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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환대가 필요한 시간/ 위로공단

금동원(琴東媛) 2015. 9. 1. 21:54

 

 

[삶과 문화] 환대가 필요한 시간

 

 

구로공단은 1964년 조성된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뀐 그곳에서 작년에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던 모양이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초대되어 은사자상을 받았다)은 초반부에 그 장면을 조금 멀리서 보여준다. 그러다 후반부에 이르러 그날 그 행사장 밖의 또 다른 풍경 하나를 삽입한다. 피켓을 들고 일렬로 늘어선 이들의 모습이다. 노란 손팻말 위의 한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50년 전에는 공순이, 50년 뒤에는 비정규직”

 

 

 ‘위로공단’은 70년대부터 시작되는 우리 누이들의 이야기다. 흐릿한 형광불빛 아래 환기도 안 되는 좁은 다락방 먼지 속에서 타이밍을 먹으며 14시간씩 일해야 했던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어린 소녀들, 구사대로부터 똥물을 뒤집어쓰고 끌려가야 했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참혹한 이야기가 이제는 오륙십대의 나이에 이른 바로 그이들의 증언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배고파 못 살겠다고 외쳤죠.” “생지옥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리봉 오거리 일대에 모여 있던 닭장집. 발도 제대로 뻗기 힘든 그 좁은 방에서 밤늦은 퇴근 후 라면을 끓여 먹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포개져 쪽잠을 자야 했다. 그러다 폐결핵에 걸린 이들은 그나마의 일터에서도 쫓겨나 더 참담한 곳으로 갔다. 80년대 노조활동을 하다 구속되고 해고되었던 한 여성 노동자는 웃으며, 그 시절 어린 여자 후배가 떠올린 구호를 전한다.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는 혹 이런 것들이 얼마간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러나 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대기업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직장을 떠나야 했던 여성들.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들의 기나긴 싸움. 콜센터에서 일하는 한 40대 여성 노동자는 작은 용돈조차 부모님에게 보내드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다 결국 흐느낀다. 항공기 여승무원들은 육체와 감정 모두를 바닥까지 쥐어짜는 회사의 가혹한 노동 통제를 증언한다. 베트남 이주 여성 노동자가 서툰 한국어로 읽어나가는 간절한 호소, 캄보디아의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현지 여성 노동자들의 실상은 구로공단의 70년대가 지속되는 또 다른 비참의 국면을 보여준다. 여전히 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 노동자가 그 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며 그나마 아이들을 가졌을 때가 살면서 가져본 거의 유일한 휴식이었던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큐 중간중간에는 흰 천으로 눈을 가린 채 공단 이곳저곳을 떠도는 여성, 거울 앞에 선 여성들이(소녀에서 할머니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거울은 그이들의 온전한 얼굴을 좀처럼 비춰 보여주지 않는다. 얼굴이 우리의 존엄과 인격이 매순간 상호 인정되고 교류되는 ‘신성한’ 장소라면, ‘위로공단’이 환기하는 또 다른 차원의 아픈 진실은 그이들의 그 시간이 경제적 물리적 고통과 함께 지속적인 모욕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한 계약직 여성 노동자는 탈의실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넓은 매장에 그들이 쉴 곳, 그들만의 공간은 없다. 고공의 철탑이 그들의 자리인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마지막 호소는 바로 그 ‘사람의 자리’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씨는 벌거벗은 생명을 돕는 단 한 명의 존재, 그 미약하지만 절대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사회가 구성되고 정초되는 지평을 상상한다. 그리고 우리를 설득한다. “구성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환대의 이야기, ‘사람의 자리’에 대한 관심과 연대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버린 걸까.

정홍수 문학평론가

 

 

임흥순 감독 "[위로공단]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영화"
[SBS funE| 김지혜 기자]

 

<위로공단>은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의 눈물, 분노, 감동의 이야기를 생생한 인터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낸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은사자상 수상하며 미술계와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해외에서의 수상으로 국내 관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영화제의 명성에 기대지 않아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경제활동 혹은 자아실현이라는 목적 아래 행하는 노동은 어떤 이에겐 생계의 수단이고, 또 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여성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녹록지 않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단순 노동 분야에 일하는 사람일수록 그 벽은 견고하고 높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대한민국 산업화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찬란하고도 슬픈 노동의 역사를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 영화는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땀과 노력의 가치를 숭고하게 전하는 수작이다.

 

 

Q.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사려 깊은 시선이 인상적이다. '위로'라는 키워드가 요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힐링'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A.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중심에 노동자들이 있다. 1970년대 그 시대 그곳의 노동자들이 오늘날 한국이라는 나라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분들은 '공순이'라 낮춰 말하고, 그 분들조차 본인의 존재를 숨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당한 일의 가치를 조명하면서 그분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Q. 왜 구로공단이었나?

A. 서울시에서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 미술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곳은 과거 양복 공장을 개조해 창작 공간으로 만든 곳이었다. 구로공단은 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어떤 상징적인 공간이 아닌가. 그 공간에 머물면서 '그 많던 공순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가 구로공단을 많은 비중으로 조명하지만,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에 한정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면서 세상 모든 노동자와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Q. 다큐멘터리에도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쉽지 않은 주제였을 텐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주제와 소재를 확장해 나갔다.

