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언어, 문학
김주연(문학평론가)
20년 전, 성민엽 교수가 엮어 펴내준 《김주연 깊이 읽기》라는 책에서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써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쓰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무엇인지 딱히 이렇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문학이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의 글을 모은 편저를 출판한 일이 있었는데도, 무엇보다 30여 년 문학 선생을 하면서 숱한 강의와 강연을 해오면서도 막상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고백의 요구는 은연중 피해 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60년 가까운 평생 문학평론가로 살아왔으니 이제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이 상황이 내게 분명한 답을 이제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분명한 답 대신 문학이 내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내게 문학은 질문하는 언어이다. 일찍이 낭만주의 이론가 F.슐레겔은 문학은 진보적이어서 끊임없이 자기쇄신을 거듭한다고 하였는데, 말을 바꾼다면, 문학은 질문의 연속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이때 그 질문은 허공에다가 던지는 빈 말이 아니다. 그 질문은 반드시 언어화되어야 하는 형상화의 운명 안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적인데, 이 양면성을 나는 "그 스스로 변화와 파괴, 생성을 거듭하면서 인간을 부단히 자유스럽게 하는 움직이는 충격이며, 언어를 매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은 다시 독특한 자부심을 갖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976)고 쓴 바 있다. 양면성을 모순 아닌 총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러한 생각은 비단 문학에만 적용되지 않는, 아마도 나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아닌가 한다.
나의 이러한 인생관은 다른 분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치는 모양이어서, 가령 한 제자 교수는 나를 가리켜 "자유롭고 진보적이면서도 원칙과 질서를 존중"(신혜양, 《김주연 깊이 읽기》)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문학의 총체성과도 통하는 지적으로서 아마도 슐레겔로 부터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총체성이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껴안는다. 현존하는 실존 전체를 포함할 뿐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향해서도 열려져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미래까지 껴안는, 전세계를 향한 부단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을 향해 열려져 있으므로, 규정되지 않는다. (2021)
○작가 소개
김주연 문학평론가는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다.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서 『상황과 인간』, 『문학비평론』, 『변동 사회와 작가』, 『새로운 꿈을 위하여』, 『문학을 넘어서』, 『문학과 정신의 힘』, 『문학, 그 영원한 모순과 더불어』, 『사랑과 권력』, 『가짜의 진실, 그 환상』,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 『문학, 영상을 만나다』, 『사라진 낭만의 아이러니』, 『몸, 그리고 말』, 『예감의 실현』(비평선집) 등의 문학평론집과 『고트프리트 벤 연구』, 『독일시인론』, 『독일문학의 본질』, 『독일 비평사』 등의 독문학 연구서를 펴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학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30여 년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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