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우리는 마땅한 근거에 따라 마음을 결정할까, 아니면 결정을 내린 다음 마땅한 이유를 찾을까.
세상의 모든 결정에는 저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훌륭한 스토리텔러이다. 다만 그 결정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지나고 나서 알 수밖에 없다. 만약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믿었던 결정이 누군가의 기만에 빠져 혹은 자기기만에 걸려 오히려 올무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72)는 인간의 생활 속에는 기만과 자기기만의 덫이 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기만은 사회와 국가 단위에서도 수시로 작동되기에 전쟁처럼 수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재난에서 속수무책으로 그 화를 키우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타인을 배척하는 데 작동되거나 골 깊은 진영논리를 낳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갈등구조와 협동성, 권위와 자기기만 행동유형의 연구성과로 기초과학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크래포드상을 수상한 로버트 트리버스 럿거스대학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 4월 말 뉴저지 대학 인근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이뤄졌다. 자메이카에 집을 짓고 사는 그이기에 미국에서의 주거는 작업실 같은 분위기였다. 분홍 벚꽃이 활짝 핀 온화한 봄날이었지만, 트리버스는 한국인인 나를 보자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왜곡을 비판하며 열을 올렸다. 일본이 국가적으로 세상을 기만한다며 역사를 유리한 쪽으로 선택해 서술하려는 그들의 자기기만에 빠진 비루함을 거침없이 질타했다.
세계적 석학인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우리 인간은 자기기만, 세상을 향한 기만에 빠져 전쟁 등 많은 폐해를 낳았다”며 “저는 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모든 일을 잠시 멈추고 명상을 한다”고 밝혔다. 코키 리 포토저널리스트
▲ 동물들이 상대 앞에서 털 곤두세우듯 자기기만은 인간의 본능
불평등 클수록 스스로 과대평가… 인종차별 등 배타성 나타나
▲ 위계질서·권위의식에 젖어 “난 유능하고 공정해” 착각
케네디가 확전 ‘베트남전’처럼 조직 위기에 빠뜨릴 확률 높아
로버트 트리버스(이하 트리버스) =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성노예로 소녀들을 착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위안부라고 부릅니다. ‘comfort woman(위안부)’. 누가 누구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했다는 겁니까. 총검을 들이대고 납치했습니다. 여성들은 수치심에 고통받고 침묵하며 일부는 무덤까지 갖고 가죠. 하지만, 한국 여성이 1991년 세상에 나와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어요. 일본은 독립적인 대행사가 한 거니까 자신들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자발적인 매춘과 같은 거라고요. 거짓말입니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군대 문서를 발견했어요. 군에서 전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당신은 이 역사를 저보다 더 잘 알아야 해요.
안희경(이하 안) = 일본이 보여주는 행동이 집단적 규모의 기만과 자기기만이라면, 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개인적 차원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선생께서는 기만과 자기기만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와 함께해 왔는지, 그리고 자기기만이 어떤 식으로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쳐 오는지를 발표해왔습니다. 자기기만, 스스로 제 꾀에 빠지는 건가요.
트리버스 = 자기기만은 내가 나를 속이는 거죠. 말은 헷갈리게 들리지만, 이런 겁니다. 우리 안에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이 있다면, 의식적인 마음이 모르도록 현실을 애써 담아두려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진실된 정보는 무의식적 마음에 저장되고 거짓이 의식적인 마음에 저장되죠. 같은 사건을 접해도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보를 선택해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는 타인을 기만하는 데도 들통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하고요. 이 주제에 대해 책을 쓰기까지 저는 4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 = 자기기만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이를 통해 인류가 번식하고 살아남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건데요.
트리버스 = 이는 인간만이 아닙니다. 바이러스와 세균도 기만을 합니다. 외래침입자로 인식되지 않도록 숙주의 신체 부위를 흉내 내 적극적으로 속이면서 침입하죠.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외피 단백질을 자주 바꾸기에 지속적인 방어를 거의 불가능하게 합니다. 모든 새 가운데 약 1%는 새끼를 다른 종류의 새에게 맡겨 키우도록 해요. 알 모양도 비슷하고, 알을 까고 나온 새끼의 입 색깔도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합니다. 선명하게 닮아야 어미새가 더 먹이를 잘 주는 패턴이 있기에 그렇게 진화된 겁니다. 우리 인간의 경우도 나이가 같은 아이들 중에 영리한 아이일수록 거짓말을 더 자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똑똑할수록 자기기만을 덜할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안 = 뚜렷한 행동 방식이 있습니까.
