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책 속으로
공화주의자 블로크가 보기에 시험 편집증에 걸린 공교육의 가장 우려되는 폐해는, 공화국 시민에 걸맞은 “비판 정신”과 “포용력” 있는 “시민 정신”을 함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점수의 노예’로 훈련된 엘리트는 “그랑제콜”과 같은 “특권적인 기관”에서 “추억과 우정”을 나눈 뒤, “폐쇄적인 작은 사회”를 만든다. 그들은 장차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는 우두머리들, 세상을 모르는 정치가,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행정가”들이 된다. _72쪽
우주나 보편이 아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경배야말로 근대가 우리의 내면과 신체 속에 아로새겨 놓은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다. _103쪽
중국 철학은 유럽이 종교 시대를 마감하고 철학 시대의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었으나, 곧이어 서구에 과학 문화가 대두함에 따라 “중국 사상의 유럽에 대한 영향은 그야말로 공을 이루고 은퇴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쓸 때, 주겸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무엘 헌팅턴이 틀렸다는 것이다. 주겸지는 말한다: “명말.청초의 중서 문화 접촉에서 중국이 받아들인 것은 예수회의 ‘종교 문화’가 아니라, 예수회 선교사들이 종교의 방편으로 가져온 ‘과학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와 동일 선상에서 18세기 중국 문화가 유럽에 끼친 영향 역시도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져와 교의에 억지로 갖다 붙인 이른바 ‘천학(天學)’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전해졌고 또한 유해하다고 인식되었던 바로 ‘이학(理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호한다. _249쪽
출판사 서평
독서광 장정일의 ‘무지를 깨는’ 새로운 버전의 인문학 에세이
“정형화된 기억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라!”
장정일에게는 늘 ‘독서광’ ‘최연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 ‘중졸의 대학교수’ 등 그의 지성인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책은 장정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 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_「서문」 중에서
그는 중용이 본래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뜻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중용의 미덕이 실제로는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는 ‘알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한때(청소년기)의 고역’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장정일에 의하면 공부는 좋은 사람/상식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강압이 통하지 않는 의견과 의견이 부딪치는 사회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는 ‘나만 옳다’는 독단에 빠져 상대방의 개념과 논리에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의 개념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며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만과 독선에 병드는 것이다. 이렇듯 장정일은 우리가 잊고 있던 공부의 진짜 목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공부의 가치를 격상시킨다.
그렇다면 장정일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을까. 문학가로 살며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고자 23가지 화두를 정하고 관련 책들을 섭렵하면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 결과가 바로 『장정일의 공부』에 담겼다.
예컨대 「교양; 지식의 최전선」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 저하 현상과 대학의 교양 교육 부재 문제를 짚어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두 문화』(C.P. 스노우), 『문학의 사회학』(에스카르피),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등을 함께 읽고 대학의 교양 교육 강화, 졸업정원제 실시, 과학 공부 장려, 대학의 독립성 확보 등의 방안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그가 제시하는 23가지 화두는 모두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상한선을 찾아서」에서 장정일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김인호/박훤), 『서얼단상』(고종석) 등을 아울러 읽으며 인조반정은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군약신강의 문치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갈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송시열의 북벌론이 허구이듯 우리나라 보수 우익이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에서 발췌한 ‘한국 주류의 기원’에 대한 다음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오늘까지도 일제와 영합했던 서인 계열의 척족들이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있다는 현실은 권력과 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혐오의 근원을 짐작케 한다. 「상한선을 찾아서」 중에서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안인희),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오인석) 등을 탐독한다. 장정일은 독일 사회민주당이 1차 세계대전의 참여를 놓고 분열된 것이 결국 나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한 대목을 읽고서 (이념의 변별 없이 당명만 교체하는) 우리 정당의 계통발생 혹은 자기 복제를 떠올린다. 그는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 봤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열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이들 정당이 이념이 아니라 지역적 지지 기반과 지역주의 성향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치에 투표한 까닭을 레드 콤플렉스(=붉은 공포)에서 찾고서는, 자신에게도 레드 콤플렉스가 내면화돼 있으며 그것이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끈질긴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 밖에 장정일이 공부한 내용을 주제별로 모으면 봉건성과 국가주의, 양심적 병역 거부, 역사 청산, 마키아벨리즘, 근대와 민족주의, 친일과 문학, 미국 극우파, 타성 앞에서의 법의 무력함, 시오니즘 등이 있다. 인물별로는 리쭝우, 마르크 블로크, 이탁오, 고미숙, 시마자키 도손, 무라카미 하루키, 이광수, 모차르트, 조봉암, 바그너, 촘스키, 오디이푸스, 엘리자베스 1세 등이 있다. 독자들은 장정일 식 인문학 독도 과정을 따라가면서 진보/보수/과두정/친일파/민주주의/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정확한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
『장정일의 공부』는 그 어떤 ‘책에 대한 책’보다 절실하게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화두를 풀기 위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바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장정일의 공부는 앞으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더 읽고 공부하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정일식 인문학 독도법은 ‘공부의 기쁨’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안에 불과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감히 ‘장정일의 공부’라는 제목으로 내놓는 것은,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 하면 당신이 할 게 뭐 남아 있는가? 그래야 당신이 ‘조금 하다’가 지치면, 내가 이어서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어 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 봐야지’ 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다. 「서문」 중에서
이 책은 기존의 인문교양서와는 다르다. 대중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인 사유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짜 독서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2006년 초판이 나왔을 때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당당한 문제의식에 눈뜨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배움과 공부에 대한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리뷰
제가 장정일 씨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눈치를 보지 않는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지식인을 자임하는 분들은 왜 그리 모범생처럼 글을 쓰는지, 때론 너무 예의가 발라 답답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물론 오늘날 지식인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분들이 상아탑에 매인 몸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상아탑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저는 장정일 씨의 글에서 경험합니다.