A. 다큐멘터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서사 구조 이런 거 말고 다른 서사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야기로 풀어갈 수도 있지만, 이미지나 영상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당놀이나 판소리와 같은 구조도 생각했다. 실제로 마당극처럼 캡처별로 나눠보기도 했다. 영상과 이미지, 인터뷰, 퍼포먼스가 결합한 지금과 같은 구조를 짜고 스토리도 거기에 걸맞게 맞췄던 것 같다.

 

 

Q.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어떤 기준으로 인터뷰이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A. 책과 자료를 보면서 한국 노동의 역사를 공부했고, 인터뷰 리스트를 추려 나갔다. 공장에서 일했던 근로자를 중심으로 하되 감정상담사, 마음 치료사, 꿈을 해석하는 전문가 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엣 봐줄 사람들도 다수 만났다. 총 66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영화에는 22명의 인터뷰를 삽입했다. 일단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분들을 중심으로 만나면서도 다양한 직업군을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노동의 의미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고 싶었다

Q. 그 인터뷰 리스트에는 어머니와 여동생도 있었다.

A. 어쩌면 이 영화의 출발인 어머니와 여동생일 수도 있다. 어머니는 실제로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수십 년간 시다 생활을 했고, 여동생 역시 대형마트 냉동 식품코너에서 장기간 일을 했다. 어머니의 경우 두 번 인터뷰했는데 이야기의 맥락상 맞지 않는 것 같아 영화의 최종 상영 버전에서는 넣지 않았다.

Q.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를 그리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이 노출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삼성이라던가.

A. 누구나 다 아는 기업을 'S기업'이라 할 수도 없지 않나. 뻔히 알고 있는 문제들을 피해가고 싶지 않았나. 어떤 기업이 나오느냐 보다는 어떤 문제를 다룰 것인가가 중요했다. 고발이나 문제 제기 차원이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했다.

Q. 흥미로운 것은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회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A. 여러 노동자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게 이것은 단순한 노동의 역사가 아니라 신념을 지니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현대사회가 산업화, 도시화, 개인화되면서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이분들은 그 반대였던 것 같다. 대우를 못 받더라도 비열하게 살지 않으려고 했고,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투쟁한 모습들이 같은 인간으로서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이번 작업을 통해 단순히 일에 대한 숭고함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숭고함까지 배웠다.


Q. 노동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이 흥미롭다.

A.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지식층의 이야기보다 울림이 크더라. 그런 점을 영화로도 보여주고 싶었다. <위로공단>은 신념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영화다. 그러면서 일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고…. 물론 이 영화를 고발성이나 정치적 영화로 해석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관객의 그런 다양한 관점과 해석까지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풍부하게 상상력을 확장하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게 예술이기에.

Q. 행위예술에 가까운 퍼포먼스 삽입이 인상적이었다.

A. 단순히 미학적으로 풍자하거나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삽입한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이들 당시 느꼈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다.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은 자매로 설정했다.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한 공장에서 일하면서 유사 자매가 되는 콘셉트를 설정한 것이다. 퍼포먼스에는 총 8명이 참여했는데 한 명과 전문배우고 나머지는 일반인이다.

Q. 얼굴에 복면을 쓴 두 여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A. 일부 관객들은 마그리트의 작품 '연인들'의 영감을 받은 게 아니냐 하시는데 그런 건 아니다.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떠올린 이미지다. 공장 노동자들 대부분이 환풍 시설이 안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실밥이나 먼지를 많이 먹는다. 최악의 환경에서 일했던 그 분들을 생각하며 마스크를 씌워 주고 싶었다. 또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지 않나. 그런 이미지도 생각했던 것 같다.

Q. 자연의 풍경과 동물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공장에 갇혀 있어 알지 못했던 일상의 풍경과 소리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A. 우리는 보통 큰 것과 예쁜 것만 보려고 하지 않나. 작고 쓸모없고 보잘 것 없들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넌지시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개미나 까마귀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의 불안함, 불편함 같은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다.

 


Q. 미술가와 영화감독이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행보다.

A. 하나의 직업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내 작업은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작업은 큰 그림으로 치면 조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다 보면 내가 죽을 때 즈음 임흥순이 추구하고자 했던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Q. 혹시 극영화를 연출해볼 계획도 있는가?

A. 다양한 형식의 예술창작활동에 관심이 있다. 지금 일본에서 하는 전시도 극실험 예술이다. 어떤 방식을 규정짓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는 형태라면 다양하게 시도해볼 생각이다.

Q. 차기작이 궁금하다.

A.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환생'이라는 작품을 전시 중이다. 베트남전과 이라크 전쟁을 겪은 할머니들를 통해 아시아 전쟁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그렸다. 이것을 장편으로 확장해볼 계획이다.

 ebada@sbs.co.kr
<사진 = 아트나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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