트리버스 = 동물의 경우 상대가 나타나면 털을 곤두세우고 몸집을 부풀리고 요란한 색깔로 몸을 바꿉니다. 인간 심리도 이와 같아요. 자기 부풀리기를 해요. 거기서부터 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과신요.
안 =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도 표현이 세거나 단정적인 강한 어조의 글에 댓글과 ‘좋아요’가 몰립니다. 그런데, 사람이 내가 남보다 최소한 어떤 부분은 낫다라는 자신감이 없다면 살아갈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트리버스 = 여러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고등학생 중 자신이 적어도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80%였어요. 학자들도 94%가 자기 분야에서 상위 절반에 속한다고 설문에 답했습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거죠. 컴퓨터로 사진을 매력적으로 조작하거나 변형해서 못생겨 보이도록 다양하게 만들어 사람들한테 자기 얼굴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거의 모두가 20% 더 나아 보이는 얼굴을 자신이라고 골랐어요. 30% 더 매력도를 높인 얼굴은 자기가 아닌 것 같다고 하고, 또 10%만 나아 보이게 한 모습은 왠지 좀 부족하다고 여겼죠. 지금 우리의 대화를 읽는 분들도 쉽게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평균보다 나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안 = 자부심이 오만함으로 나아가 남을 무시하면 곤란하겠지만 나 말고도 다들 자부심을 갖고 사는구나, 존중하는 마음의 지도로 삼으면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트리버스 = 그런데, 또 현실은 고약합니다. 이 자기 부풀리기 정도가 소득불평등과 영향을 주고받거든요. 스스로에 대해 과하게 평가하는 경향은 소득불평등 기울기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소득불평등 기울기가 낮은 독일은 과대평가 경향도 낮아요. 반면에 미국은 소득 편차가 큰 만큼 스스로에 대한 과대 평가 비율도 높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등은 더하고요. 더 많은 불평등이 있다면 타인에 대한 당신의 시선, 타인을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는 거죠. 자신의 지위를 상대와 견주어 경쟁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안 = 소득불평등은 건강불평등과 함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사회역학 분야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소득불평등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그 사회 구성원이 부자까지 전체적으로 건강도가 떨어진다고 하고요. 비교되어 드러나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폭력 유발, 집단 왕따 등의 문제도 함께 커졌습니다. 인종차별, 이민족 차별도 여기에 속할 거고요. 이러한 문제의 공통점은 그만큼 사회통합이 약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트리버스 = 자기 부풀리기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은 남을 폄하하는 겁니다. 자기 과장의 다른 면이에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약간씩 폄하할 수 있어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들보다 나는 더 낫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게 되죠. 나와 경쟁하는 이를 폄하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우월해지고요. 남을 폄하하는 일을 보다 집단적인 규모로 확대하면 인종적·민족적·계급적 편견으로 나타납니다. 전쟁 같은 도발이 일어나도록 확산될 때는 특히 위험하죠. 사회활동을 하는 인간에게는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편가르기 하는 일이 쉽게 이뤄집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데,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나타나요. 수컷 원숭이에게 과일 사진과 거미 사진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분리하도록 했을 때, 친숙도에 따라 자기 편이라 여기면 과일 사진, 아니면 거미 사진으로 구분했습니다. 인간들 역시 무리로 살아가는 동물이에요. 적어도 6000만년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무리끼리 경쟁을 했고, 전쟁의 역사만도 500만년은 되죠. 본능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안 = 지역, 성별, 세대, 진영 갈등까지 바탕에 사회적 불평등의 영향도 있고 인간 본능의 성향도 깔려 있다면, 이성을 동원해서 보다 깊이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협력을 위해 본성을 다스리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온 것처럼요.
트리버스 =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은 강요된 자기기만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조정되고 있는 부분이죠. 참 중요합니다. 이를 알아차려야 하는데, 쉽지 않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점화’효과라고 부르는데요. 어떤 단어나 구절로도 특정한 느낌이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대표적인 실험을 소개하면, 스탠퍼드대학에서 남녀 흑인·백인 학생들을 데려다 검사를 했습니다. 일종의 지능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처음에는 시험지 위에 이름만 쓰라고 했어요. 흑인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보다 조금 나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시험지에 이름과 함께 인종 배경도 체크하게 했죠.