우선 장정일 씨의 펜이 겨누는 대상은 결코 거침이 없습니다. 문단의 대선배 이문열 작가를 두고 쓴 다음 문장이 그렇습니다. “이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이문열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까닭은, 실제로는 활발한 정치 참여를 하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을 지식인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오만에서다.” 아마 이런 거침없는 비판이 장정일 씨에게 적지 않은 적을 만들어냈겠지만, 제대로 된 비판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 사회에서 장정일 씨의 존재는 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정일 씨의 글을 천천히 읽을 때, 저는 그의 문체만이 줄 수 있는 도발적인 쾌감을 느낍니다. 가령 이런 문장 말입니다. “미국산 지식인 가운데 하나인 새뮤얼 헌팅턴은 비웃음을 받기 위해 쓴 <문명의 충돌>이란 저서에서, 세계를 종교에 따라 범주화한 다음 ...” 한국 학계와 언론이 “세계적 석학”으로 떠받드는 새뮤얼 헌팅턴을 “미국산 지식인”이라고 지칭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그의 대표작이라 여겨지는 <문명의 충돌>을 “비웃음을 받기 위해 쓴” 것이라고 수식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문체의 맛이지요.
무엇보다 장정일 씨의 글은 재미있습니다. 장정일 씨는 일본 영화 <배틀로열>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 매해 전국에 있는 중3 학급 가운데 무작위로 추출된 한 학급을 무인도로 옮겨 최후의 승자가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은? 교육 관료와 통치자들은 그 법을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화 속에서 일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어린 세대들에게 체득시키려 한다. 끔찍한가? 이게 끔찍하다고 생각한다면 <vj특공대 jquery1441113972250="711"></vj특공대>의 아줌마들이나 생각 없는 일부 텔레비전 방송국의 PD들아, 제발 해병대 입소 극기 훈련이니 뭐니 하는 취재기 좀 그만 방송해라. 그 ‘똥개 훈련’을 무슨 큰 통과제의나 되는 것처럼 미화하지 마라.”
사실 이 대목 다음 문단이 더 재미있는데, 분량이 길어 옮기지는 못하겠네요. 직접 찾아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릴 수밖에 없네요. 다만 그만한 수고에 대한 보상은 하고도 남을 법한 글이라는 점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보도자료를 읽기 전까지 이 책이 공부법에 관한 책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장정일 씨가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고뇌한 흔적들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부법보다 중요한 것은, 치열한 공부의 궤적을 따라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겠지요. 그 과정이 재미있기 하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고요. <장정일의 공부> 개정판을 무척이나 즐겁게 읽은 저는 지금 <장정일의 공부 2>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정일의 공부 ce**1 | 2015-06-30
책을 무척 좋아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가 정성들여 읽는 책에는 언제나 눈길이 갑니다. 일명 '타임 킬용'(시간 죽이기용)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덮어버리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꼭 읽어야 할 책만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인생이라는 게 그의 독서철학입니다. 그처럼 깐깐하게 책을 고르는 사람이 천천히 아껴읽는 책을 보았으니 당연히 눈길이 갈밖에요. 그 책이 바로 <장정일의 공부>였습니다. 2006년에 초판된 책을 왜 다시 읽나 싶었는데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나왔답니다. 10년 동안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 책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장르, 어떤 주제의 책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공부법을 가르쳐 주는 책인가?'였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는 한국 사회가 저자에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자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한 결과물입니다. 때로는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우연한 궁금증이 관련 도서를 찾아 읽으며 사유를 확장해가기도 하고, 때로는 대한민국의 현안과 관련된 주제를 풀어내고자 책을 파고들며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런 공부를 시작한 동기? 목적?이 참 재밌습니다. 저자는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밝힙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서문 中에서).
"확실하게 편들기"를 저자의 표현을 빌어 다른 말로 바꾸면 "중용의 무지에서 벗어나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국가나 어떤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난 '중립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난 아는 게 없어"라는 말과 같다고 풀이합니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서문 中에서). 그러니까 사유과 고민이 없는 중용의 미덕은 사실 "아무 생각 없음"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학력이 중학교 졸업밖에 되지 않는"(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당시에 치러지던 고등학교의 학내 군사 훈련(교련)을 피하고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 18)이라고 해서 찾아보니, "최연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 "중졸의 대학교수"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지식이나 사유의 힘은 학교교육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장정일의 공부>와 같은 독서로 쌓여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는 무서운 독서광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비판적인 책 읽기가 습관이 된 사람, 한마디로 책을 참 "잘 읽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쓰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얼마나 적확한지 과녁의 정중앙을 명중시키는 듯한 매서움이 느껴집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하나의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이 수록되어 있스니다. 지금까지의 독서가 부끄러워지면서 책을 읽으려면 이렇게 읽고, 적어도 어떤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려면 이 정도 공부는 하고 나서 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는 우리가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살았던 대한민국의 사회적 현안들에게 대해 눈뜨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부(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식이 확장될수록 확장된 지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를 통해 나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내 마음에 사무쳐 오는 한가지 진실은 내가 모르는 것이 이처럼 많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떠밀려서 했던 입시공부말고, 장정일식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무엇에도, 심지어 내가 읽는 책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해 말입니다.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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