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안무의 혁명가
피나 바우슈
Pina Bausch
1940-2009
검정색의 긴 소매 옷을 입고 검은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피나 바우슈. 독특한 작품세계로 전 세계를 춤 하나로 사로잡았다.
검은 긴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고, 늘상 입는 검정색 긴 소매 옷으로 몸을 감싼 비쩍 마른 이 여성 안무가는 언제 어디서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다. 자신의 무용수들에게 안무 지도를 할 때도, 작품이 끝난 후 그날 공연에 대한 리뷰를 할 때도, 작품을 협의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저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흔들림 없이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이 안무가는 춤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단지 그녀의 작품이 춤으로 구분된다고 해서 무용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악, 연극, 오페라, 영화를 아우르며 그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녀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녀를 만나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 피나 바우슈. 안무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무용계의 판도를 바꾸었던 이 안무가는 평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떠들어대는 것을 싫어했던 성격 그대로 암 선고를 받은 지 불과 5일 만인 2009년 6월 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세계 공연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독일 출신의 무용수, 탄츠테아터로 유럽 무용계를 장악하다
피나 바우슈는 1940년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졸링겐(Solingen)에서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바쁜 일상 탓에 홀로 식당 한구석에서 춤을 추거나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던 어린 피나는 식당에서 항상 들리던 음악과 그곳에서 즐거움과 행복, 때로는 슬픔과 분노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감성을 키울 수 있었고, 이 모든 것은 훗날 그녀의 작품에 영감으로 작용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페 뮐러(Café Müller)>에서 표현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부재, 기다림과 외로움도 어린 시절 피나가 식당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들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피나는 에센의 폴크방 스쿨(Folkwang School)에서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쿠르트 요스(Kurt Jooss)로부터 무용을 배웠다. 요스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의 제자로서, 기존의 고전 발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아름답고 정형화된 동작에서 벗어나 무용에 있어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허락한 사람이다. 그리고 요스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던 피나 바우슈는 스승이 싹 틔웠던 탄츠테아터를 독일 무용을 넘어 유럽 무용계 전반에 걸쳐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조로서 단단히 뿌리내리게 했다.
요스가 이끄는 폴크방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비로 미국 줄리어드 스쿨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피나는 학창시절부터 무용수로서 비범함을 드러냈다. 2년 반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그녀는 처음에는 폴크방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다 1968년, 헝가리 작곡가 벨라 버르토크의 곡을 바탕으로 안무한 <단편(Fragment)>을 통해 안무가로 데뷔한 뒤 이듬해 <시간의 바람 속으로(Im Wind der Zeit)>로 쾰른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며 안무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1973년 부퍼탈 시립공연장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취임함과 동시에 무용단의 이름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개명하면서 세계 무용계를 뒤흔들 커다란 변화를 예고했다.
피나 바우슈의 안무 <보름달>.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피나 바우슈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예술감독이 된 후 기존의 무용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관습과 통념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그녀는 음악ㆍ연극ㆍ미술ㆍ무용ㆍ영상을 모두 혼합해 탈장르적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일상의 문제와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정서로 다루었던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계승자답게 피나는 언제나 움직임의 주제를 인간에 맞추었고, 무엇이 인간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에 주목했다. 이러한 피나 바우슈의 예술관은 그녀가 자주 언급했던 다음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나는 무용수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보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러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피나 바우슈의 작품이 처음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피나 바우슈는 작품 안에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 인간의 폭력성과 정치적 모순 등 사회 비판적 이슈를 담아냈고, 이러한 것들은 공포와 불안, 고통과 행복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으로 표출되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은 한계를 모르는 움직임과 무용수들이 뱉는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었고, 이는 아름답고 정형화된 춤에 익숙해 있던 보수적인 부퍼탈의 관객들을 당황시켰다. 