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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산책

이어령 1934-2022

금동원(琴東媛) 2022. 3. 1. 00:14

“죽음은 모태로의 귀환, 엄마가 밥 먹으라 부르는 소리”

 
중앙일보

입력 2022.02.28 00:02/ 업데이트 2022.02.28 00:59

 

1981년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함께했던 딸 이민아 목사는 10년 전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2016년 이 선생은 딸을 추모하는 책을 냈다. [사진 열림원]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이어령 선생의 죽음에 대한 대담집이 최근 잇따라 나왔다. 지난해 10월의『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열림원) 중 한 대목이다. 지은이와의 대담에서 이어령 선생은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라며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다”라고 했다.

26일 별세한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사유는 죽음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지적이고도 따뜻한 깨달음을 말년에 여럿 남겼다.

그에게 죽음은 구체적이었고 가까이 있었다. 고향 보리밭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에 그 죽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했다. 무엇보다 2012년 장녀 이민아 목사를 떠나보내야 했다. ‘3개월 시한부’의 암 선고를 받고 치료 없이 생의 마지막을 누리고 떠난 딸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2016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내면서 먼저 보낸 딸을 그리워했다. 언제나 글을 쓰고 책을 읽어 바빴던 아빠의 후회, 딸을 다시 만나 번쩍 안아 올리는 환상이 들어있었다.

 

여기에서도 이어령 선생은 죽음에 대해 사유했다.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건 이름처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아주 구상적인 명사로 죽음은 그렇게 내 앞으로 온 거야.” 그는 이 책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딸의 탄생을 기억하며 울음이라는 슬픔이 태어남의 기쁨과 다름없음을 보여줬다.  2019년 책을 새로 내면서 쓴 서문에서 고인은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보여주었다.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라고 썼다.

 
 

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이 선생은 여섯 살에 고향의 보리밭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다 문득 죽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 기억을 개회식에 반영해 여덟 살 소년이 혼자 굴렁쇠를 굴리도록 했다. [중앙포토]

 

2019년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암 선고를 전하며 죽음과 삶을 연결했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물론 그에게도 죽음은 본능적으로 두려웠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는 죽음을 ‘철창 나온 호랑이’에 비유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죽음학자인 로스가 “타인의 죽음이 동물원 철창 속 호랑이라면 내 죽음은 철창을 나와 덤벼드는 호랑이”라 한 말이다. 이어령 선생은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고 했다.

 

이어령 선생의 죽음에 대한 대담집이 최근 잇 따라 나왔다. 지난달 나온 『메멘토모리』.

 

생전에 나온 마지막 책도 죽음을 다루고 있다. 지난달 출간된 『메멘토 모리』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해 던진 24개 질문에 대한 이어령 선생의 답이다. 그는 여기에서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인한 죽음을 다루며 죽음의 범위를 개인에서 대중으로 확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팬데믹 시대의 죽음에 관해 이런 사유를 전했다. “우리 안에 있던 죽음, 지금까지 알던 그 사자가 아니야. 두렵지만 그래도 안심하고 봤던 그놈이 골목 어귀에서, 출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시장 가다가 딱 마주치게 된 겁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철학자나 성직자의 가르침보다 더 강렬하게, 이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사자를, 저 괴물을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보여주고 만 겁니다.”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그게 원죄야. 이게 모털(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인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

 

오래전 시작된 암으로 육체는 허물어졌지만, 고인에게는 그조차 하나의 탐구 대상이었다. 매주 한 두 차례 고인을 만나온 윤재환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의 전 사무국장은 “별세 사흘 전에 만났을 때조차도 죽음을 관찰하셨다”고 했다.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삶과 같은 개념, 다른 세계의 개념으로 깨닫게 되셨다 했다. 불편하고 아프며 입이 마르는 죽음의 증상을 적극 관찰하셨다. 정신은 오히려 더 맑고 똑바랐다. 평생을 호기심으로 사신 이답게 죽음마저 들여다봤다.”

 

윤재환 전 사무국장은 마지막 만남에서 고인이 “자면서 죽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병원 대신 집에서, 서재와 연결된 집필실에 병원 침대를 들여놓고 거기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이어령 선생은 정말로 26일 오후 1시쯤 잠들어있던 중 세상을 떠났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시대를 앞서 예감한 진정한 진보주의자, 천국에서 잠시 쉬세요

중앙일보 

입력 2022.02.27 08:17/업데이트 2022.02.27 13:53

 

  김주연 문학평론가

 

평론가 김주연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며'

 

 

 이어령, 그는 문화의 자부심이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문화라는 영역에 영예를 입혀준, 말의 정확한 뜻에서, 과감한 크리에이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내가 아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 ‘진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다소 폭넓게 쓰이는 것 같은데, 이어령이야말로 참다운 진보 그 자체였다. 그는 매일 새로운 말을 한다. 이미 있는 말도 그 의미를 뒤집고 작은 한 조각의 말마디에서 거대한 해석을 이끌어낸다. 그의 문화는 그렇게 진보적 형성을 이루어 가면서 정치나 경제에 종속된, 혹은 그 하위 영향권에 머무르는 자리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이끌고 나아가는 강력한 힘임을 끊임없이 발주시켜왔다. 이어령, 그의 이름은 그 자체로 한국의 독자적인 명예요 브랜드였다. 예컨대 그는 정치, 혹은 현실의 여러 가지 부끄러운 아이콘을 지워 버리는 흔쾌한 자부심이었다. 따라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안 하든, 심지어는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어령을 말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문화행위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갔다. 허전하다.


