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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청춘의 문장들

금동원(琴東媛) 2022. 7. 24. 14:34

 

《청춘의 문장들》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김연수 저 | 마음산책 

 

 

◎작가 소개

 

김연수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스무 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이 있다.

 

 

 

 

 

◎책 속으로

 

 

때로 쓸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 옛일을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 p.56

 

주름이나 흔적은 늦여름 골목길에 떨어진 매미의 죽은 몸처럼 삶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분의 것인데 지난 몇 년간 나는 거기에 너무 마음을 쏟았다. 이젠 알겠다. 역사책의 페이지가 부족해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마음 둘 필요 없는 주름이나 흔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간다.

--- p.65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 p.82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검은 얼굴을 지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그 눈들은 저마다 빛을 낸다. 그 빛 속 하나하나에 그대들이 있다. 외로운 그대들, 저마다 멀리서 흔들린다. 문득 바람이 그대 창으로 부는가, 그런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건 멀리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빛이다. 한때 우리는 너무나 가까웠으나, 그리하여 조금의 흔들림도 느낄 수 없었으나…….

--- p.100

 

내가 기억하는 청춘이란 그런 장면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창문 너머로는 북악스카이웨이의 불빛들이 보이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하지만 모두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합창한다.

--- p.123

 

그러니까 한 여자애와 헤어지면서 그 어마어마했던 나만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제는 내 세계 안 창에 맺힌 슬픔만으로는 부족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바깥의 슬픔, 타인의 슬픔에까지도 눈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 p.125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내가 삶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 p.136

 

어쩌자고 삶은 그처럼 빨리 변해가는가? 어쩌자고 우리는 열아홉 살에 헤어지게 된 것일까? 어쩌자고 모든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는가? 어쩌자고 고통은 때로 감미로워지는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끝이 없으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 p.190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겪었다는 사실을. 그 모든 사람을 스무 살 무렵에 다 만났으며 그 모든 길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걸었습니다. 그 모든 기쁨을, 그 모든 슬픔을, 그 모든 환희를, 그 모든 외로움을, 스무 살 무렵에. 창덕궁에서 종로 3가 극장 을 향해 걸어갈 때, 혹은 텔레비전에서 문득 시인 기형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볼 때, 심지어는 카푸치노를 마실 때마다 스무 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교수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교양 국어 시간에 뭘 배웠는지는 일찌감치 잊어버렸는데, 스무 살 무렵에 만났던 사람과 어디를 걸었는지, 그가 무슨 커피를 즐겨 마셨는지, 우리가 어느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아무리 해도 잊혀지지 않더군요.

--- p.212

 

그제야 나는 내가 사는 이 땅의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한 번 떠나고 다시 오지 않는 어떤 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되리라는 걸 깨닫는다. 언젠가 어떤 이와 나란히 걸으며 바라보던 풍경,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풍경,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이고 우리가 보게 될, 그리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이라는 걸.

--- p.235

 

 

◎출판사 리뷰
 
 

『청춘의 문장들』은 김연수 작가의 젊은 시절 일화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읽다 보면 작가 개인의 일들이 보편적인 청춘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갑갑했던 학창 시절이나 연애에 실패하며 자신의 세계가 깨어지는 경험,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며 그와 관련된 미래를 상상해보았던 기억 등은 누구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 작가는 한시와 하이쿠, 대중가요 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장’을 활용하여 청춘을 입체적으로 복원해낸다. 고금을 막론한 명문장들과 그 외 이를 전하는 작가의 생생한 글은 젊은 시절 우리 모두가 품었던 존재론적 질문과 우정에 대한 고민, 사랑의 열병 등 젊은 시절에만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그려보게끔 한다.

 

어느새 청춘은 멀리 가버렸으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뜻 남아 있는 듯. 지금도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몸이 아파온다. 석양빛 아직 아니 사라졌는데 등나무에 초승달 벌써 올라선 풍경처럼, 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 _128쪽

 

작가는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겪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마주치고 뒤섞이며 겪어낸 것이다. 정릉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셨고, 컴퓨터 한 대로 자신을 위한 소설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함께 술을 먹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혼자 쓰던 소설로는 등단을 했다. 이제 ‘독자’가 있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청춘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지나갔다. 작가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했던 그 시절이 ‘돌아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한다.

 

스무 살 무렵은 절박하고 예민한 시절이자 많은 것들을 ‘처음’ 겪는 때이기도 하다. 이후로는 많은 것에 차츰 무뎌지게 된다. 김연수 작가 역시 먼 미래를 예상하기 힘들어 했던 청춘을 지나, 서른 이후에도 삶이 한없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고 어리둥절해하는 생활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나간 시절을 짚어주는 문장들을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다음 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 보낸 시절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꽃 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되리라.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_117쪽

 

아프거나 아름답거나,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청춘의 나날들

 

김연수 작가가 『청춘의 문장들』의 초판을 낸 것은 삼십대 중반, 청춘이 이제 막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그리고 오십대가 된 지금 개정판을 써 내려가며 예전의 자기 자신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는다. 찬란하게 뜨거웠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는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는 나이가 된 것도 같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들을 이제 알게 됐으니 그렇게 슬픈 것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가고, 한 해가 가고, 우리의 청춘도 끝나고, 우리는 한때의 우리가 아닌 전혀 다른 어떤 사람들이 되었다. 결국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건 행복했던 시절의 우리들뿐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_248쪽

 

살아 있는 한 청춘은 반복되고, 지나가고, 끊임없이 반추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팠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문장들이 있기에, 인간은 삶을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여기고 오늘도 걸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김연수 작가가 건네는 청춘의 기억과 문장들을 읽으며, 무감해졌던 하루를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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