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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문학상,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수상

금동원(琴東媛) 2020. 10. 10. 20:35

■2020 노벨문학상,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수상

“인류 위로한 시세계, 노벨상 수상 배경”

 

(9일 루이즈 글릭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보도하고 있는 jtbc 뉴스룸. 화면=유튜브 캡처)

 

내 마음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위험한 이유다.

자아가 없어 보이는 나와 같은 사람들,

우리는 불구자고 거짓말쟁이다.

진리를 위해

우리는 인수분해 되어야 할 것들이다.

 

내가 조용할 때 그때 바로 진리가 출현한다.

청명한 하늘, 흰 섬유 같은 구름

그 아래 작은 회색 집,

불그스름하게 선명한 연분홍색 진달래.

 

– 루이즈 글릭 ‘아라라트 34’ 중에서

 

[문학뉴스=강현 기자]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원로 시인 루이즈 글릭. 그는 1968년 ‘맏이(Firstborn)’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글릭은 이후 2009년 <마을 생활(A Village Life)>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의 시집을 꾸준하게 발간했다.

1993년엔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글릭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초원'(1996년)에서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목소리를 통해 사랑과 결혼의 문제 등을 재해석하며 시의 영역을 내면적 세계에서 보편적 세계로 확장시켰다.

이후 발표한 시들 역시 페넬로페의 신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사랑의 소멸, 기억의 실패, 육체의 와해, 영혼의 파괴 등을 다뤘다.

2004년에 출간한 <10월(October)>은 9·11 테러를 정면으로 비판한 시집으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대고 은유하면서 격조 높게 다루고 있다.

 

 

(루이즈 글릭의 퓰리처상 수상작 <야생 붓꽃>, 9·11 테러를 다룬 <10월>, <마을 생활>(왼쪽부터). 10여 권에 이르는 글릭의 시집 가운데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은 아직 없다.)

국내 시 비평가들은 “글릭의 시는 통상적 의미에서 ‘고백적’이지도 않고 ‘지적’이지도 않은 비범한 탁월성을 성취한다”고 말한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그녀의 시는 미국 시의 한 흐름을 이뤄온 ‘고백파’의 경향, 그리고 1970~80년대 시 운동의 한 동력을 제공한 ‘언어시’의 지적 경향, 그 모두에서 벗어나 있다”고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그녀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존의 관념이 제거된 공백 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양 교수는 분석했다.

글릭은 첫 시집이 나왔을 때 미국의 고백파 시인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시집들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새롭게 추구하며 당대 순수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양균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글릭은 시인의 주된 역할은 이미 알려진 것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에게 세상을 성실하게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글릭의 창작 이론에 대한 요약이다. 글릭은 자신의 시가 과거로부터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서 말하기를 원하고 기존의 권위나 가치에 순응하기보다 구체적이고 확인 가능한 목소리로 순간에서 발생하는 지각을 구현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시집 ‘야생붓꽃’이 뒤섞인 일련의 극적 독백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용하세요, 연인이여. 얼마나 숱한 여름을 내가

살아서 되돌아왔는지, 그게 내겐 중요하지 않아요

올해 한 차례 여름으로 우리는 영원에 들어섰어요.

당신의 두 손이 느껴져요,

그 광휘를 풀어놓으려고

나를 묻는 손길이.

 

– 루이즈 글릭 ‘야생 붓꽃’ 중에서

꽃의 구근을 매년 여름 땅에 묻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예고하는 기다림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 구근에서 매년 피어나는 꽃은 나를 묻는 그대의 손길이 영원한 사랑의 광휘를 담보하는 손길이라고 글릭은 노래한다.

영문학자 김구슬 시인은 “루이즈 글릭은 고독, 이혼, 죽음, 가족관계 등 자전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시적 기술, 감수성과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김 시인은 “글릭을 소외, 절망, 상실 등을 효과적으로 다루어 타락한 세계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실비아 플라스를 제외하고 그녀보다 더 소외와 고독을 미적으로 흥미있게 다루는 시인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글릭의 시가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인류를 위로한다는 시각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diak@munhaknews.com

 

 

■노벨문학상 깜짝 수상한 글릭... “커피 마셔야 하니 인터뷰는 2분만”

한림원,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인터뷰 공개

벡수진 기자/ 조선일보

 

 

■2020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연합뉴스

“이거 녹음되는 건가요? 지금 커피든 뭐든 좀 마셔야겠으니 2분 안에...(끝내달라).”

