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명호 사진작가의 팬이다. 만나보면 겸손하고 해맑은 미소, 열려있는 소통의 자세 모두 마음에 들 것이다. 사진과 인생에 대한 통찰과 깊은 사색의 결과로 보여주는 그의 사진 작업의 결과물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사진이라기 보다는 회화에 가까운 " 시공간의 경계를 채집한 사진회화"로 불리는, 더우기 사진을 작품의 결과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함께 하는 행위작업이라는 철학도 좋았다. 비록 남대문의 퍼포먼스는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은 파리의 개선문, 빙하지대와 사막, 어디든지 어느 곳이든지 막론하고 계속 될 것이며 그의 작업현장에 스텝으로 참여해 보고싶다. <나무>와 <사막> 시리즈에 연이어 자연과 대상에 대한 또 다른 시도들도 기대된다. 오랜만에 진짜 예술가를 만난 것 같아 아주 유쾌하고 귀한 시간이였다. 소통이 가능한, 모든 것이 열려있는 작가를 만나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신나는 공감을 이루어냈다. 앞으로도 계속 세계적인 작가로 더욱 도약하는 것을 지켜볼 일이다. (금동원)
이명호 [Tree #14] 2009 종이에 잉크 l (H)1550×(W)1300mm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의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비로소 그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 된다고 하던가.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명호의 [나무] 시리즈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광활한 대지의 수많은 나무 중 한 그루일 뿐이었던 미물 뒤로 거대한 흰 캔버스 천을 대 주는 순간, 그 나무는 뒤의 배경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된다. 더 이상 그 나무는 대자연 속의 일부일 뿐인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다. 수려하고도 섬세하게 뻗어나간 가지들, 아직 파래지지 않은 연한 잎사귀들, 이제 나무는 사진 속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완성보다는 그 과정을
컴퓨터 합성 사진에 이미 익숙해진 요즘의 눈으로는 이명호의 사진도 의혹을 받기 십상이다. 아니, 당연히 합성 기술로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명호의 [나무] 연작은 합성사진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을 들여 진짜 나무 뒤에 실제 거대한 천을 대고 촬영한 것이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의 작업에는 ‘사진-행위’라는 설명이 붙는다. 다시 말하면, 이명호는 자신의 작업을 ‘완성’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이명호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시선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나무를 하나의 주인공으로 만들기까지 그 나무를 배회하고 관찰하던 작가의 시선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마음에 와 닿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나기 위해 여러 장소를 탐색한다. 그렇게 어느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다시 그는 대략 1년 정도를 두고 그 나무를 지켜본다. 과연 그 나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언제인지 알기 위해서다. 그렇게 계절을 파악하면, 그 다음엔 그 계절 중 나무의 하루를 살펴본다. 어느 정도의 햇빛과 바람 속에서 그 나무가 가장 자기답게 보이는지 말이다. 이처럼 나무와의 만남 과정에서 그는 조바심을 내는 법이 없다.
촬영이 시작되면 일종의 ‘소동’이 벌어진다. 거대한 나무 뒤로 그보다 큰 캔버스 천을 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대규모의 스태프의 도움과 거대한 크레인의 힘을 빌려서, 그는 나무가 하얀 배경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그의 [나무] 시리즈는 20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명호 [Tree #2] 2006년 종이에 잉크, (H)1240×(W)1040mm
우리가 주인공이 된 나무가 전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토록 긴 과정 속에서 우러나오는 작가의 관심과 애정을 함께 소통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얄팍한 한 장의 사진에서 진한 감성의 깊이가 묻어나는 이유는 단지 나무 뒤로 펼쳐진 광활한 자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적인 조작으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땀 어린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깊이 때문이다.
‘재현’,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기
이명호가 사진 속에 ‘캔버스’라는 회화의 대표적 재료를 사용한 것은 흥미로운 비평적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미술이라는 장르에 있어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자, 그로 인해 사진과 회화 장르가 대상을 묘사하는 서로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던 바로 그 지점, ‘재현’의 문제를 아이러니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명호의 사진은 회화란 현실을 모사할 뿐 똑같이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한 사진계의 비난과, 사진은 기계의 눈을 빌어 현실을 그대로 담아낼 뿐 어떤 예술적 행위가 개입할 수 없다는 화가들의 비난, 그 양자를 교묘히 대입시킨다.
이명호의 작업은 분명 ‘사진’이다. 현실을 그대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아낸다. 하지만 거대하게 나무 뒤에 세워진 흰 캔버스 천은 이 나무가 사진인지 그림인지 잠시 동안 보는 이의 혼란과 낯설음을 유도한다. 광활한 자연과 한 그루의 나무는 사진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평면화되고, 캔버스 천을 통해 또 한번 평면화된다. 더욱이 이명호가 사진 속에 담은 장면은 현실 그대로일 뿐이지만, 흰 천 하나로 나무와 늘 그것이 놓여 있던 공간의 관계가 완벽하게 뒤틀리고 재설정되는 것이다.
