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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친구/시그리드 누네즈

금동원(琴東媛) 2021. 9. 28. 22:30

 

《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저/공경희 역 | 열린책들 

 

 

○책 속으로

동물은 자살하지 않아요. 흐느끼지도 않아요. 하지만 무너질 수 있고 실제로 무너져요. 상심할 수 있고 실제로 상심해요. 동물은 정신을 잃을 수 있고 실제로 정신을 잃어요.
--- p.59

그녀의 글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좋았어요. 감상적인 면이 적고, 자기 연민이 적고, 유머 감각이 있었죠. 마지막 항목이 이상해 보이면, 좋은 책은 아무리 어두운 주제를 다루더라도 코믹한 구석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길. 밀란 쿤데라가 말하길, 누군가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유머 감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 p.75

내가 아는 작가는 모두 ─ 당시 아는 사람은 다 작가였지 ─ 병적으로 우울한 상태 같았어. 다들 누가 뭘 얻었는지, 누가 버림받았는지, 문학계가 얼마나 끔찍하게 불공평한지 꾸준히 들춰냈지. 몹시 혼란스러웠어. 왜 꼭 이래야 될까? 왜 남자들은 모두 교만하고 왜 성범죄자가 그렇게 많을까? 왜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화나고 우울할까?
--- p.90

개가 사람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말이 마음에 들어요. 내가 완전한 인간 혐오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개들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요.
--- p.99~100

아폴로가 자는 모습을 지켜봐요. 평온하게 옆구리 살이 오르내려요. 배가 불룩하고 따뜻한 몸은 보송보송해요. 오늘 6.5킬로미터나 산책했어요. 평소처럼 아폴로가 도로에서 일을 보려고 웅크리면 내가 지나가는 차들을 막아 주었어요. 공원에서 누군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우리 쪽으로 뛰어오자, 아폴로가 짖으면서 그와 내가 부딪치기 전에 막아 주었어요. 오늘 아폴로와 예닐곱 차례나 줄다리기를 하고, 말을 걸고 노래를 해주고 시 몇 편을 읽어 주었어요. 손톱을 다듬고 털을 일일이 빗겨 주었고요. 이제 아폴로가 자는 걸 보니 만족감이 밀려와요. 더 깊은 감정이, 독특하고 신비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감정이 이어져요.
--- p.171~172

넌 내게 알려 줄 거지? 명심해, 난 인간에 불과해, 네 예민함 근처에도 못 간다고. 너무너무 힘들어지면 네가 신호를 보내 줘야 해.
그 일을 순리를 거스르거나 신을 놀리는 짓으로 보진 않아. 혹자의 말처럼 한 존재의 영적 여정을, 바르도로 가는 길을 간섭하는 행위로 보지 않아. 난 그것을 축복으로 여겨. 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네게 해주고 싶어.
물론 내가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마지막 동물 병원행에 너와 동행할 거야.
어제 네가 아침 식사를 건드리지 않자 난 그 순간이 온 줄 알았어. 내가 먹을 빵을 잘라서 내밀자 너는 받아먹었어(같이 미사를 보는 것 같았지). 하지만 저녁 무렵 너는 입맛을 되찾았지.
그러니 그 일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오늘만 바라보자, 오늘에 집중하자. 더할 나위 없는 여름 아침이라는 선물에.

--- p.236~237

 

 

○출판사 리뷰

 

잘 지냈어, 친구? 낮잠을 푹 잤니? 밖에 나가고 싶니? 왜 다른 개들이랑 놀지 않니? 넌 천사니? 날 영원히 사랑해 줄 거니?
사랑과 우정, 상실과 치유 그리고 반려견과의 마법 같은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

