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중에도 한국 무대를 소홀히 한적이 없는 정경화의 1973년 연주회 포스터 1974년 서울 시립교향악단(지휘 샤를르 뒤뜨와)과의 차곱스키 협주곡 등
피아니스트 라두루푸와 함께한 덴마크연주회.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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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클래식 음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아마도 거의 최초의 인물인 그녀는,
첼리스트인 언니 정명화, 피아니스트였던 남동생 정명훈과 함께 국제적인 주목을 얻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쿨에 최연소 심사워원으로 참여했다.
콩쿨심사 내내 자신의 리벤트리트 콩쿨때의 가슴 졸이던 감정이 되살아나
다시는 콩쿨심사는 맡지않았다고 한다. 1982년 브뤼셀에서.
1979년 런던 바흐 트리오 소나타녹음실에서
왼쪽으로부터 모레이 웰시, 필립 몰, 정경화, 제임스 골웨이
정경화는 영국의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때부터 결혼하는 1984년까지 한 해 평균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소화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정경화는 1984년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케트 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우리나라 이름이 재곤이와 유진이다.
아래 사진은 남편 리케트와의 결혼후 서명 장면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바이올린 소품집 제목도 남편 리케트씨가 선택했다고 한다.
1988년 10.12. 둘째 아들 유진이의 첫돌...이젠 20대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겠다.
옆 할아버지는 1970년 이후 줄곧 정경화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래이번
1992년 정트리오 연주회 리허설을 마치고.
재곤/유진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리고... 정트리오로 음반을 많이 남기고
국내외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는데...
어머니 이상화 여사를 위한 정트리오의 연주후... 기립박수 사진
"엄마가 50년을 해봤지만 이 세상에 음악처럼 좋은 게 없다.
엄마가 한 때는 연습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랬지만,
이 세상에서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한테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한테 권할 수 있는데...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노력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말을 해주죠.
큰애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유진이는 연습하기가 죽을만큼 싫대요.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대요.
그래서 "어, 그래?" 난 너무너무 행복한 사람이구나(웃음)
하지만 엄마 아무리 사랑해도 그러면 안돼.
엄마는 네가 행복하면 됐지.
엄마 행복하게 해 주려고 그러지 않아도 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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