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캐시 박 홍 저/노시내 역 | 마티 |
◎책 소개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저자는 은근하게 계속되어 끝내 내면화된 차별과 구별짓기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들을 남기는지 파고 든다.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네 피해의식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각종 유력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작가 소개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은 19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미국의 이민 금지가 풀린 직후인 1965년 펜실베이니아주 이리(Erie) 외곽으로 이민했다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공사장인 로스앤젤레스의 신개발 지역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집 안에서 한국어로 말했기 때문에 입학할 때까지 영어를 거의 몰랐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이질적 언어 환경, 이중 언어’는 역설적으로 ‘영어를 두드리게’ 만들고, ‘갈등하는 의식에 가장 근접한’ 그만의 어휘소 목록을 쌓게 한 동력이 되었다.
애초에는 미술 작업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진보적인 성향의 예술 대학으로 유명한 오벌린 대학교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아이오와 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작을 이어가면서 예술 비평 활동을 병행한다.
○역: 노시내
노시내는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지를 떠돌며 20년 가까이 타국생활 중이다. 지금은 스위스 베른에 머물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일본의 재구성』 등의 책을 옮겼고, 『빈을 소개합니다』『스위스 방명록』을 썼다.
◎책 속으로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아시아인은 미안스러운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 다양성 요건을 채울 만큼 인종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이오와에서 미량으로 솔솔 새어 나오던 인종주의는 은근히 야비했다. …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주제만으로는 예컨대 자본주의처럼 좀 더 묵직한 주제와 함께 엮지 않는 한 불충분하고 부적절하다고, 저들은 내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아이오와 문예창작 과정에 다니던 다른 유색인종 작가 중에 정체성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시와 소설에서 인종적 요소를 말끔히 지워버린 사람들을 알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묘하게도 그들은 전부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경향성이 없는 농담은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들려주듯 무해하고 무독하다. 경향성을 갖는 농담은 공격적이거나 저속하거나 아니면 둘 다여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억눌린 부분을 캐낸다.
나는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 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백인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 책은 통증의 강도에 따라 평가받는다. 강도가 2라면 굳이 내 얘기를 풀어놓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10이라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수치심은 나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분리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사르트르가 쓴 대로 “타자가 나를 보는 대로” 나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 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의해 초래된 것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종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기억의 촉발은 어떤 감정을 되살린다. 한 오라기의 두려움과 수치심, 동물처럼 바짝 긴장하게 된 경계심 같은 것 말이다.
시인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시종일관 영어를 권력 투쟁을 위한 무기로 취급해 왔고, 나보다 더 힘센 자를 상대로 그 무기를 휘둘렀다. 그래서 영어를 애정 표현에 사용하는 일만큼은 서투르다. 집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늘 조심하다 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안으로 들이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고통과 불가분하게 뒤얽힌 사랑으로 양육된 나머지, 그 사랑을 공기 중에 일단 노출해버리면 그것이 산화되어 괜히 내가 영어로 내 가족을 배신하는 꼴이 될까 봐 두렵다.
어디 가서 나처럼 생긴 사람이 너무 많으면 늘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데, 아시아인이 많은 레스토랑은 쿨하지 않고, 아시아인이 많은 학교는 균형이 깨져 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인이 너무 많으면 그 공간은 아시아인으로 들끓는 느낌이다. 여기서 “너무 많으면”이라는 것은 겨우 세 명쯤일 때도 그렇다.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 번 입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의기양양한 페미니즘 서사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탈환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신체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 본문 중에서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내 피해망상일까?
캐시 박 홍은 한국계 미국 이민자 2세대로, 미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캐시는 어느 순간 문학인으로서 자꾸만 좌절당하고 삭제당하는 현실이 ‘작품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아시아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을 시로 쓰면 “또 인종 얘기”냐며 혹평받고, 자본주의, 세계화, 환경처럼 ‘진짜 중요한 얘기’를 다루면 그건 ‘비백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소재라며 다시금 ‘인종 이야기’를 하라고 권유받는 모순적인 현실이 선명해진 것이다. 의심은 분석으로, 분석은 분노로, 분노는 제자리 찾기로 이어지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첫 결과물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보이지 않는 차별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간단치가 않다. 그는 자신의 평생뿐만 아니라 수백 년의 역사에 묻혀 있던 사건을 파고 들어야 한다.
“왜 이래야만 하지? 내가 속한 사회에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하지?”
나는 왜, 백인이 아니란 말인가
캐시는 이민 1세대가 미국에서 겪는 고통은 인종차별보단 고향을 떠나왔다는 뿌리 뽑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자신을 한국인이라 여기기 때문에 한인 타운을 제2의 고향쯤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2세대는 다르다. 미국에서 나고 영어를 쓰며 자라 교육받고 일하는 미국인이지만, 어느 누구도 미국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1세대는 차별의 이유가 ‘미국인이 아니어서’에 있다고 여겼다면, 2세대는 ‘백인이 아니어서’임을 너무나 뼈저리게 감각한 세대다. 이 책은 말하자면, 영화 「미나리」 속 이민 2세대, 바로 ‘데이비드’의 이야기이다.