미국의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친구』가 번역가 공경희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소설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누네즈는 문학과 순수예술을 공부했고,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만큼 문학과 예술에 관한 이해와 통찰이 깊은 작가이다. 그런 자신을 투영하여 갑작스러운 상실을 통과해 가며 애도에 이르는 과정을 친밀하고 유머러스한 고백으로 그려 낸 『친구』는 〈아름다운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8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뉴욕에 아폴로라는 이름의 대형견이 있다. 이미 유기된 경험이 있는 아폴로는 또 한 차례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그를 구조해 키우던 남성 작가가 자살한 것이다. 대학이라는 세계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권력을 누리던 그는 나이 듦과 변화된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런 그를 애도하느라 지친 아폴로만이 남게 된다.
한편 작은 아파트에 사는 화자인 〈나〉는 오갈 데 없어진 아폴로를 떠맡게 된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계약 조건과 평균 수명에 가까워진 아폴로의 악화된 건강 상태가 나를 압박해 온다. 과거 연인이자 멘토였던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폴로를 맡았지만 〈헌신의 본능이 너무 강해서, 자격 없는 인간에게도 퍼주는 게 못마땅해서〉 나는 고양이를 더 선호해 왔다. 그저 〈당신의 개랑 있으니 당신의 일부가 여기 있는 느낌〉에 그치던 아폴로와의 관계는 서로를 보듬으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빨리 집에 들어가려고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까불대는 강아지 시절을 놓친 걸 아쉬워하고, 너무 힘들어지면 신호를 보내 달라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문학과 예술이 함께하는 뉴욕 산책

『친구』는 상실을 겪은 인물과 반려견의 연대라는 골자 안에 문학과 예술, 변화된 세상을 바라보는 여성 화자의 관점이 감각적이고 우아하게 깃들어 있는 산책 소설이기도 하다. 다양한 작가와 책을 통해 끌어내는 지적 사유, 뉴욕을 거닐며 만나는 촌철살인의 유머, 여성 창작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촘촘한 연결망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나〉는 반려견 아폴로와 진정한 교감의 나날로 나아간다.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다면,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면, 여성 창작자의 눈으로 바라본 오늘날의 세상이 궁금하다면 아폴로와 함께하는 뉴욕 산책에 동행해 보기를 권한다. 〈더 깊은 감정, 독특하고 신비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감정〉은 덤이다.

 

○작가 소개

시그리드 누네즈는 삶과 죽음에 관한 지적인 통찰을 보여 주는 미국의 소설가.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바너드 칼리지에서 문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에서 순수예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1995년에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으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작가의 강력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랑과 우정,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담론을 독특한 유머 감각과 우아한 사유로 풀어낸 『친구』로 2018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지금껏 8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수전 손택에 대한 회고록을 펴냈다. 2020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이며, 화이팅 어워드, 베를린 프라이즈, 로젠탈 어워드, 로마 프라이즈 등을 받았다. 컬럼비아 대학, 프린스턴 대학, 뉴스쿨, UC 어바인 등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보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한 그녀의 작품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역자

공경희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습니다. 소설, 비소설, 아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드니 쉘던의 『시간의 모래밭』으로 데뷔한 후, 『호밀밭의 파수꾼』,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마시멜로 이야기』, 『타샤의 정원』, 『엔조』 등이 있으며,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썼습니다.

 

 

○[조용호의 문학공간] "사라진 자를 기다리는 술래의 슬픔"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7-30 15:13:01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 장편 '친구'
늙은 개와 나누는 지극한 감정을 매개로
세상을 등진 스승이자 애인인 '친구' 애도
달라진 창작 세태와 문학의 본질도 사유

어떤 존재가 죽었다는 것은 곧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는 술래가 되고, 죽은 자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형국이다. 언젠가는 바뀔 테지만,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술래다. 아무리 술래라지만 사라져 찾을 수 없는 자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라졌다는 것을, 다시는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술래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전미도서상(2018)을 받은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 '친구'(공경희 옮김· 열린책들)는 갑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스승이자 연인이자 친구'인 늙은 남성 작가에게 보내는 여성 작가의 일인칭 편지 혹은 일기 형식이다. 그는 죽으면서 '3번 부인'에게 덩치가 산만한 유기견 '그레이트데인' 한 마리를 키우다 남기고 갔는데, 이 부인이 그 개를 키우지 못하겠다고 여자를 찾아와 사정을 한다. 남자가 생전에 여자를 그 개 '아폴로'를 맡을 적임자로 거론한 적도 있다고 설득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개를 키울 수 없는 임대계약을 들어 거부하다가, 아직도 죽은 남자를 문간에서 기다린다는 '아폴로'와 같이 살아가기로 한다. 언제 관리인으로부터 계약 위반으로 쫓겨날지 전전긍긍하면서.