화가 난 관객들은 공연 중간에 객석을 박차고 나가거나 야유와 비난을 퍼붓기도 했고, 평론가들은 ‘자기도취적 안무가’라고 피나를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무용 개념을 깨는 혁신적인 표현법과 주제의식은 페터 차덱(Peter Zadek), 수전 손택(Susan Sontag),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피터 브룩(Peter Brook) 등 당대의 유명한 연출가 및 예술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그녀는 점차 피나 바우슈 스타일을 세계무대에 전염시키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2004년 일본 사이타마 극장과 공동제작한 <천지(Tenchi)>의 한 장면. 거대한 고래 꼬리를 활용한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Peter Pabst)의 심플하지만 아름답고 상징적인 무대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부퍼탈 시립공연장의 예술감독이 되어 1973년부터 <프리츠(Fritz)>와 댄스 오페라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Iphigenie auf Tauris)> 두 작품을 시작으로 2009년 칠레를 소재로 한 마지막 작품을 공연할 때까지 피나는 자신의 무용단을 위해 총 마흔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이끄는 무용단은 1977년 첫 해외공연을 시작해 에든버러 페스티벌, 파리와 아비뇽 페스티벌을 거치면서 피나 바우슈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1984년 LA올림픽 아트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공연하며 전 세계에 피나의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투어를 하는 단체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피나의 작품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표현법과 주제적인 면에서 혁신성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연된 지 3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바로 엊그제 창작된 것만큼이나 새롭고 현대적이며 시의성이 느껴진다. 그것은 연극과 무용을 넘나드는 독특하고 극적인 스타일과 인간의 실존에 관한 심오한 주제,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 방법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들이 피나 바우슈의 대표작이 되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여전히 공연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피나 바우슈의 안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자연을 옮겨오고, 인생을 담아내는 무대
언제나 ‘인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소통’을 작품의 중심 테마로 삼는 피나 바우슈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작품 안에서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내재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피나의 작품에는 지속적인 플롯이나 특정한 캐릭터, 일관된 의미가 없고 어떤 상황이나 소품을 중심으로 간단한 대화와 행동의 에피소드,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가 변화무쌍하게 조합되어 보는 사람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한다. 그렇기에 피나 바우슈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도의 준비가 필요치 않고 행여 피나에게 작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느끼는 것 그대로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또한 피나 바우슈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공연을 하면서 작품 안에서의 대화를 그날 공연하는 국가의 언어로 말하게 하는데, 이것은 심오한 주제를 쉽고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피나가 전달하고자 하는 대사가 작품 안에서의 대화를 넘어 관객에게 던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한다.
[왼쪽] 한국을 소재로 한 2005년 작 <러프 컷(Rough Cut)>에서는 공연 내내 무대 뒤의 거대한 암벽 위에 등산객이 올라가 있었다. [오른쪽] 1998년 작 <마주르카 포고>의 한 장면. 기존의 무대 형식을 거부하는 피나의 작품은 현대인들 간의 접촉에의 갈망과 그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기존의 형식을 거부하는 피나 바우슈 작품에 있어 무대 미술은 피나의 예술세계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봄의 제전(Le sacré du printemps)>, <카페 뮐러 Café Müller)>, <아리앙(Arien)> 등 초기 피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었던 무대 디자이너이자 그녀의 연인 롤프 보르칙(Rolf Borzik)이 1980년 1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이후부터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Peter Pabst)가 20년 넘게 그녀의 옆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흙과 물, 잔디와 꽃, 살아 있는 동물 등 관객의 상상을 뛰어 넘는 소재를 이용한 획기적인 무대는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무대에는 발목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차거나, 붉은 꽃잎이 산처럼 쌓이고,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무대를 덮고, 모래사장 위에는 난파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을 소재로 한 2005년 작 <러프 컷(Rough Cut)>에서는 무대 뒤를 가득 덮은 거대한 흰 암벽 위를 4명의 등산객이 공연 내내 올라가 있었다. 무대 위에는 사나운 독일 셰퍼드가 짖어대고, 양이 고요히 배회하며, 살아 있는 닭이 수박을 쪼아 먹고, 무용수들은 뒹굴고, 첨벙대며, 나무에 오르거나, 바위 위를 기어 다닌다. 자연에서 가져온 배경과 소품들은 독특한 색과 향기 그리고 촉감으로 무뎌진 감각을 자극하며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접촉의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접촉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들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피나 바우슈의 안무 <콘택트 호프>.
