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없는 삶』
-페터 한트케 /조원규 옮김/ 읻다
“독창적인 언어로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그 특수성을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 스웨덴 한림원
전위적인 극과 자전적인 소설로 문학 실험을 이어간 페터 한트케의 시집 『시 없는 삶』이 읻다 시인선 다섯 번째 책으로 출간된다. 4부로 이루어진 『시 없는 삶』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페터 한트케의 작품 여정을 좇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관객모독』과 『카스파』를 통해 언어극이라는 파격을 선보였고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을 그리며 자신만의 서사를 갖춰 나간 한트케는『소망 없는 불행』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통해 자전적 형식의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키워 나갔다. 또한 빔 벤더스와 함께〈베를린 천사의 시〉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다양한 장르의 문학 실험을 전개한 한트케는 시작(詩作) 또한 이어가고 있었다. 『시 없는 삶』에 포함된 시가 쓰인 시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6년까지이다.
○작가 소개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문화적으로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1966년에 등단했다. 그해 미국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한 한트케는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실험적인 희곡 「관객 모독」도 같은 해에 출간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내용보다 서술을 우선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다수의 혹평과 소수의 호평을 받다가 1970년대 들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다. 독일어로 쓰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1972년에 거장 빔 벤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67년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1972년 페터 로제거 문학상, 1973년 실러 상 및 뷔히너 상, 1978년 조르주 사둘 상, 1979년 카프카 상, 1985년 잘츠부르크 문학상 및 프란츠 나블 상, 1987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및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실러 기념상, 2001년 블라우어 살롱 상, 2004년 시그리드 운세트 상,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 상 등 많은 상을 석권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마침내 2019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자
조원규는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독문학자이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을 냈으며, 번역서로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 『달빛을 쫓는 사람』, 『소박한 삶』, 『노박씨 이야기』, 『성경 이야기』, 『유럽의 신비주의』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자신의 내면은 다소나마 외부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이 책의 1부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는 『관객모독』(1966)과 『카스파』(1967)라는 ‘언어극’ 형태의 전위적 실험을 시詩에서 이어간다. 한트케의 초기 작품들은 ‘언어를 통해 구성된 인간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 곧 현실’이라는 관점 아래, ‘47 그룹’에게 문제 제기했던 참여문학과 신사실주의에 반대하고 ‘나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은 그때마다 딱 한번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의 모방은 이미 불가능하다. 하나의 서술모형을 두 번째로 사용하게 되면 더 이상 새로움은 존재하지 않고 기껏해야 변형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역자의 설명과 같이 “언어를 분해하고 관찰하며 실험하는 동안 현실세계 전체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전위시의 면모”가 드러나는 1부에서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접할 수 있다. 1969년 출간 당시, 신문을 콜라주하거나 글자의 변형, 다양한 서체를 통한 강조, 구두점 활용과 행의 독특한 배치 등을 통해 시의 형태적 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시간과 경험(체험), 죽음, 역할극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며 ‘외부세계에 대한 기술記述는 곧 내부세계에 대한 기술이자 저자의 의식에 대한 기술이 되며, 그 역 또한 그러하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라는 한트케의 설명과 같이 언어의 형식을 바탕으로 자아와 타자,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형식으로 기술하고자 시도한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는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은 형식의 습득물(objet trouve)을 활용한 시로 다음과 같다.
1968년 1월 27일
FC 뉘른베르크 포메이션
바브라
로이폴트 포프
루트비히 뮐러 베나우어 블 랑켄부르크
슈타레크 슈트렐 브룽스 하인츠 뮐러 폴케르트
경기시작:
15시
_ 〈1968년 1월 27일 FC 뉘른베르크 포메이션〉
또한 한트케는 ‘일상적인 무언가를 문득 다른 눈으로 보고, 이를 통해 그 대상을 정말 처음 보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거꾸로 관찰하는 방식도 제안한다.
잠들 때 내가 깨어난다: / 내가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대상이 나를 본다; /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발밑의 바닥이 나를 움직인다; / 내가 거울을 보는 게 아니라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본다; / 내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이 나를 발음한다; / 창문으로 가면 내가 열린다.
