 정도지요. 그런 상태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나보다 나은 그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기도라고 한답니다. 나는 그 수도자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차 있던 것을 털어놓듯이 그분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위가 다 편안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병률: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하니까 기다려주어요”(「다시 만나야 하니까」)라는 시 한 줄이 시집을 덮고도 내내 마음을 적십니다. 그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어느 때, 어느 장소였으면 좋으시겠어요?
마종기: 「다시 만나야 하니까」에서는 시에서 드러나듯 세상을 떠난 가족을 우선 지목하고 있습니다. 시기는 특별할 것이 없겠지만 장소는 우리가 같이 살던 집이겠지요. 그리고 또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당연히 나와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겠고 여기서부터는 내가 죽고 살고와는 관계가 없겠지요. 내가 간절히 만나고 싶은 몇 분들이 다 해당이 되니까요. 특별한 장소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요.
이병률: 이번 시집에도 선생님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뭘 해야 할지, 뭘 붙들어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한 청춘들은 어떡해야 좋을까요?
마종기: 어쩌다 이 나이에 까지 나는 별것 아닌 내 시를 붙잡고, 아니 내 몸에 칭칭 감고 살아왔지요. 내가 만약에 문학을 붙잡고 살지 않았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볼품없는 삶을 살다가 벌써 끝을 냈을 것입니다.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이고 신경질적이고 몸도 건강체가 아니고 무엇보다 어처구니없이 길어진 외국생활에서 오는 불만과 외로움, 사고와 행동의 제약은 정말 힘든 것이지요. 단지 이런 환경에서도 다행스럽게 내가 악착같이 문학을 붙잡고 살아온 덕택에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그 생사여부를 떠나 부단히 변합니다. 그러니 그런 것에 나를 맡기거나 나를 의탁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온전히 맡기려면 적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우선 찾아야겠지요. 그중의 드문 하나가 예술이 가지고 있는 지고한 정신과 힘, 그리고 내가 유추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신앙이 주는 구원의 약속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알기로 변하지 않는, 그래서 가장 확실한 우리들 삶의 기둥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것들을 떠나 나와 완전히 일체가 되어주는 그런 기둥을 하나 단단히 감아쥐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면으로 온몸을 던져 상대하는 모든 예술이 그 기둥이 되어줄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빛이 나를 강하게 잡아주고 지켜주는 이상한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카테고리: 기사및 리뷰| 작성일: 2020.09.25
출처: 문학과 지성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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