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쉬!/ 문인수

금동원(琴東媛) 2021. 6. 11. 08:04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ㅡㅡ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밝은 구석

 

민들레는 여하튼 노랗게 웃는다

내가 사는 이 도시, 동네 골목길을 일삼아

ㅁ자로 한 바퀴 돌아봤는데, 잔뜩 그늘진 데서도

반짝! 긴 고민 끝에 반짝, 반짝 맺힌 듯이 여럿

민들레는 여하튼 또렷하게 웃는다

주민들의 발걸음이 빈번하고 아이들이 설쳐대고

과일 파는 소형 트럭들 시끄럽게 돌아나가고 악, 악

세간 부수는 소리도 어쩌다 와장창, 거리지만 아직

밟히지 않고, 용케 피어나 야무진 것들

민들레는 여하튼 책임지고 웃는다

오십 년 전만 해도 야산 구릉이었던 이곳

만촌동, 그 별빛처럼 원주민처럼 이쁜 촌티처럼

민들레는 여하튼 본시대로 웃는다

인도블록과 블록 사이, 인도블록과 담장 사이

담장 금 간 데거나 길바닥 파진 데

민들레는 여하튼 틈만 있으면 웃는다. 낡은 주택가

너덜거리는 이 시꺼먼 표지의 국어대사전 속에

어두운 의미의 그 숱한 말들 속에

구석자리에, 끝끝내 붙박인 "기쁘다"는 말

민들레는 여하튼 불멸인 듯 웃는다.

 

 

배꼽

 

 외곽지 야산 버려진 집에

 한 사내가 들어와 매일 출퇴근한다.

 전에 없던 길 한가닥이 무슨 탯줄처럼

 꿈틀꿈틀 길게 뽑혀나온다.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

 그 어떤 희망에게도 말 걸지 않은 세월이 부지기수다.

 마당에 나뒹구는 소주병, 그 위를 뒤덮으며 폭우 지나

갔다.

 풀의 화염이 더 오래 지나간다.

 우거진 풀을 베자 뱀의 허물이 여럿 나왔으나

 사내는 아직 웅크린 한 채의 폐가다,

 

 폐가는 이제 낡은 외투처럼 사내를 품는지.

 밤새도록 쌈 사먹은 뒤꼍 토란잎의 빗소리, 삽짝 정낭

지붕 위 조롱박이 시퍼렇게 똥자루처럼

 힘껏 바져나오는 아침, 젖은 길이 비리다.

 

 

 

○『쉬!』『배꼽』 시인 문인수 별세


직관적인 언어로 삶을 통찰했던 문인수(사진) 시인이 7일 별세했다. 76세.
 
고인은 마흔에 시인이 됐다. 대구고를 졸업한 후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6개월 만에 중퇴하고 1985년 문예지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늦게 시인이 된 그는 꾸미지 않은 언어로 작품을 썼다.
 
2006년 발표한 여섯 번째 시집 『쉬!』로 문단의 관심을 받으며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2007년엔 ‘식당의자’로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식당 천막 아래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서 삶의 그늘을 찾아낸 작품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예사롭지 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평을 받았다.
 
『배꼽』 『적막 소리』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도 대표작이다. 65세엔 동시집 『염소 똥은 똥그랗다』을 냈다. 고인은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목월문학상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전정숙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대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501호, 발인은 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북 군위군 천주교 묘원.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쉬!』『배꼽』 시인 문인수 별세

'詩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블린 도깨비 시장/크리스티나 G. 로세티  (0) 2021.10.03
시학교수/ 강우식  (0) 2021.07.17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0) 2021.06.08
악의 꽃  (0) 2021.05.28
근대여성작가선  (0)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