_ 〈전도된 세계〉 중에서
언어에 대한 실험에서 자신에 대한 서사로
『시 없는 삶』의 강점은 1960년대 기성 문단을 비판하며 등장한 20대의 작업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베를린 천사의 시〉시나리오 작업을 한 40대 초반에 이르는 이십여 년간의 여정을 일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의 첫 번째 시인 ‘새로운 경험’에서 외할머니의 죽음을 비롯해, 생경한 체험에서 오는 자신이 겪은 첫 번째 감정을 기술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60년대, 격렬하게 문단의 관행을 비판하며 가장 새로운 방식의 문학에 전념했던 70년대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예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통해 전통적 서사의 변형에 대해 시도해 보았던 한트케는 이혼과 딸 아미나를 홀로 키워야 하는 상황,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게 되고자 하는 필요’에 따라 ‘주의 깊게 아름다운 삶의 형식들’을 재발견하길 바라며 ‘일상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들’을 묘사하길 바라는 자세로 전환한다. 1972년 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와 『소망 없는 불행』이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집의 후반부인 〈산책의 끝〉과 〈지속의 시〉, 〈시 없는 삶〉은 이와 같은 맥락에 맞닿아 있다.
딸 아미나가 태어나고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를 출간한 196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한트케는 쾰른에서의 생활과 미국 강연 여행 이후, 1973년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산책의 끝〉과 〈시 없는 삶〉이 수록되어 있던 『아직 소망이 쓸모 있던 시절』은 이 시기의 페터 한트케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느린 사물과 얘기를 나누어라 / 느린 사물의 빛과 얘기를 나누어라 / 느림의 빛 속에 있는 사물과 얘기를 나누어라
_ 〈아무도 없다〉
한트케는 파리 지하철 8호선의 기점에서 종점에 이르는 여정인 ‘발라르-샤랑통 지하철’에서 시작해 시선이 닿는 곳, 마음이 지나는 자리, 기억이 멈추는 장소를 스치며 계절의 감각과 사랑의 노래를 읊조린다. 인생의 분기점을 거쳐 형식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결기를 놓아두고 호흡을 가다듬은 시인은 삶을 관조할 준비가 되었다고 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지금 볼 수 있는 것보다 / 더 많이 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훨씬 더/ 더 많이 볼 수 있음을./ 그런 생각을 하자, 내 안에서 / 숫자를 헤아리는 조바심이 사라져버렸다.
- 〈하늘 앞에 드리운 가지를 마주하고〉 중에서
“언어의 장소들이여, 언젠가 돌아볼 지속의 시간들이여”
어떤 이미지도 지속의 직관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우 상이한 사물들의 질서에서 끌어져 나온 다양한 많은 이미지들은
그 작용의 수렴을 통해 붙잡아야 할 어떤 직관이 존재하는
바로 그 지점으로 의식을 이끌어 갈 수 있다.
- 앙리 베르그손, 〈형이상학 입문〉중에서
어디론가 떠난 여행, 놀라운 기적의 순간, 반복되는 역경을 겪을 때, 우리는 평소와 다른 시간 감각을 갖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속도와 강도는 일상의 그것과 엄연히 다르다. 한트케는 ‘황홀’과 ‘지속’을 대비시킨다. 황홀과 지속은 불현듯 우리 삶에 찾아오는 기쁨이다. 하지만 “슬픔, 고통으로 흐려져/돌처럼 딱딱하게 굳고 말았지./나는 영영 세상 밖으로/쫓겨난 것처럼 느꼈다네,/저 순간들을 경험함으로써/살아 있을 권리를 잃은 것처럼./나는 죽을 것 같았는데/행복에 겨워서가 아니었다.”라고 한트케가 말하듯이, 황홀은 이내 내게 소외의 감정을 전해준다. 반면 지속은 우리 일상과 삶에 스며드는 평안이자 위로다.
지속이란 수십 년,
우리의 인생, 세월에 관한 것;
지속이란 생의 감정입니다.