안 =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때, 병원이나 공립학교에서 테스트할 때도 그런 문항을 묻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트리버스 = 네, 그랬더니 흑인 학생들의 점수가 반으로 떨어졌습니다. 백인의 점수는 약간 높아졌지만 그리 확연한 것은 아니고요. 흑인들은 스스로가 흑인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사회적인 편견에 갇히게 된 겁니다. 수세기에 걸친 차별, 흑인은 멍청하다고 믿는 그 프레임에 걸린 거죠. 이를 저는‘강요된 자기기만’이라고 부릅니다. 사회가 당신을 보다 낮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 말이에요.
로버트 트리버스는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역사왜곡을 집단적 기만에 빠진 것으로 비판했다. 사진은 일본 우익단체들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철폐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무리의 한국 사람 이름과 일본 사람 이름을 늘어놓고, 거기에 햇빛, 꽃 또는 전쟁, 역겨움, 이런 단어들로 연관지어 이름에 연상되는 버튼을 누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 사람인 당신은 당신이 속한 사회의 감정을 투사할 거예요. 거리감이 자신도 모르게 생기게 되죠. 강요된 자기기만은 도처에 있습니다. 내 의지가 아닌데도,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데도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타인을 비하하게 됩니다.
안 = 선거 때나 평상시 토론으로 풀어야 할 이슈를 놓고, 논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색깔논쟁을 일으키는 것도 강요된 자기기만에 빠지도록 작동시키는 거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교육평준화가 무너지면서 일반고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기 계발 능력이 저하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그렇고요.
트리버스 = 기만과 자기기만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매일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기만과 자기기만이 온갖 곳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죠. 제 말은 정치적인 차원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보다 더 기만에 대해 의식적으로 살핀다면,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일은 줄어들겠죠. 자기기만은 사각지대를 생산합니다. 우리에게 현실감을 잃도록 만들죠.
안 = 언론의 역할, 민주적인 시스템의 작동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트리버스 = 조직의 상층에 있을수록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과해집니다. 자기기만에 빠지는 경향이 높아요. 1988년에서 1999년 사이에 대한항공의 사망사고 비율이 일반적인 미국 항공사보다 약 17배 높았습니다. 미군은 부대원에게 대한항공 이용을 금지했고, 캐나다는 아예 착륙권을 내주지 않을 것을 고려했을 정도죠. 그 문제를 살피기 위해 외부 자문단이 왔습니다. 결과는 내부의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이었습니다. 조종실 내에서조차 부기장이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문화적인 요소죠. 그래서 자문단은 조종실 내에서 영어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한국말로 할 때보다 위계적인 편향이 적으니까 쉽게 의견을 낼 수 있고, 정보 흐름이 빨라지죠. 지배관계가 확고하다는 것은 그 안에 몇 명이 있든 한 명이 다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는 병원도 그래요. 과거에는 우두머리 외과의사한테 수술 전에 손을 씻으라고 명령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위계질서 때문이죠. 의사 역시 자기기만에 빠졌고요. 자신은 의사니까, 다 아니까 괜찮다는 거죠. 그러다 간호사에게 의사가 제대로 손을 씻지 않으면 수술을 중단시킬 권한을 주자 감염으로 일어나는 사망률이 급감했습니다.
안 = 독재도 그렇고, 경직된 사회일수록 복지부동의 모습이 강합니다.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자기 주도로 업무를 해나가기보다는 명령을 기다리게 되죠. 재난뿐 아니라 사회적 위기에도 대처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데요. 상층에 있을수록 자기기만에 빠진다는 것은 권력을 투사해 자신감이 높아진다는 건가요. 리더의 개인적인 성향 차이 아닐까요.
