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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광인일기/ 강용준

금동원(琴東媛) 2015. 10. 27. 00:02

[윤성근의 헌책방 독서일기]닮은 듯 다른 동·서양 소설 속 광인들

     윤성근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광인일기…강용준 | 예문관| 1974년

 

 

 

 
  ‘광인’ 즉 미친 사람을 소재로 쓴 소설이 여럿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광인일기’이며 루쉰도 같은 제목으로 단편을 썼다. 우리에겐 ‘목걸이’라는 단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모파상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어느 바보의 일생’, 우리나라 작가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도 광인에 대한 소설이다. 서점엔 이 소설 모두를 한곳에 모아 엮은 책도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읽고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광인일기>가 내 손에 들어왔다. 헌책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오래된 책을 자주 보는데 특히 1960~1970년대에 나온 책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담고 있어 더욱 관심을 갖고 찾아 읽는다. 한 무더기 책들 속에서 발견한 것은 작가 강용준의 <광인일기>다. 1974년에 초판을 낸 책으로 표제작인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단편 여덟 작품을 엮었다.

  강용준은 ‘철조망’으로 1960년 사상계 잡지에서 발표한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71년에는 제4회 한국창작문학상을 받았고 1970년에 발표한 ‘광인일기’가 일본 요미우리신문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되었다. 그 때문인지 소설집 <광인일기>는 작가 사진이 표지 그림을 대신한다. 작가는 창작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에 ‘악령’ ‘태양을 닮은 투혼’ 등을 썼고 그 후로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이 없는 상태로 지금에 이르지만 ‘광인일기’와 ‘철조망’만큼은 여전히 인정받는 작품이다.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국군에게 붙잡혀 포로 생활을 했던 것이 큰 계기가 되었는지, 대부분 작품에서 한국전쟁이란 소재를 그렸다. ‘광인일기’ 역시 다르지 않다. 주인공 ‘나’는 휴전이 되고나서 1953년부터 3년간 조순덕 대위와 함께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돌아와 소공동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다. 작품 속에서 ‘광인’으로 묘사되는 조순덕 대위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 정신병이 생겨 불명예 제대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사무실로 조 대위가 찾아온 것을 계기로 나는 조 대위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어가며 그가 왜 광인이 됐는지를 추적한다.

  제목은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고골리의 ‘광인일기’에서 빌려 온 것 같다. 주제도 비슷하다. 하여 우연찮게 근 한 달 사이 광인 이야기 여섯 편을 연달아 보고 나니 소설 속에 나오는 광인들이 전부 다르지만 또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걸 알았다. 작품이 나온 시기도 전부 다르고 배경도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까지 넓게 퍼져 있지만 광인이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라는 조직 안에서 탈락한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병리학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강용준의 ‘광인일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조 대위에게 의사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부디 사회와 국가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해주시오.” 살육의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사회에 적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조 대위에게 ‘사회와 국가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이란 영원한 탈락, 즉 자살을 의미한다. 결국 조 대위는 병원에서 나온 지 이틀 만에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목숨을 끊는다. 모든 국민들이 협동 단결하여 산업화를 이뤄야 한다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걸리적거리는 한 개인은 그저 쓸모없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그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어느 한때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을 수 있을까?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났다. 지금은 확실히 그때보다 더 자유롭고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누가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또 다른 옷을 입은 광인 이야기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1800년대의 고골리부터 1900년대 김동인까지, 그리고 강용준의 ‘광인일기’를 이어서 또 어떤 이야기가 지금의 이 미친 사회를 폭로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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