‘말’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이어령은 ‘말’을 살려준,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는 ‘말’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엄중한 사회라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쳐준 고마운 선생이었다. 그가 고안해서 선포한 ‘디지로그’라는 '말’을 보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복합된 새로운 그 ‘말’ 속에는 아날로그의 전통정서와 디지털의 미래전망이 어우러진 현실이 움직인다. 근대 초기의 미분화된 취락정서와 근대를 넘어서는 기술지향을 단번에 껴안는 놀라운 예지와 문학적 감각이 번득이지 않는가.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궁과 무덤의 영어 어휘의 공통성을 발견하고 이를 생명 자본론과연결시키는 안목은 단순한 어휘론을 넘어서는 문명비평가로서의 혜안이라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의 수사는 화려한 문장가라는 호칭에 충분히 값하지만 불세출의 에세이들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의 깊이는 늘 이 시대를 앞질러 예감하여 왔다.


 이어령은 그 문장과 비판의 예리함, 무엇보다 우상 파괴의 진보성으로 인하여 사람 자신마저 날카로운 인상으로 예단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그의 인간성은 따뜻했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치지 않는 습관도 (아마 한 시간은 기본일 듯 ) 한몫하겠지만 그는 뜻밖에도 사람들에게 관대하다. 문학은 권력과 정치이념을 넘어서는 초월적 힘이라고 믿는 탓인지 바로 그 권력과 이념의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그와 불온성 논쟁을 벌였던 김수영 시인을 향해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정치적으로 곤경을 겪는 작가들을 말없이, 혹은 공개적으로 적극 변호하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비슷한 일화들을 내게 말하면서 대부분 말없이 지나갔다고 조금 쓸쓸해 했다. 앞을 달리는 자의 외로움이라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품이 넉넉해 보이곤 했다


 이어령, 그는 문학평론가였지만 문학평론에 배타적으로 집중하지는 않았다. 시, 소설, 드라마 등 문학의 모든 장르에 창작의 손길을 뻗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미시적/분석적 형태로 작품론/작가론에 머무르는 대신 그 전체를 아우르고 넘어서는 거시적 문명비평의 길로 나아갔으며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품격을 일으켜 세웠다.  미시적 감성을 통하여 거시적 세계를 움직인, 과감한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는 그 모든 창작활동이 신이 준 선물이었다고 겸양까지 하였다! 시대의 비평가 이어령 선생, 참으로 이 세상의 큰 동력 자체였다, 천국에서 잠시 쉬시기 바랍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나는 사랑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중앙일보

입력 2022.03.03 00:03 업데이트 2022.03.03 08:40

 

-이어령 전 장관 추모시 

 
 

선생님,

3월의 하늘을 향해 선생님을 불러 봅니다

금방이라도 반가운 얼굴로 책상에서 일어서며

“왔어?”하고 나오실 것 같은데

오늘,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으시네요

사람들은 선생님을 교수, 평론가, 학자, 언론인, 시인, 장관님, 이렇게 말하다가

그래도 다 잡히지 않는 존재의 잉여가 있어

아, 이어령은 한 마디로 천재였어!

이렇게 속 시원하게 결론을 내고 싶어하지만

그러나 끝내 한 마디로 결론을 낼 수 없는 사람,

선생님은 그런 명사들의 합계가 아니라 ‘쓰다’라는 타오르는 동사였으니까요

지식의 최전선에서 늘 불을 지르는 화전민 같은 도전,

천재란 말조차 부족하지요

 

지프차의 헤드라이트 속에서 눈이 부셔 허둥대던 보따리를 든 노인 같이

근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전근대의 한국인을 슬퍼했고

성황당 같은 문학을 하던 한국문학의 우상에 도전했으며

전근대의 한국문학을 현대문학으로 변화시키고자

모더니티의 씨를 뿌렸고

존재의 갈증으로 여기저기 우물을 파러 다닌 사람,

전체주의 시대에 ‘장군의 수염’을 썼으며

기죽은 한국인 속에서 능동적인 신한국인을 발견했으며

세계적인 일본론인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을 능가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쓰고

놀라운 신세계인 디지털 기술 속에서 인간 불모를 발견하고

그것을 디지로그라는 신개념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

늘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쓰고 싶어했지요

한 권 한 권 선생님의 저서는 다 발명이었고

경이로운 생명의 다빈치 노트였어요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술래잡기나 종이비행기 날리기를 좋아하는 그냥 어린

소년이었어요

우리가 선생님 연구실에 놀러 가면

“이것 좀 봐, 이거 참 신기하지?”

누군가 선물한 새로운 발명품 같은 것을 보여주며 기뻐했어요

선생님은 늘 신기한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선생님 곁에 있으면 세상은 경이롭고 늘 신기해요

아니면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에 나오는 까뮈처럼

어둠과 우울이 약간 뒤섞인 매력적인 프로필,

선생님에게는 천재의 독약이라는 권태가 없었어요

생명은 흘러넘치는 빛, 눈부신 언어의 태동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이 안 계신 세상이라니요,

눈앞이 캄캄해지고

저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해와 달이 저렇게 있는데

선생님만 안 계시다니요

우리의 그리움이 이렇게 큰데

선생님이 안 계실 리가 없어요

저기 저 하늘, 저기 저 바다, 저기 저 꿈틀대는 봄의 대지에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에 가득한 존재,

“나는 사랑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요

이제 곧 봄의 전령사 수선화가 피겠지요

수선화가 피면 선생님의 소식으로 알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소서!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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