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할레드 호세이니 作/ 왕은철 옮김-
금동원
<연을 쫓는 아이>는 2003년 미국에서 발표된 할레드 호세이니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작가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공산국가가 된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가니스탄인이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보냈으며,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의사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많은 체험적 요소들이 포함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랜 군주시대의 엄격하지만 격식 있는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
아름답고 평화롭던 시절의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
열두 살이 될 무렵까지 ‘우리의’ 방식으로 삶이 가능했던 폭탄과 총성소리가 없던 나라,
그 곳에서 태어나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주인공 아미르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슈툰인이자 수니파인 주인공 아미르와 하자라인이며 시아파인 언청이 하인 하산. 아미르의 부친인 사회사업가이자 지역사회의 리더인 바바와 그의 하인 알리. 그들을 둘러싼 미묘하고 예민한 신분관계와 주종을 뛰어넘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하산을 강간으로부터 끝내 지켜주지 못한 아미르의 죄의식. 결국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 하나는 그들 모두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얽히게 만들었다.
상처투성이의 알리와 하산(알리의 아들)은 바바와 아미르(바바의 아들) 곁을 떠나게 되고, 그들의 인연도 거기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1979년 카불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 고향에서의 모든 것을 잊고 싶었던 아미르는 아버지의 친구인 라힘칸을 통해 자신이 모르고 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에서 가졌던 모든 의문의 실타래의 근원은 아버지 세대인 바바와 알리 때 이미 저질러 놓은 운명적인 장난이었음을 알게 된다. 도둑질이 제일 나쁜 것이라고 가르쳤던 아버지(바바)가 알리의 아내를 범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하산은 아미르와 이복형제였던 것이다. 갈등하는 아미르에게 라힘칸은 아프가니스탄에 홀로 남겨진 하산의 아들 소랍을 부탁하며 그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용서를 구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아미르는 소랍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고, 하산을 강간했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아세프는 그의 아들 소랍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입히지만 결국 소랍이 쏜 새총을 맞고 실명하게 된다. 위험하고 끔찍한 사건들의 우여곡절 끝에 아미르는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출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하산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소랍을 위해 연을 쫓는 모습으로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명예를 위해 연을 쫓던 아미르와 하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미르를 위해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라고 했던 하산과 그의 아들이자 조카인 소랍을 위해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라고 말하는 아미르. 인연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질긴 것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끈질긴 인연의 고리를 결국 화해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치유방법으로 극복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공산화된 아프가니스탄과 그 이후에 벌어진 참혹한 인종과 종파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 탈레반의 참혹하고 무차별적 테러행위와 미국 뉴욕의 쌍둥이빌딩 9.11테러사건, 알카에다, 후세인...이런 단편적 지식이 전부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교(무슬림) 문화권의 국가이다. 인종도 다르고 종파도 다른 이 나라의 운명은 아직도 미지수이다.
역사와 종교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형식의 종교적, 인종적 화합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평화로운 옛날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지 지금으로서는 매우 난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할레드 호세이드는 이 작품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내란으로 처참하게 무너져있는 조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라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조용하지만 힘 있는 태도로 알려주고 있다. 그것도 매우 희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작품, 줄거리가 갖고 있는 세밀하면서도 안정된 구조의 힘은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싶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의식의 이중성과 영악한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인종적 차별과 잘못된 우월의식이 빚어낸 폭력성, 천박한 종교적 신념과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만이 가진 듯 비열하고 잔혹한 인권 탄압의 DNA들, 지금 이순간도 계속되고 있는 편견과 명분을 위한 전쟁, 극심한 빈부차와 아동학대와 자살테러등...
우리들 스스로가 진실과 정의를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 특히 작가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는 서문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또한 힘없고 나약한 전 세계의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목소리의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문학의 힘이자,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바바와 아미르 부자(父子)의 처절한 삶은 조국을 등진 이방인의 모습이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외롭고 눈물겨운 약소국의 희생과 닮아있었다. 이제는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도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가난과 굶주림, 폭력과 질병으로부터 고통 받는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이미 많은 관심과 활발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밝고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길 소망하며, 나 역시 연을 쫓던 어린 시절의 ‘아이’로 돌아가 추억 속으로 잠시 스며든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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