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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산책

이사벨 아옌데((1942년~)

금동원(琴東媛) 2015. 7. 25. 20:46

 작가 이사벨 아옌데

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신익섭 재미 사진가

 

  ㆍ어머니 사랑처럼… 폭력도 용서할 수 있어야 미래 밝아져
  ㆍ소녀들, 더 많이 교육·존중 받을 때 효과적으로 세상 바뀐다

  ‘마음의 진보는 늘 후퇴한다. 여성의 마음으로 세상을 깨우는 것이 최대의 투자.’ 달라이 라마는 201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평화활동 리더들이 참석한 세계 평화 정상회담에서 이 한 문장으로 자신의 소망을 밝힌 적이 있다. “다시 한 번 생을 살 수 있다면, 저는 여성으로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억압과 원망이 줄어드는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길이 수십만년 인류의 생명을 이어온 여성의 본성에 있다는 그의 오랜 수행 속 결론이다. 달라이 라마뿐 아니라 수많은 지성들이 반복해 말한다. 어머니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기에 여성의 마음은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을 떠나 모든 이의 바탕을 이룬다고. 무엇이 여성의 마음이고 무엇이 모성의 본질일까?

  이번 회에는 치타보다 느린 속도, 호랑이보다 약한 근육, 늑대보다 무딘 치아로 거대 사회를 이뤄온 연약한 인간의 마음의 힘을 살펴본다. 주인공은 칠레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며 유명한 소설가인 이사벨 아옌데다.

  1973년 남미 최초로 선거를 통해 들어선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은 수탈당하는 서민을 대변했으나 미국이 후원한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에 의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좌초당한다. 아옌데 대통령은 사살되고 이후 17년 독재정권의 철권통치가 계속됐다.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이기도 한 이사벨 아옌데는 저널리스트로서 저항하는 시민의 삶을 기록했다. 식민 치하부터 남미를 옥죄어온 억압의 역사를 소설로 탄생시키며, 가난한 이들이 연악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권력을 만들어온 역사의 비밀을 파헤쳤다.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느리지만 반복되어 요동쳐온 인간의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문학으로 풀어냈다.

  인권활동가이기도 한 이사벨 아옌데와의 대담은 미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의 ‘이사벨 아옌데 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칠레 출신의 국제적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사벨 아옌데는 “1960년대 미국의 시민권 운동에서 보듯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세상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 쿠데타 정권에 고초 겪은
  칠레 바첼레트 대통령
  지난 일 문제삼지 않아


  ▲ 과거에 묶여
  폭력 반복 않겠다는
  ‘너그러움의 용기’ 가져


  안희경(이하 안) = 선생님의 소설 <영혼의 집> 마지막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용소에 끌려갔던 여대생은 임신한 채 돌아옵니다. 그녀를 고문하고 강간한 군인들의 아이일 수도 있고, 반독재 운동을 하는 연인의 아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아이의 아비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라는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면서요. 강렬하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엄청난 지혜라고 느꼈어요. 계산을 해보니 그 글을 쓸 당시 선생님은 겨우 서른예닐곱이었습니다.

  이사벨 아옌데(이하 아옌데) = 그때 저는 칠레에 있었어요. 아옌데 정권이 들어설 때, 그 3년 동안의 활기, 또 미군을 업고 일어난 쿠데타의 폭압…, 다 목격하고 인터뷰했죠. 밤이면 끌려가 사라진 젊은이들이 무수했습니다. 억압이 자행되었고 고문이 일상이었어요. 많이들 죽고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저도 떠나야 했죠. <영혼의 집>은 망명지에서 쓴 겁니다. 시간적 거리, 지리적인 거리가 있었기에 억압의 사슬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거죠. 당신이 이야기한 임신한 젊은 여인의 다짐은 폭력의 반복을 끊겠다는 자각한 시민의 의지입니다. 잊지도 못하겠지만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용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죠. 폭력의 순환을 끊어내는 일은 잊을 수는 없지만 용서할 수는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안 = 여성의 힘인가요?