트리버스 = 현명한 지도자라면 자기성찰을 하며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으려 하겠죠. 자신의 신념보다는 정보나 전문가에게 귀 기울이고요. 하지만 통계적으로 사회의 상부에서 더 많은 자기기만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아래층에서 더욱 의식적인 기만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상부에 있는 이들은 스스로 유능하고 도움이 되며 완전히 공정하다고 투사합니다. 자기기만이 생기는 모든 조건을 갖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 위계 질서를 중시하는 권위적인 조직이라면 자기기만에 빠져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확률이 높은 거죠.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떨어뜨린 포탄이 2차 세계대전 동안 태평양 지역에 떨어뜨린 포탄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베트남 전쟁은 더 했죠. 미국엔 당시 독트린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지상전은 없다(No land wars in Asia).’ 아시아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고 그 세상은 당신네 거지 우리 세상이 아니라는 거죠. 케네디가 현명하지 못하게 베트남전을 확전시켰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그 전쟁을 정치적으로 진전시켰고요. 결국 5만명의 미국인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죠. 이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100만 베트남인들이 죽었으니까요. 자기기만에 빠지면, 과한 자기확신을 합니다. 이는 우리가 파충류 도마뱀이었을 때부터 수만년 동안 우리와 함께 번식해왔죠. 과신, 적을 얕잡아 보는 자세, 인종차별적인 관점입니다. 거기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맛봅니다. 과거 영국에는 “한 명의 영국 병사가 열 명의 터키 병사보다 가치 있다”는 말이 돌았어요.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의 숫자로 영국인들이 전멸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모아진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들어요. ‘메신저를 쏘라’는 표현 알아요? 오래전,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메신저가 정보를 갖고 오면 그 메신저를 죽이라는 의미죠. 이라크 전쟁 역시 그랬습니다. 반대 여론, 수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어요. 앞으로 언제까지 그 여파가 이어질지 누구도 모릅니다. IS(이슬람국가) 역시 그 상처의 일부예요. 2003년 전쟁에서 남겨진 결과물입니다. 미국 상층부가 빠진 자기기만과 세상을 향한 기만은 20세기 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뿐 아니라 곳곳에 꽤나 끔찍한 기록을 남겼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의 3분의 2는 그것을 시작한 자들에게 실패를 맛보게 했습니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잃는 모험이라는 거죠.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치명적입니다.
안 = 집단의 자기기만을 막는 일 역시 우리 개인이 삶속에서 기만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말씀인데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장치는 무엇일까요.
트리버스 = 만약 기만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자기기만은 무시한다면, 수많은 자기기만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기기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기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면, 기만이 벌어지는 모든 일에 속수무책이 될 거고요. 그러니까 이 둘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해요. 바라건대 다른 사람들은 제가 지나온 길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저는 대부분 기만과 자기기만에 빠지고 나서야 알아차렸죠. 그래서 지금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잠시 멈춥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인터넷도 끄고 그 일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죠. 그러고는 명상을 합니다. 기도를 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하는 기도는 좀 다른 방식이에요. 내 스스로를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기도하는 사람이 뭔가에 대해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내가 빈다고 해서 우주의 법칙이 바뀔까요. 터무니없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더욱 사려 깊고 다른 이들에게 덜 냉정하도록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연구자의 자세로 세상에 접근하면 좀 더 사려 깊어질 수 있으니 그렇게 살고자 바랍니다.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가는가에 대해 오랜 시간 자문해 보았다. 우리 각자의 선택이 집단의 선택이 되어 세상이 흘러가는 모양을 갖추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이성이 밝아지고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바른 선택을 한다면, 그리고 온갖 세력의 프레임이 흔드는 기만에 속지 않는다면, 거대 집단이 위험에 빠질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먼 미래를 염두에 두며 사려 깊어질 때 기만과 자기기만이 만들어온 지난 위험들은 반복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의 기만을 걷어내는 일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 로버트 트리버스
진화심리학 초석 마련갈등구조 연구 권위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72)는 미국 럿거스대학교 인류학과 생물학 교수이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진화심리학의 초석을 마련한 최고 생물학자로 인정받았다. 호혜적 이타주의, 양육 투자, 성비 결정, 자기기만 등에 관한 뛰어난 진화적 분석과 이론을 내놓았다.
2007년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만한 스웨덴 왕립과학원 주관의 크래포드상을 수상했다. 그의 연구분야, 특히 갈등구조와 협동성, 권위와 자기기만 행동유형의 연구성과가 높이 평가됐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를 받았으며(1972년) 박사 논문 <상호적 이타주의>는 학계뿐 아니라 세간의 주목도 끌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트리버스가 대학원생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놀라운 지능을 가진 조울증 환자로, 자신의 연구실로 달려와 멋진 생각들을 뿜어내곤 했다고 회고했다. 또 그와 두세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녹초가 됐다고 말했다.
트리버스는 1973~1978년 하버드대에서 가르쳤고,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에서 1994년까지 교수를 지냈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역사와 인간, 사회 그리고 생물학을 연결하는 다중적이고 통합적 학문의 범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종차별과 편향된 정치권력 구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저서로는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자연선택과 사회 이론> <사회 진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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