[나무] 시리즈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분명 사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논의들 속에서 사진 속의 나무는 철저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되고 이미지로서 완벽하게 ‘재현’된다는 점이다.
사막에 펼쳐진 아른한 바다
“있는 그대로를 들춰내고자” 했던 이명호의 [나무] 시리즈에는 분명 어떤 마법 같은 감수성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느낌은 “전혀 반대되고 이질적인 현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그의 새로운 작업 [바다]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2009년 이명호는 몽골 고비사막을 찾았다. 그가 나무를 촬영하던 한강 둔치, 학교 교정, 골프장 등보다 작업 장소의 스케일이 변화한 만큼,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는 그의 ‘사진-행위’는 한층 퍼포먼스적인 성격이 강화된 느낌이다. 이명호는 우선 그 지역 고등학교 학생 수 백 명을 섭외했다. 버스를 빌려서 학생들을 사막으로 데려간 다음, 미리 사전답사를 통해 봐 둔 적절한 장소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약 3킬로미터 길이의 거대한 흰 캔버스를 죽 펼쳐 들자, 작가는 다시 이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작가는 멀고 먼 사막 지평선 끝에 3킬로미터에 육박하는 대형 캔버스 천이 아련하게 나타나는 장면을 카메라로 담았다.
이명호 [작업 전경 ; Sea #2_2] 2010년 종이에 잉크, (H)1120×(W)2440mm
이 시리즈의 제목은 [바다]다. 사막 속의 캔버스 천은 마치 지친 여행자의 눈에 나타난 신기루처럼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오아시스, 혹은 바다처럼 보인다. 몽골어로 ‘고비’라는 단어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고 한다. 그 거칠고 메마른 땅에 은은한 바다를 펼쳐 놓은 그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과 비현실을 교묘히 넘나드는 마법 같은 환상이 이미지로 고착화된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행위의 흔적을 그대로 담기
[바다] 시리즈는 몽골의 고비사막을 시작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아라비아 사막, 몽골 알타이 초원, 러시아 툰드라 초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중 몇몇 작업은 사진의 색감이 실제보다 굉장히 회화적이다. 사막의 모래가 한층 노랗게 보인다. [나무] 시리즈에 이어, 그의 사진이 ‘그림’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색감의 원인은 바로 사진 촬영에 사용한 필름에 있다고 한다. 이명호는 모든 작업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사막의 고온 때문에 필름이 살짝 녹아서 결과물의 색감이 뒤틀리게 된 것이 도리어 이러한 효과를 낸 것이다. 물론 요즘 기술로는 얼마든지 원상태로 색감을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필름이 뒤틀린 이유는 그가 사막에 있었다는 여정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는 그 행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뒀다.
2010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이명호는 사막 현장 퍼포먼스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캔버스 천을 잘라 설치했다. 작업 과정 속에서 그 천에 자연스레 스며든 사막의 바람과 소리를 관람객이 함께 듣기를, 또한 천의 냄새를 맡고 손의 감촉으로 만질 수 있는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전시를 바란 것이다.
예술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이명호는 최근 [Near Landscape]라는 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들판과 사막, 초원을 누비던 그의 렌즈가 이번엔 가까운 ‘근처’의 소소한 ‘풍경’에서 잠시 멈춘 것 같다. 물을 뿌린 캔버스를 약 1년 간 그대로 놔두면 캔버스에 얼룩이 생기고 곰팡이가 피면서 자연스러운 색감이 생긴다. 그는 그 위에 일회용 컵이나 담뱃갑 같은 소품을 올려놓고 촬영했다. 대략 캔버스 1호 크기로 자그마하게 제작되는 이 작업은 한층 더 그림 같아졌고, 심지어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명호는 늘 스스로에게 “예술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단다. 그의 그런 생각을 그대로 담아내듯, 그는 작업을 통해 결국 예술의 역할과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사색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 시리즈는 재현이라는 예술의 본질을, 그리고 [바다] 시리즈는 새로운 현실을 재창조하는 예술의 역할을 한 편의 ‘이미지 시(詩)’로 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현실과 비현실을 교묘히 중첩시키는 동시에 회화와의 경계선을 조금씩 침범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층위들 때문일까. 그의 사진은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끌어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사진을 그토록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정지된 한 장의 이미지를 말이다.
○작가 소개
이명호
중앙대 사진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2007년 갤러리팩토리를 시작으로 갤러리잔다리(2008), 성곡미술관(201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9년에는 뉴욕의 유명 사진전문갤러리인 요시밀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LA 폴게티미술관과 일본 키요사토 사진미술관, 프랑스 에르메스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 및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됐다. 2006년 사진비평상, 2009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장승연 / <아트인컬처> 기자
서양화를 전공한 후 서양근현대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처> 기자로 재직 중이다. 여러 매체에 현대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며, 계원디자인예술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