  아옌데 =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 어떤 사랑이죠?

  아옌데 = 어머니의 사랑이요. 고통받은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일부는 결코 용서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칠레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는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열다섯 살이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지만 피노체트에 저항했죠. 쿠데타 주역들이 미첼의 아버지를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녀도 어머니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요. 그리고 독일로 망명했습니다. 하지만 미첼은 칠레 대통령으로 우리 곁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람들에게 용서를 요청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매우 개인적인 결정이니까요.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겁니다. 우리, 과거에 묶여 있지는 맙시다.” 미첼은 한 번도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너그러움이 용기죠. 내 소설 속 여인은 아버지가 누구라 하더라도 상관없이 그 아이를 돌볼 거예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대표합니다. 그 아이는 미래예요. 모든 폭력, 모든 끔찍함으로부터 생산되었지만 어머니는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있습니다.

  안 = 반복을 끊는 힘, 반동의 관성을 차단하는 힘은 용서라는 ‘흡수하는 힘’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죠. 제가 작년에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인간의 역사는 추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88세 사회학자가 말하길, 젊어서는 진보를 직선운동이라 여겼는데, 나이들어 되돌아보니 계속 후퇴를 반복하는 추의 운동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매우 낙담했더랬습니다. 저는 그래도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해간다고 여겼거든요.

  아옌데 = 저 또한 나선형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나선형 안에서 추의 운동 같은 반복이 나와요. 항상 후퇴하곤 하죠.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죠.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주의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있었던 실수투성이 그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역사를 먼저 보세요. 칠레에서 첫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살바도르 아옌데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한 독재정권이 이어졌죠. 모든 정당을 금지시켰고 언론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해냈습니다. 끊임없이 피노체트를 압박했어요. 결국 그는 선거를 해야 했고 실각했습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됐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중간계급이 권력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이 변화를 이뤄낸 겁니다. 그렇게 역사는 물러갔다 앞으로 나가요.

  안 = 한국도 독재정권을 경험했고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때 우리가 만든 변화의 힘이 남미의 변화를 추동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노엄 촘스키는 말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보수 정권이 집권했습니다. 공공 영역이 광범위하게 사유화되고 서민도 누릴 수 있던 편리와 안전망은 깨져가고 있습니다.

  아옌데 = 칠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첼 바첼레트가 한 번 통치한 다음 정반대 정권이 들어섰어요. 미첼이 떠날 당시 지지율이 81%였는데도 사람들은 보수를 대변하는 대통령을 뽑았답니다. 저도 의아했죠. 그 다음 상황은 또 뒤바뀌었어요. 미첼이 다시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했던 겁니다. 물론 미첼이 통치하는 지금도 칠레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칠레에도 영향을 주니까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겁니다. 지도자에 대한 책임은 그 지도자에게 권력을 준 국민에게 있습니다.

  안 = 선생님 작품의 주인공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우리 세상의 미래라고 했고요. 무엇을 보는 겁니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힘이 있는 건가요?

  아옌데 = 숫자입니다. 충분한 사람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세상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어요. <바다 밑 섬>이라는 제 소설이 있는데, 200년 전 아이티에서 일어난 노예 봉기에 대해 썼죠. 그 일은 노예들의 반란일 뿐 아니라 한 나라를 식민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했습니다. 2만5000여 플랜테이션 농장의 주인들과 프랑스계 백인 식민지배자들이 있었고, 150만 아프리카 노예들이 있었어요. 절대다수였던 노예들이 함께 일어났기에 가능했습니다.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는 어떠했나요? 거기에는 이제 지긋지긋하니 바꾸자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충분하게 많았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시민권 운동은 어떻습니까? 1860년대 노예제 폐지가 이뤄지고도 100년이 넘도록 흑인들은 버스에서 제대로 앉지도 못했고, 백인이 다니는 출입구를 이용하지도 못했어요.시민권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이뤄졌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어떨까요? 시스템 자체가 사람들이 한눈팔지 못하게끔 경쟁을 부추기죠. 하지만 이곳에서도 변화는 일어날 거예요. 충분한 사람들이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바꾸자고 요구할 때, 바뀔 겁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보다는 좀 빠르지 않을까요?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세상이잖아요. 10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요. 하지만 이는 대단할 겁니다.