▲사랑과 우정,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담론을 독특한 유머 감각과 우아한 사유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친구'의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 뉴욕에 살면서 보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의 작품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열린책들 제공] 


'개가 주인을 그리워하던데요, 라고 위층 주민이 말해요. 퇴근하다가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와 마주쳤어요. 말인즉, 아폴로가 또 울어요. 아폴로는 당신을 잊어야 해요. 당신을 잊고 날 사랑해야 해요. 꼭 그렇게 되어야 해요.'

 

이 여성은 작가이자,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다. 죽은 남자는 강의실에서 제자로 만났다. 스승인 그 남자를 좋아했지만 이후 내내 기묘한 우정을 나누는 절친으로 살아왔고, 그는 다른 제자와 결혼했다. 그는 '1번 부인'과 이혼했고, 다시 공백기를 거쳐 나이차가 많이 나는 '2번 부인'을 경유해  '3번 부인'과 살다가 죽었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때마다 난 상심을 경험했고, 누군가와 결별했다고 말할 때마다 밀려드는 기쁨을 누를 수 없었어요.' 여자를 상담한 의사는 그녀가 남자를 사랑했다고 '진단'하지만, 그녀는 사랑인지 아닌지 확신하진 못한다. 다만 그 남자와 나눈 추억이 떠올라 내내 울고, 늙은 '아폴로'를 그 남자인 양 보살핀다. '당신의 개랑 있으니 당신의 일부가 여기 있는 느낌이에요.'

 

이 소설은 죽은 남자를 애도하고 그가 남긴 개와 살아가는 이야기가 축이긴 하지만, 그리 단순하진 않다. 남자가 왜 죽었는지 추정하는 과정을 통해 추락하는 문학의 위상과, 문학을 대하는 달라진 태도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문학을 하는 행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여러 인용문들도 흥미로워, 글쓰기 강좌 역할도 일면 곁들인다. 대학에서 문학 창작을 가르치던 남자는 죽기 전 애착을 가졌던 강의를 그만두었다. 달라진 강의실 세태에 실망한 탓이 크다. 그는 절대다수인 여성 수강생들에게 '디어'(어린 사람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호칭)라는 호칭을 썼다가 항의를 받고 토라졌다. 학교에서는 '성적 위법 행위 교육'을 통해 "말이든 글이든 성행위에 대한 언급은 위법 항목에 포함"되며 "여기에는 농담, 만화, 자신이나 타인의 성생활에 관련된 가벼운 대화도 포함될 뿐 아니라 글쓰기 워크숍도 예외는 아니다"고 못 박는다. 나아가 "선생이 학생과 데이트하는 걸 알면 즉시 신고해야 하고, 또 신고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동료가 음란한 농담을 할 경우 개인적으로 불쾌하지 않아도 신고하라고 학교 측은 강력히 촉구"한다.

 

'강렬한 연애 생활은 집필에 도움 정도가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던, '방탕이 제2의 천성'이었던 그가 숨이 막힐 만한 변화다. 단순히 이러한 환경 때문에 그가 완전히 사라지기로 결심한 건 아니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그가 왜 스스로 죽었는지 궁금해 하는 1번 부인에게 여자는 문학계 전반의 달라진 세태에 대해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유망주'로 각종 지원금을 받으며 쓰지도 않은 작품까지 입도선매당하던 작가가 소설이 써지지 않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던 경험을 들어보면, 글 좀 쓴다는 신인들을 상업적인 문단 시스템이 어떻게 소진시키는지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 '유망주'의 말.




'난 어떤 작가가 대성공을 거둘 때마다 그를 끌어내리려는 듯한 무수한 시도들을 봤지. …내가 아는 작가는 모두 병적으로 우울한 상태 같았어. 다들 누가 뭘 얻었는지, 누가 버림받았는지, 문학계가 얼마나 끔찍하게 불공평한지 꾸준히 들춰냈지. 몹시 혼란스러웠어. 왜 꼭 이래야 될까? 왜 남자들은 모두 교만하고 왜 성범죄자가 그렇게 많을까? 왜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화나고 우울할까? 사실 모두 안쓰럽게 느껴졌지. 한편 난 여전히 소설과 씨름 중이었어. 그러다 어느 날 자신에게 말했지. 이 책을 쓰지 않겠다고 말해. 세상에 소설을 내놓으려는 사람은 하늘의 별만큼 많잖아? 사실 이미 너무 많은 소설이 발간됐잖아? 솔직히 내 소설이 나오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아? 또 미완성이어도 아쉬울 게 없을 일에 인생을, 한 번뿐인 생생하고 소중한 인생을 쏟을 합당한 이유가 있어?'