- 〈지속의 시〉 중에서
“이제 다시 인생이 계속 이어질거야”
페터 한트케는 언어극을 위시한 언어실험에서 자전적 글쓰기로 주제를 전환한 1971년 이후, 소설의 연장선에서 ‘불안’이라는 주제를 해소하는 여정을 『아직 소망이 쓸모 있던 시절』에서 보여준다. 『시 없는 삶』의 4부에 실린 세 편의 시, 〈푸른 시〉, 〈무의미와 행복〉, 〈시 없는 삶〉은 일련의 개인사를 겪으며 이주했던 크론베르크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며 이는 불안에서 부분적으로 벗어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짓눌린 나는/갑자기 아무런 기억도/미래의 생각도 없어지고/나는 불안에 갇혀 길게 누운 채/눈을 뜰 엄두를 내지 못한 채,/단 한 번 이편에서 저편으로/돌아 눕지도 못하였던 그해/겨울밤을 다시 맞이하였다.다만 그때는 추위에 웅크렸다면/지금은 내 밖의 끔찍함에 영문 모르고/길게 몸을 펴 누워 있을 뿐.”에서 볼 수 있듯이 막연하고 모호하며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던 곳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내가 지하도에서 올라왔을 때
시내는
비구름으로 어두침침하고
잠시 뒤 벌써 가로등이 켜졌는데,
뱃속에서부터
삶의 감정이 빛처럼 솟아 올라와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거리의 카페에서 몇 시간,
맥주를 마시고
나는 어딘가를 바라보았고
기억을 떠올렸으며,
바라보다 기억을 떠올리고
그리움 없이
바라보고
또 그리움 없이
기억하였다.
아무것도 나는 고정하여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극장엘 갔고
거리에 머물렀으며
무언가를 바라보다
막연한 기분이 들 때마다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나는
말을 잃지 않고
바라보고 또 바라볼 수 있었지!
모두가 내겐 낯선 이였기에
나는 그들을 이해했고
그대로 그들을 인정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살인자와도
생각을 나눌 수 있었겠지,
그는 또 다른 나였을 테니까.
- 〈푸른 시〉 중에서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관계를 의식의 반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한트케는 자신의 고통을 투영하고 강박적으로 대상을 주의하는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주위 세계가 가치를 상실함으로써 불안이 제거되며 행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천착한다. 삶에 대한, 그리고 늙어감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그리는 〈무의미와 행복〉은 이렇게 끝난다.
어느 차갑고 환한 아침,
될 수 있는 것이
되었던
길고 기쁜 꿈의 여운을
아직도 느끼는 채로,
- 꿈은 그 자체로 이미 성취였다 -
누군가 도시의 경계에서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나이가 들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유리잔을 엎지르고서
자기를 쳐다보는 아이를 보고,
그 사람은 생각한다.
아이가 사람을 저렇게 쳐다보지 않게 된다면,
그게 바로 참된 것이리라고.
- 〈무의미와 행복〉 중에서
시詩와 함께 하는 삶
페터 한트케는 울라 베르케비츠의 제안으로 시집을 재구성하면서 4부에 실린 시의 순서를 역순으로 배치한다. 〈무의미와 행복〉의 아이였을, 딸에게 헌정한 이 시, ‘시 없는 삶’에는 자신의 불안과 부재를 넘어설 수 있었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인 아미나의 이니셜, ‘A에게, 훗날을 위해’가 붙어 있다.
올해 가을 시간은 나 없이 흘러갔네
생은 조용히 정지하여 있고, 그 시절
우울을 이기려 타자를 배우던 때처럼
저녁이면 창문 없는 대기실에서 수업을 기다렸지
네온등은 물밀듯 넘쳐들었고
타자시간이 끝나면 비닐커버는 다시 타자기 위에 덮였네
그렇게 갔다가 그렇게 돌아왔고 나는
자신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을 듯 했지
자신에 몰두했고 그런 사실마저 자각했지만
절망이 아니라 오로지 만족스러웠네
자신에 관한 아무런 느낌도 없이
타인에 대한 느낌도 없이
걸었고, 망설이며 배회하다
자주 걸음걸이와 방향을 바꾸었지
- 〈시 없는 삶〉 중에서
상실과 부재의 감각 속에서 배회하던 한트케의 일상의 중심이 된 아미나와의 일화들, 예를 들어 ‘그게 아니고’라는 말을 처음 했을 때의 감동과 ‘아이의 소망도 이해할 줄 몰랐던’ 아버지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통해 일종의 자유를 발견’한다. 시를 통해, 다시 글쓰기의 힘을 얻는 작가로 돌아오는 한트케는 시집을 엮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지속하는 행복에 대한 체험을 보여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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