여성들은 전쟁, 가난 등으로 특히 큰 상처를 입는다. 사진은 시리아 내전으로 국경을 넘어 터키 난민촌으로 피란 온 시리아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 여성에게 지원한 1달러는
  남성에게 지원한 20달러와
  같은 효과 만들어내


  ▲ 여성은 자식·가정·사회로
  ‘자립 효과’ 퍼뜨리기 때문
  여성 자립이 가장 큰 투자


  안 = 문명의 위기라는 의식이 높습니다. 고갈되는 자원, 위협받는 평화, 생태계의 교란, 기후변화까지요.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효율적인 길이 여성성의 강화라고 보는지요?

  아옌데 = 네, 저는 작은 재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여성과 소녀들의 자립을 지원하고자 시작했습니다. 권한을 강화하는 겁니다. 그들은 51%의 인류입니다. 더 많은 소녀들이 교육받고 존중받을 때 세상은 한층 건강해질 거라고 믿어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기회를 갖고 같은 자원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이는 남자에게 대항하는 전쟁이 아니에요. 가부장적인 질서를 모계사회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죠. 그저 세상 모두가 권력을 함께 공유하자는 겁니다.

  안 = 왜 여성이죠? 우리의 현재 대통령도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고, 불통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통용되기도 합니다.

  아옌데 = 어떤 종류의 여성이죠? 우리에게는 남자처럼 행동하지 않는 여성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가치로 세상을 경영하도록 협력하는 여성이어야 합니다. 남성처럼 행동하는 여성과 권력을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엄마들은 자신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라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어 해요. 모든 사람들은 사랑하고 싶고 존중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접받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열망입니다. 저는 세상의 변화를 여성으로부터 시작하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인도에서 소액 대출을 해줄 때 여성에게 지원하면 그 효과가 급속도로 파급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아주 비참하게 사는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굶주림에 허덕였죠. 한 어머니에게 50달러를 대출해줬습니다. 여성은 염소 두 마리를 샀고,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염소의 새끼를 받아 팔았습니다. 1년 안에 극심한 가난에서 다른 단계의 가난으로 나아졌어요. 대출금도 갚았고요. 그 다음엔 더 큰 돈을 다른 다섯 명의 여성과 함께 공동 대출했습니다. 그들은 재봉틀을 샀습니다. 셔츠와 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여섯 가족이 자립했죠. 그러면서 곧이어 마을 전체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지원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조사한 결과 여성에게 지원한 1달러가 남성에게 지원한 20달러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들에게 대출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위상을 높여주는 시계나 자전거 등을 사는 데 먼저 지출했어요. 그러니까 여성의 자립이 우리가 세상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투자라는 거죠.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에 매달리는 이유예요.

  안 = 진정한 낙수효과네요.

  아옌데 = 아닙니다. 낙수효과는 실리콘 밸리 억만장자들이 하는 소리인데 거짓말이에요.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거짓 선전입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이윤을 챙기는 재산가들이 죄의식을 덜어보려고 하는 소리죠. 왜냐? 낙수효과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도 이득이 조금은 돌아간다고 자기위안으로 하는 말입니다. 전 그걸 믿지 않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나머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나누는 겁니다.