 

노벨위원회는 8일(현지 시각) 공식 트위터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77)의 수상 발표 직후 반응을 깜짝 공개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미국 시인인 글릭을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하며 “꾸밈없이 아름다운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화해왔다”고 이유를 밝혔다. 공개된 통화 녹음 파일에서 노벨위원회 관계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글릭은 커피가 필요하니 짧게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당신에게 노벨상은 어떤 의미냐’라는 질문에 글릭은 “모르겠다. 너무 갑작스럽다”며 망설이더니 “대단한 영광이며 제가 존경할 수 없던 수상자 몇몇과 진심으로 존경했던 수상자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사고 싶던 집을 새로 살 수 있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전화가 계속 울리고 있어요."

 

8일(현지 시각)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집 앞에서 기자들을 만난 루이즈 글릭. /연합뉴스

글릭의 수상은 해외 언론이나 베팅 사이트에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의외의 선택이었다. 국내에도 아직 번역돼 출간된 시집이 없다. 노벨상 관계자는 “당신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처음 읽을 만한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글릭은 “불쾌해지고 싶지 않다면 제 첫 시집('Firstborn·맏이)은 피해달라”면서 “최근에 쓴 ‘아베르노’나 ‘충실하고 고결한 밤’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한림원은 글릭의 시집 ‘아베르노’를 거론하며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옥으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환상적으로 해석한 걸작”이라고 호평했다.

 

글릭의 시는 고통과 트라우마 같은 삶의 문제를 자연에 빗대 자연이 주는 치유력과 삶의 복원을 노래했다. 노벨상 관계자는 “당신의 시들은 ‘살아있다는 경험’에 집중한다”면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하지만 글릭은 “그건 지나치게 거대한 문제고 여기는 아침 7시밖에 안 됐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에 대해선 생각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죠. 그렇지만 2분이 지나지 않았나요?”

 

22

 

《마음챙김의 시 》

류시화 편  | 수오서재 |

 

○책 소개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묻는다. ‘마음챙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삶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손 대신 시를 건네는 것은 어떤가. 멕시코의 복화술사, 영국 선원의 선원장, 기원전 1세기의 랍비와 수피의 시인뿐 아니라 파블로 네루다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신세대 시인들, 그리고 라다크 사원 벽에 시를 적은 무명씨.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시인들이 나와 타인에 대한 운율 깃든 성찰로 독자를 초대한다.

아름다운 시들을 모았다고 해서 좋은 시집이 되지는 않는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 백만 독자의 찬사와 인기를 얻은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이어 15년 만에 류시화 시인이 소개하는 마음챙김의 시들. 삶의 무늬를 담은 한 편 한 편의 시가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출판사 리뷰

 

시가 말을 걸어올 때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p.5

‘머리가 뜨거워지면 시가 찾아온 것임을 나는 안다.’고 에밀리 디킨슨은 썼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시가 있고 문학적 실험을 추구하는 시가 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시도 있지만, 심장을 건드리는 시는 확실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이다. 삶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읽는 시가 그런 시들이다.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 라이너 쿤체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p.11

‘눈 속 장미’라고 불리는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는 알프스산 수목한계선 부근에서 자라는 철쭉의 일종이다. 자기 자신은 모를 수도 있다. 불확실해 보일 수도, 어둠에 파묻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파종의 시기가 지나 때가 되면 누구의 개입 없이도 꽃이 핀다. 단지 겨울이 며칠 더 길 뿐이다. 언젠가는 꽃피어나리라는 걸 안다면 그 시기는 견뎌야 할 시기가 아니라 사랑할 시기이다. 꽃이 피면 맨 먼저 누가 그 꽃을 보는가? 바로 꽃나무 자신이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루이스 글릭 「눈풀꽃」 p.14

눈풀꽃은 가장 이른 봄 땅속 구근에서 피어 올라오는 작고 흰 꽃이다. 설강화(雪降花) 혹은 영어로는 같은 의미의 스노우드롭(Snowdrop)이라 불린다. 눈 내린 땅에서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눈풀꽃과 같이 온전히 ‘나’로 살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 인간의 여행을 하는 동안 진실한 감정에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 비록 상실, 상처, 패배가 그 여행의 본질적이 부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어리든 그렇지 않든 재 속의 불처럼 그 의지를 꺼뜨리지만 않는다면 아직 내면의 시를 잃지 않은 것이다. 크고 작은 시련이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무너뜨릴 때, 한 편의 좋은 시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을 준다. 

미국 오리건주 계관시인을 역임한 에드윈 마크햄은 말한다.
“시는 빵처럼 현실적이며 동시에 인간의 삶에 똑같이 필수적이다. 시는 영혼을 위한 빵이다. 대지의 밀로 만든 빵이면서 천상의 요소가 섞여 있다. 시는 인간의 고귀한 희망과 열망에 자양분을 준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 하룬 야히아 「새와 나」 p.53

우리의 심장은 우리와 똑같은 날 태어나서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과 아픔, 경이와 고독을 똑같이 공유한다. 그 심장의 언어가 시이다.