 

문학 하는 일의 고통과 회의에 대한 사유는 계속 이어진다. 이를테면 '문학의 악덕에는 치료제가 없는 것 같다, 감염된 이들은 거기서 더 이상 쾌락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는 W.G.제발트의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죽은 남자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을 되새긴다.

 

'필립 로스는 글쓰기를 좌절과 굴욕이라고 일갈했죠. 그는 글쓰기를 야구에 비유했어요. 시간의 3분의2는 망친다. 그게 현실이지요, 라고 당신은 말했어요. 하지만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우리 시대에 그 현실은 자취를 감추었어요. 이제 누구나 화장실에 가듯 누구나 글을 쓰고, 재능 운운하면 반발심에 욱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가 출판의 부흥이 재난이었지요, 라고 당신은 말했어요. 그것은 문학의 죽음이었죠. 문화의 죽음을 뜻했고요. 그리고 개리슨 케일러가 옳았습니다, 라고 당신은 말했어요. 누구나 작가일 때는 아무도 작가가 아니다.' 

 

이러한 세태 변화와 더 이상 작품이 써지지 않는 고통이 이 남자가 사라진 이유의 전부일까. 여자는 남자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은 '노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거세된다'는 의미일 터이니, 바람둥이 그 남자로서는 더욱이 감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둥이는 두 부류가 있지, 라고 말했어요. 여자를 사랑하는 부류가 있고 여자를 증오하는 부류가 있어. 당신은 첫 부류에 속한다더군요. 여자들이 당신 같은 부류를 더 용서하고 더 이해하고, 심지어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녀는 믿었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려 들지 않는다고.'

 

1번 부인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그 세대의 생각일 뿐, 이즈음 여성들은 질색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의 고갱이는 이런 새삼스러운 논점에 있지는 않다. 사랑과 우정 사이, 존경과 애정 사이에서 긴 생을 같이 건너온 한 남자 혹은 한 인간의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정서가 중심이다. 아폴로라는 늙은 개와 나누는 여자의 지극한 감정은,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충일하고 여일한 사랑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발을 족쇄로 묶고 거꾸로 수조에 잠겨 탈출을 시도하는 마술로 유명해진 헝가리 출신 마술사 '후디니'. 그를 그린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죽어가는 마술의 거장은 '어떤 방법이라도 있으면 내가 돌아올게'라고 아내에게 약속한다. 실제로는 병원 침상에서 죽었고 그의 마지막 말은 '싸움이 진절머리 나'였다. 여자는 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지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 [열린책들 제공] 

 

'처음에는 착오라고 믿었어요. 당신이 없어지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고. 그냥 실종된 거라고. 당신이 우리에게 소름끼치는 유치한 장난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믿었죠. 당신은 사라졌지만 죽지 않았어요.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죠. 당신이 돌아올 수 있고, 당신은 돌아올 수 있으면 당연히 그럴 거예요.  …의사는 말해요. 당신을 향한 분노는 없다고요. 분노도 없고 비난도 없어요. 내가 자살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플라톤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세네카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신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왜냐면 당신은 수조에 거꾸로 갇혔으니까. 왜냐면 당신은 기운이 없고 통증에 시달렸으니까. 왜냐면 당신은 싸움이 진절머리 났으니까.'

 

죽어가는 늙은 개 아폴로를 데리고 여자는 지인이 빌려준 해변 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여자는 다시 술래가 된다. 이번에는 아폴로가 사라질 차례다. '사실 그를 사랑했는지 아닌지 지금도 명확히 말할 수 없어. 전에 여러 번 사랑에 빠졌고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런데 이 사람은… 아, 이제 와서 그게 뭐 중요할까.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은 신비주의자가 신앙을 정의하려는 시도와 비슷하다고 읽은 기억이 있어. 그것은 이게 아니다, 그것은 저게 아니다. 그것은 이것과 비슷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과 비슷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아폴로) 네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잦아들어. 아, 내 친구, 나의 친구!'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오름제의 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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