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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산책

신화와 과학의 격돌

금동원(琴東媛) 2015. 2. 26. 22:22

신화와 과학의 격돌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얼핏 보면 반대말처럼 보이지만, 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과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의 “대담” 프로젝트는 그 둘이 만나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005년 “대담”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시도한 두 석학이, 10년이 지나서 다시 대담을 펼칩니다. 이를 앞두고 “대담”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일부를 다시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융합하는 두 석학의 ‘대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도정일 교수와 국립생태원 원장 최재천 교수. 두 석학은 “대담”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시도했다.

 

인간 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사회자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관점도 문화론이나 종교 등에서 생각하는 것과 과학이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생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생명이 있었고, 인간은 생명의 긴 줄기에 어느 한순간 불쑥 튀어나온 콩나물 같은 것이죠. 한 콩나물은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른 콩나물은 저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요. 인문학적으로는 상상력의 근원인 신화에서부터 인간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신화는 인간의 기원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합니까? 여러 가지 신화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기독교의 창조론과 그리스 신화가 가장 영향력이 크겠죠?

도정일  인간 기원에 대한 신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인간이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생적으로 나왔다’고 말하는 신화입니다. 제조론과 자생론인 셈이죠. 수메르 신화를 비롯해서 히브리-기독교의 창조신화 등은 제조론에 속하고,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이아 이야기 전통은 대표적으로 자생론 쪽입니다. 제조론 계열의 신화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창조론인데, 이 전통에서 인간은 신이 창조한 존재, 곧 피조물입니다.

아담(Adam)은 흙을 의미하는 ‘아다마(adama)’에서 온 이름이죠. 사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들듯 신은 창조의 마지막 날 아침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 오면 인간 출현 이야기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북방 남성신 중심의 제우스 신화인데, 이 전통에서는 제우스ㆍ프로메테우스ㆍ에피메테우스 같은 신들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이보다 오래된 남방 농경사회의 지모신(地母神) 가이아 중심의 이야기들은 인간이 ‘땅에서 솟아올랐다’고 말합니다. 무ㆍ배추가 땅에서 솟아오르듯 인간도 그렇게 땅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리스 신화에서는 비너스(아프로디테)가 바다거품 속에서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조물주의 접촉으로 아담이 생명을 얻었다고 표현한 그림이다.

 

최재천  저는 생물이란 절대로 만들어진(제조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과학자입니다. 절대적으로 자연발생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사실은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론도 있고, 누군가는 실험도 해봤고요. 저는 학교에서 일반생물학 강의를 하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장은 빼버립니다. 학생들한테 솔직하게 말하죠. “나는 이것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이론 중에 그 어느 것에도 완벽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여러분이 혼자 읽고 나름대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러면서 그냥 넘어갑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은 어떤 화학물질들이 우연히 생명의 늪에서 돌아다니다가 방전 에너지를 받았고, 어찌하다가 DNA라는 자기 복제를 할 줄 아는 묘한 화학물질이 생겼다는 것이죠. 화학자들에 의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상당히 정교한 모델이 제시되어 있지만 저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습니다. 우주물리학이나 화학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우리는 우주의 나이는 물론, 그동안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상당히 정확하게 알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식한’ 진화생물학자는 아직도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코 설계된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입니다.

도정일  창조주의 다른 이름은 ‘설계자’입니다. 창조론적 신화들은 세계와 인간을 설계하고 만들어낸 ‘외부 지성’을 상정합니다. 인간이 제 손으로 자기를 만들고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니다, 인간을 만든 존재는 세계 바깥에 따로 있다는 생각이 창조신화의 상상력이고 사유방식이죠. 요즘은 ‘창조론(creationism)’이라는 구식 명칭 대신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세계는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 설계가 우연의 산물일 수 없다는 것이 지적 설계론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생물학자, 특히 진화론자라면 이런 설계이론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겠죠. 리처드 도킨스를 보세요. “나는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 모든 지성, 모든 창조성, 모든 설계가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의 직접적 산물이거나 간접적 산물이라 생각한다. 설계는 진화를 선행하지 않는다. 우주의 근원에 처음부터 설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설계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진화가 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순서라는 거죠.

현대 생물학의 세계관을 가장 명료하게 요약해준 것이 자크 모노의 1970년대 책 《우연과 필연》인데, 거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생물세계(biosphere)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기원은 우연이다. 순수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맹목적인 그 우연만이 진화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뿌리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여러 가능한 가설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대 생물학의 중심 개념이다. 오늘날 우연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며, 그동안의 관찰과 실험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들과 일치하는 유일한 개념이다.”