『누가 시를 읽는가』에서 아이 웨이웨이가 말한다.
“시를 읽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눈앞의 세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것이며, 다른 삶과 다른 차원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젊고 늙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시는 삶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시는 우리 안의 불을 일깨운다. 자신이 마른 지푸라기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럴수록 불이 더 잘 붙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시는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든 세상에 대해서든 처음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든 세상이든 본질적으로 불완전할지라도.

마음챙김이 필요한 당신에게 건네는 시

“이 시집에 실을 시를 고르고, 행을 다듬고,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시가 내 숨이 될 때까지. 이 시를 읽는 당신의 숨결 또한 시가 되기를 바라며. 그 자체로 내게는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는 마음챙김의 순간들이었다.” - 엮은이의 말에서

우리가 숨을 고르고 미지의 책을 읽는 이유는 삶과 세상을 보는 저자의 시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시각은 다름 아니라 ‘충분히 존재하기’, 그리고 ‘우리는 조금 돌기는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시와 산문을 쓰고, 명상서적을 번역하고,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류시화는 다음 작품을 믿고 기다리게 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마음챙김의 시』는 그 기대에 대한 성실한 응답이다. 우연히 날아온 어떤 시는 감각만으로도 놀라우며, 어떤 시는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되고, 어떤 시는 뜻밖의 위안을 주면서 감동의 두께는 책의 두께와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눈으로만 읽어도 좋고, 소리 내어 읽어도 좋고, 누군가에게 읽어 줘도 좋다. 좋은 시집은 다른 차원의 의미와 생의 감각을 선물하며, 마지막 시를 덮은 후에도 오랜 여운이 남는다.

나는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러한
삶일지라도.
― 마르그리트 뒤라스 「나는 삶을 사랑해」 p.163



엮은이의 말(저자의 말)

내가 태어날 때 탄생을 주관하는 천사가 상자 하나를 주며 내 귀에 속삭였다. 세상에 내려가 마음이 힘들 때면 이 상자를 열어 보라고. 그 투명한 상자에는 시가 들어 있어서, 삶에 불안을 느껴 상자를 열 때마다 인간 영혼의 원천에서 흘러나온 시들이 내 앞에 한 편씩 펼쳐졌다.
어떤 시는 비바람을 이겨 낸 꽃이고, 어떤 시는 히말라야 산길에서 언 발을 녹여 준 털실 양말이었으며, 어떤 시는 절망의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를 받쳐 준 손이었고, 또 어떤 시는 번갯불의 섬광을 닮은 새였다.

‘여기, 내 인생의 방에서는 물건들이 계속 바뀐다.’라고 미국 시인 앤 섹스턴은 썼지만, 내 인생의 방에서는 운율, 단어, 길이가 다른 시들이 계속 이어졌다. 지혜와 통찰력에서 나온 그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의 각도를 돌려 나 자신을 보고, 삶의 진실과 마주하고, 의문의 답을 찾는 문을 열었으며, 온전한 삶을 방해하는 ‘진짜 얼굴이 될 뻔한’ 가면들을 벗을 수 있었다.

당신의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당신에게 준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든, 그 천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눈썹과 이마의 넓이, 턱의 생김새에 어떤 차이가 있든,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의 운명이 있다. 바로 삶의 모든 순간들을 경험하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영혼을 소유한 채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여러 번의 이사, 무서운 병 진단, 실직 등을 헤쳐 나가는 여행자(traveling soul)가 아닌가. 별에서 별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그렇다면 영혼 안에 무엇을 지니고 여행하는가? 사랑인가, 그리움인가, 아니면 순간들의 깨달음인가?

마음챙김 명상의 선구자인 존 카밧 진은 말한다.
“바로 오늘의 당신의 삶을 여행으로, 모험으로 보라.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여행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만일 당신의 삶이 책이라면 현재 머물고 있는 장의 제목을 무엇이라 붙일 것인가? 이 여행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만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따라서 길도 당신 자신의 길이어야 한다. 당신은 다른 누군가의 여행을 흉내 내면서 당신 자신에게 진실할 수는 없다.”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챙김의 소중한 도구이다. 카밧 진이 설명하듯이 ‘마음챙김’은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미약한 숨소리일 뿐인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 주위에 있는 것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두려움, 고통, 질병, 죽음, 전쟁, 자연재해 등이 우리의 삶을 흔들 때 마음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이 영성이다.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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