  안 = 네, 죄송합니다(함께 웃음).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변화에 대해 글 쓰고 사회활동에 몰두하도록 선생님을 자극하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아옌데 = 저는 수많은 보통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아요. 그래도 특별히 한 명을 꼽으라면 올가 머레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네팔에서 일하는 90세 미국인 활동가예요. 60세에 처음 네팔로 관광 갔다가 넘어져서 뼈가 부러졌어요. 셰르파가 등에 업고 마을로 내려와 며칠 묵게 되었답니다. 그사이 마을에는 잔치가 열렸고 카트만두에서 버스가 왔다고 합니다. 마을의 어린 소녀들을 싣고 가려고요.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아이들이 팔려갔습니다. 아버지들이 딸을 파는 겁니다. 중개인이 아이들을 골라 도시의 가정부로 넘겨 어린이 노예를 만드는 끔찍한 일이죠. 아이들은 바닥에서 개처럼 취급받으며 현관에서 자거나 남겨진 음식을 먹고, 의료 지원도 못 받고, 학교도 못 가고, 강간이나 폭력에 시달려요. 그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입니다. 올가는 그때부터 갖고 있는 돈을 털어 할 수 있는 한 많은 소녀를 샀어요. 돼지 한 마리 값과 같은 50달러예요. 그런 다음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들은 또 딸을 팔았어요. 왜냐하면 여자 아이는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죠. 올가는 네팔 청소년 재단을 만들었고, 가정에 돼지를 사주고 소녀들을 데려와 18세까지 돌봤습니다. 25년 동안 1만2000명의 소녀를 구했죠. 모두를 교육시켰고 일부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올가는 네팔의 문화를 바꿨어요. 정부가 아이를 거래하는 일은 불법이라고 선언하도록 만들었답니다. 중개인들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지만, 은밀히 합니다. 아버지들도 딸을 파는 일을 창피하게 여기고요. 그리고 도시에서도 소녀를 소유하면 부끄러운 일이 됐습니다. 올가는 테니스 슈즈를 신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바꾼 겁니다.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어요.

  안 = 모든 변화가 사람의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옌데 = 물론이죠.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 그걸 창조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행성을 창조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사회는 바꿔왔죠. 사회가 무엇입니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생각이고요. 바로 무수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사벨 아옌데를 만나기 전 열정에 대해 묻고자 준비했다. 강연을 통해 쉼없이 이야기한 그녀의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온몸에서 열정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녀가 소설에 썼듯 용서를 통해 진전하지만, 결국 마음의 진전을 일으키는 추진력은 열정이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랑 속에서 열정이 분출하고, 그 열정은 용서라는 거대한 기회를 만드는 바탕을 이루지 않을지 아옌데와의 만남을 통해 가늠해 보았다.

  ■ 이사벨 아옌데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의 조카… 재단 만들어 여성 자립 도와


  이사벨 아옌데(73)는 칠레 출신 작가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댁에서 살았다. 어머니의 재혼 이후 외교관인 의붓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다녔으며, 17세에 칠레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저널리스트, 편집자, 희곡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삼촌이자 남미 최초 사회주의 정당 대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죽음을 맞자 저널리스트로서 적극적인 저항운동을 했다. 2년 뒤 군부독재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외할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그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쓰기 시작하며 소설 <영혼의 집>(1982년)을 완성한다. 그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사랑과 그림자에 대하여> <에바 루나>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게 됐다. 현존 스페인어권 출신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한 작가로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고 있다.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 <파울라> 등 20권 넘는 작품을 냈으며 35개 언어로 번역돼 6500만권 이상 팔렸다. 그 중 2편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됐고, 다수의 작품이 연극·뮤지컬·오페라·발레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5월에는 새 소설

를 출간했다.

  1989년 칠레 언어아카데미 회원에 선정됐으며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회원이다. 하버드대(2014년)를 비롯 해 프랑스·덴마크 ·이탈리아 등 14개국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올해의 작가상(독일, 1984·1986년), 올해의 책(스위스, 1987년), 전미비평가상(미국, 1996년), 과거 60년간 최고의 책 60권에 <영혼의 집> 선정(영국, 2009년) 등 최근까지 15개국에서 50개 넘는 상을 받았다. 재단을 설립해 성인 여성과 소녀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