‘질문하기’ - 피나 바우슈만의 독특한 작품 창작법
이러한 다양한 인간 감정과 실존의 표현은 피나 바우슈 무용단만의 몇몇 독특한 특징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선 피나 바우슈의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전 세계 어떠한 무용단보다 더욱 다양한 구성원들을 자랑한다. 20여 명의 무용수들의 출신국이 무려 16개국이나 된다니 그 얼마나 다양한 배경과 생각들이 작품에 녹아 나겠는가. 더군다나 갓 스무 살이 넘은 어린 무용수부터 환갑을 바라보는 무용수가 한 무대에서 춤을 춘다. 초창기부터 피나의 무용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피나 바우슈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도미니크 메르시(Dominique Mercy)의 딸도 아버지와 함께 같은 무대에 서고 있다. 피나는 이토록 다양하고 강렬한 개성을 가진 무용수들을 십분 활용하여 그녀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피나는 완결된 개념을 가지고 안무를 짜는 대신 수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를 단원들에게 던짐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끌어내고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 ‘클래스’라 불리는 매일 매일의 리허설 시간 동안 피나로부터 수십 개의 질문을 받은 무용수들은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안무자 앞에서 표현하고, 그것은 곧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렇기에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무용수들은 예민한 감성과 관찰력 그리고 저마다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며, 이러한 각고의 노력과 열정은 시대를 넘어 피나 바우슈의 무용단이 정상의 위치를 지키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의 도시와 국가를 무대로 한 창작 시리즈
피나 바우슈의 작품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세계의 주요 도시, 공연장, 페스티벌 등에서 공동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 있어 모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 되었다. 피나 바우슈는 1986년 이탈리아 로마로부터 작품을 위촉 받아 <빅토르(Viktor)>를 만든 것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 2주 이상 장기 체류하면서 그곳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소위 ‘도시/국가 시리즈’로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은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미국 LA, 홍콩, 일본, 포르투갈, 헝가리 부다페스트, 터키 이스탄불, 인도, 칠레 등을 소재로 한 15개 작품에 이른다.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는데, 서울의 LG아트센터와 주한 독일문화원이 공동으로 위촉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와 한국인들의 독특한 생활법, 그리고 빠르게 변해 가는 한국의 모습을 담은 2005년 작 <러프 컷(Rough Cut)>이 그것이다.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 창작을 위해 전남 곡성을 방문했을 때 상모를 들고 있는 피나 바우슈. 그녀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내리 5번을 내한했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다. 사진 제공: LG 아트센터1년에 반 이상을 공연 때문에 해외에서 사는 단체지만 그렇다고 모든 나라에서 언제든 피나 바우슈를 초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공연장이나 페스티벌에서 초청 의사를 밝힐 경우 우선 피나가 그곳의 디렉터나 담당자의 ‘면접’을 보고 나서 마음이 동해야만 기꺼이 공연을 하러 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피나 바우슈의 결정 방법은 무용수나 스태프를 뽑을 때도 적용되는데, 오랜 시간 피나의 어시스턴트로 일했고 현재는 단체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로베르트 슈투름(Robert Sturm)은 “피나에게 있어 사람 사이의 ‘궁합(chemistry)’은 그 사람의 이력서나 경력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나 뉴욕, 로마처럼 피나가 유독 자주 공연을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수많은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공연을 하지 않았거나 한 번 공연 이후 한참 동안 가지 않고 있는 나라도 있다. 피나는 1979년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첫 한국 공연을 한 지 21년 만인 2000년 LG아트센터의 초청으로 <카네이션(Nelken)>을 공연하면서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데, 이후 2005년까지 5번이나 내리 공연을 하러 온 것을 봐서는 얼마나 한국과 한국의 친구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커피와 담배, 와인으로 기억되는 그녀
피나 바우슈를 떠올릴 때마다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커피와 담배 그리고 와인이다. 담배를 한 손에 든 채 작품 구상 중엔 커피를,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와인을 들고 지인들과의 대화를 즐겼던 그녀는 세계 어느 공연장에 가든 공연장 안에서 유일하게 담배 피우는 것을 허락받았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행 중 전면적인 금연이 시행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세계를 투어하면서 흡연이 허락된 비행기를 이용하느라 일부러 몇 시간씩 스톱하거나 돌아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그녀의 지독한 애연 습관이 피나를 우리에게서 일찍 빼앗아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 5일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어떤 암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피나의 자서전을 쓴 바 있는 평론가 요헨 슈미트(Jochen Schmidt)는 피나의 작품 <왈츠(Walzer)>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빗대어 피나를 표현한다. “와인 조금만 더. 그리고 담배 한 개비만. 하지만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피나 바우슈는 세계 어느 공연장에 가든 공연장 안에서 유일하게 담배 피우는 것을 허락받았던 아티스트였다. 그녀는 2009년 암 선고를 받은 지 불과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리허설 룸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 커피와 담배를 벗삼아 작품 구상에만 몰두했던 피나는 짧다면 짧은 생애 동안 그 어떤 예술가도 침범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세계 공연예술계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무용과 연극이라는 장르의 벽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인간관계를 탐구했던 피나 바우슈. 비록 그녀는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위대한 작품들은 남아 세계의 관객들을 오래도록 만날 것이다.
탄츠테아터 탄츠테아터(Tanztheater)는 영어로 ‘Dance Theatre’,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것으로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된 양식이다. 헝가리 출신의 안무가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에 의해 처음 그 개념이 사용되었고, 그의 제자였던 독일의 쿠르트 요스(Kurt Jooss)에 의해 발전되다 피나 바우슈(Pina Bausch)를 통해 확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고전발레 문법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법과 연극ㆍ무용ㆍ무대미술ㆍ의상ㆍ소품 등의 융합이 특징이고, 주제적인 면에서는 일정한 플롯이나 스토리가 있기 보다는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과 인간 내면의 감정, 사회적 이슈 등을 다루면서 현대 무용의 중요한 사조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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