 

 

리처드 도킨스                                                                                자크 모노

 

나는 도킨스나 자크 모노의 이런 소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적어도 그건 ‘확신범’들의 발언이니까요. 그러나 생물학자들이 신화와 과학적 서술을 혼동할 때는 박수를 칠 수가 없어요. 수메르 신화를 보면 신들은 노동하기 싫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듭니다. 신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농사짓고 고기도 잡으러 다니느라 허리가 아파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자를 만들자고 하게 된 거거든요. 말하자면 신들을 위한 ‘노예’로 만들어진 것이 수메르 신화의 ‘인간’입니다. 이건 인간 기원에 대한 과학적 진술일 수 없어요. 그러나 다른 층위에서 보면 당시 사회의 인간관과 권력 관계, 세계관을 말해주는 아주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한편, 신화는 과학이 아니고 사실의 진술이 아닌데, 유대-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신화’라는 말을 히브리-기독교에 갖다 대면 지금도 펄쩍 뜁니다. 아주 최근에도 내 신화론 강의를 수강하던 한 학생이 “유대 역사를 신화로 취급하는 것은 기독교도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수강을 중도에 포기했어요. 이런 사태를 만나면 도킨스 같은 사람이 종교를 야무지게 비판하는 것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최재천  그러니, 당시 상황에서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인간의 기원이 누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인간 이전의 어떤 종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분화되어 나왔다는 이야기, 정말 꺼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도정일  다윈은 기독교 신화가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완전히 박아 놓고 있는 시점에서 진화론을 이야기하려 했으니 몰매 맞아 죽지 않은 게 다행이죠. (하하하) 그 양반이 《종의 기원》을 써 놓고 15년 동안 원고를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했죠? 이해가 갑니다. 영국 사회니까 그나마 출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줄리언 헉슬리 같은 용감한 지식인들의 옹호가 없었다면 다윈도 한참 더 고생했을 겁니다. 어디선가 읽은 얘긴데, 다윈의 부인도 남편의 진화론에는 전면 설복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여보, 인간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를 보면 난 당신 주장을 다 받아들일 수 없어요.” 뭐 이 비슷한 말을 그 부인이 했다더군요. 다윈은 안팎의 소리에 번민하면서 귀를 기울인 사람 같아요. 배울 만한 점입니다. ◀다윈

최재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상당한 논란이 일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검증하려는 실험적 노력도 시작되었고, 또 대단한 일은 영국 종교계가 다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거죠. 다윈 선생님은 아무 문제없이 웨스트민스터에 묻히셨잖아요. 당시 영국의 종교계는 다윈의 이론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개념, 즉 진화의 정점에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서 있을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이론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다윈이 진보의 개념에 관해서는 약간 현실적인 타협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신화의 상상력, 과학과 만날 수 있을까

도정일  동남아시아에는 “말똥가리가 세계를 만들었다”는 신화가 있고, 북미 원주민 신화에는 “인간은 콩깍지에서 나왔는데 왜 나왔는지는 나도 모른다”는 식의 아주 절묘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에스키모 신화에서는 태초에 온 천지가 깜깜했는데 까마귀란 놈이 검은 하늘을 쪼아 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탁월한 시적 상상력이죠.

가령 기독교 서사가 서양을 지배하게 된 것도 그래요. 그 이야기 틀 안에는 인간을 유한성, 어둠, 타락으로부터 이끌어내어 구원의 희망을 갖게 하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모순과 수난, 고통과 해방, 성찰과 희망 같은 걸 풀어내는 이야기 모델로는 히브리-기독교 서사가 엄청 강력한 플롯이죠.

유한자로 태어난 인간이 어째서 불멸성에 대한 그리움을 갖는가도 인간이 가진 모순의 하나입니다. 이 문제는 종교학적 주제이고 인문학적 질문이지만, 생명과학의 대중적 인기에 관계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 선생님, 이것이 생물학의 화두일 수도 있을까요?

최재천  굉장히 재미있는 문제인데요. 저는 학기마다 첫 시간에 들어가서 다짜고짜로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제 나름대로 첫 수업을 좀 충격적으로 시작할 요량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러면 학생들 표정이 ‘어?’ 하며 좀 얼떨떨해해요. 모두들 생물학은 생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사실 생물학은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게 결국 생명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제일 보편적인 특성은 한계성(ephemerality)입니다.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죽음을 연구한다는 게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생명체가 하나 만들어진 후에 죽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유전자가 하나의 생명체를 꽃피웠는데, 사람 같으면 100조 개의 세포를 만들어서 잘 사는데,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사실 이것을 끝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잘 하고 있는데, 기왕에 만들어 놓았는데, 그 생명체로 하여금 계속 유전자를 복제하게 하면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 왜 유전자는 조금 쓰다가 치워버리고 또 다른 것을 만들고, 또 다른 것을 만들고 해야만 하느냐는 겁니다. 만들어 놓은 것을 없애면 자원도 낭비하고, 또 여러 가지 손해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건 어떻게 보면 유전자의 선택 문제입니다. 유전자는 하나 만들어서 그것을 오래 쓰는 것보다는 자주 바꾸는 작전을 택한 것뿐이죠. 유전자가 죽음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거죠.

