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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이문재

금동원(琴東媛) 2015. 7. 25. 20:21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이문재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직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모른다면

지금까지 자기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이는 아직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가 첫 단추가 아니다.

첫 키스는 서툰 기습 같은 것이다.

사랑은 손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손이 하는 것이다.

손이 손을 잡았다면

손이 손 안에서 편안해했다면

그리하여 손이 손에게 힘을 주었다면

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두 손은 서로의 기억을 가지려 한다.

열 개의 손톱이 모두 그이의 얼굴로 보일 때

손금에서 꽃 피고 별 뜨고 강물이 흐를 때

그리하여 그대가 알고 있는 그이의 이야기와

그이가 알고 있는 그대의 이야기가 같아질 때

그때부터 둘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헤어질 수 있는 자격은 그때서야 생기는 것이다.

먼 훗날, 아주 먼 곳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으며

추억할 수 있는 권한은 그때서야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시집『지금 여기가 맨 앞』(2014)에서 -------------

 

이문재 / 1959년 경기 김포 출생. 1982년 〈시운동〉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시인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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