나를 만들어온 ‘감정들’ 파헤치기
아시아인이어서, 여성이어서 당한 차별의 감정들을 결산하다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직역하면 사소한 감정이겠지만, ‘마이너리티’의 사회적 맥락과 깊게 체결돼 있으니 ‘소수적 감정’으로 옮길 수 있다. 어쩌면 ‘소수자’로 분리되고 지목된 사람들이 안고 사는 불안과 짜증, 수치심과 우울감은, 음악용어를 빌리자면 단조(minor)의 감정이기도 하다.
캐시는 이 책을 일곱 개 장으로 쪼개고 글을 조각내 썼다. 통으로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구마의 『눈 먼 자들의 도시』처럼 눈을 감아도 백색의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미국 사회에서 캐시가 아시아인 여성으로 살아온 시간은 일관되고 정연하게 서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외면, 삭제, 침묵, 공허한 낙관이 뒤엉킨 인종차별은 한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놀랍도록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는 ‘감정들’로 박혀 든다. 두려움, 슬픔, 수치심, 강박, 무기력, 짜증의 ‘마이너한 감정들’은 개인의 평정을 무너뜨리고 끝없이 좌절하게 한다. 그것이 마침내 외부로 표출되면 적대, 배은망덕, 시샘, 공격성으로 해석되어 급기야 백인들은 “도가 지나치다”며 캐시의 경험과 감정을 폄하한다.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백인은 아시아인이 ‘백인의 다음 차례’라면서, 성실하고 근면하며 권리를 내세우거나 욕심 부리지 않는다며 아시아인을 칭찬해왔다, 이민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물론 아시아인이 기업이나 정치, 문학계 최고 자리에 앉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인은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까? 어떤 정체성을 인정받을까?
“너희들은 여기 있으면 안 돼, 빨리 나와! 이제는 저것들이 사방에 퍼졌구만.” 동네 공용 수영장에서 노는 아시안 아이들에게 한 백인이 다가와 소리치며 한 말이다.
“난 절대 중국인한테는 문 안 잡아줘!” 백인 남성이 쇼핑몰 로비 문에서 황급히 손을 떼며 아이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저것 아니면 중국인이다. 코로나 이후엔 바이러스. 백인은 아시아계 개인을 고유하게 대해야 할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인’은 어떤 의미일까? 아시아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흑인에 대한 혐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캐시는 이 혼란을 인정하고 생각하길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죄책감은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따라서 이기적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내가 속한 사회가 나를 모른 척한다면,
내가 그 사회를 설명해주겠다
캐시는 마지막에 “보편성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고 일갈하며 “차단된 상태”에 처한 “비백인”을 호명한다.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 홍수 또는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이다.
무엇이 ‘아니라는’ 이유로 존재의 삭제 또는 축소를 경험하는 수많은 소수자들이 수없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 앞에 작아지는 여성들, “하필 설 연휴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해가지고”라는 부당한 비난을 당하는 장애 인권 운동가들, “성소수자 축제를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한순간 공공의 장소에서 추방당한 성소수자들. 그들, 아니 우리 안에서 ‘소수적 감정’이 자라고 있다. 얼마만한 크기일까? 어떤 모양일까? 『마이너 필링스』를 ‘이민자 2세대’의 자전적인 글로만 협소하게 본다면, 우리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놓치고 만다. 지금 이 시대의 변화와 퇴행 모두를 관통하는 개념인 정체성과 교차성, 그리고 감정이 개인과 역사, 개인과 정치, 개인과 문학 사이에서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 이 책이 보여준다.
마티의 앳(at)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앳 시리즈는 정체성 탐구의 복판을 관통하는 질문 ‘이 세계에서 내 위치는 어디일까’에 답해가는 작업이자, 개인의 몸과 감정을 통해 지배 구조를 재인식하고 비평하는 ‘자기 이론’(AutoTheory)적 시도입니다.
여성/남성, 피억압자/억압자, 빈자/부자, 장애인/비장애인, 성소수자/이성애자 등의 대립항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몸부림, 교차하는 정체성의 스펙트럼 속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역동,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부분적임을 알고 나와 타인의 위치와 연결될 때 종합적인 성찰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신념을 엮고자 합니다.
권력 바깥에 있는 사람들, 침묵의 자리를 거부하는 사람들, 기득권에서 기꺼이 탈주한 사람들과 책이라는 장소에서 함께하고자 합니다.
1.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노시내 옮김
2. 미셸 렌트 허슈, 『젊고 아픈 여자들: 괜찮아 보이려 애쓰는 생활에 관하여』, 정은주 옮김
3. 로런 포니어, 『자기 이론: 미술, 글쓰기, 비평에서의 페미니스트 실천』
(출간 순서와 제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