현재 생물학 분야에서는 세포의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이 가장 중요한 학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걸 ‘아포토시스(apoptosis)’라고 하는데, 미국 친구들은 ‘에이팝타시스’라고 부르는 이 현상에 대해 아주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연구해 놓으면 노화도 해결할 거고, 암도 해결할 거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거든요. 세포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면 어떤 세포는 안 죽일 수도 있고 어떤 세포는 일부러 골라 죽일 수도 있죠.

세포가 하나 만들어졌다가 왜 꼭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을 설명하는 일보다 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노폐물이 쌓이니까 죽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노폐물이 왜 쌓여야 되냔 말이죠. 노폐물이 쌓이면 바깥으로 내보내는 메커니즘을 이미 갖고 있는데. 철학과 마찬가지로 생물학도 본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포토시스', '예정세포사'라 불리는 세포 자살.

 

도정일  생명체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주요 신화들의 근본적 화두이기도 합니다. 히브리 신화는 창조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이야기 밑바닥에는 인간이 왜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죠. 죽을 존재라면 애당초 만들긴 왜 만들어? 게다가 까다로운 논리적 질문들도 숨어 있습니다. 신은 완전자인데 그 완전자가 어떻게 불완전 존재를 만들 수 있는가? 완전자가 불완전자를 만든다면 그는 완전자가 아니지 않은가? 설계 착오인가? 완전자가 어떻게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가?

인간이 죽는 것은 유전자란 놈이 애초부터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게 생물학의 설명이라면 ‘인간이 잘못해서’라는 게 히브리 신화의 ‘이야기’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이고 죗값이라는 거죠. 신화는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명한다면 그건 과학이거나 철학 에세이지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최재천  진화생물학자 중에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인 존 홀데인(J. B. S. Haldane)이 대학 앞 술집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했나봐요. 누군가가 질문을 했어요. “당신은 생화학자이고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도 연구하는데, 그럼 조물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홀데인은 아주 기지 넘치는 원 라이너(one-liner), 즉 기지가 번득이는 간결한 경구를 잘 던지는 사람으로 유명하거든요. 그 말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홀데인이 귀찮다는 듯이 한마디로 “그 양반, 딱정벌레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괴벽이 있었던 모양이야”라고 대답했다는군요. 지구에서 제일 많은 존재가 곤충이고, 곤충의 거의 3분의 1이 딱정벌레거든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뭔가를 만드시는데, 딱정벌레를 한번 만들어보고는 재미가 나신 거예요. “하! 요것 봐라” 하시며 조금 달리 만들어보고, 또 조금 달리 만들어보다가 세월을 다 보내신 거죠. 딱정벌레만 너무 많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조물주께서는 이상하게 딱정벌레를 좋아하는 괴벽을 가졌다는 겁니다. 

 

 

존 홀데인(J.B.S.Haldane. 1892~1964).영국의 생물학자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하느님은 실험을 한 겁니다. 이것은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것은 저렇게도 만들어보고. 그런 가운데 인간도 만들었는데, 인간이 완전히 짝사랑하고 있는 것이죠. 딱정벌레를 만들 때 우리 인간도 같이 만들어진 건데. 딱정벌레도 지금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쳐다보며 우리는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으니 “당신이 우리만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이거 완전히 짝사랑 아닙니까? 하느님이 우리 인간은 그저 한 번 만들고 끝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진정 사랑하신 동물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딱정벌레일 수밖에 없죠. 그렇게 여러 번 만드셨는데.

도정일  짝사랑이라! 지상에 인간만큼 자기중심적인 동물이 없죠. 사랑의 신이 있다면 그는 만물을 똑같이 평등하게 사랑하는 존재겠죠. 유독 인간만 특별히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휴머니즘’이라고 불러 온 것의 밑바닥에는 인간중심주의가 있습니다. 일종의 짝사랑이죠. 과대망상이기도 하고.

 

 

관련 도서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자 문학평론가.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 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의 기적의 도서관 건립,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등 책읽기 운동에도 힘쓰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대담> 등이 있다.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철학의 숲> 철학적 사건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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