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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오장환 문학관을 다녀와서

금동원(琴東媛) 2015. 11. 8. 01:18

 

 

 

 

  늦가을 단풍들이 뿜어내는 환상적인 빛깔에 마음까지 화사해지는 볕 좋은 날 <오장환 문학관>과 생가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했던(대학시절 전공은 생물학과) 방송통신대학의 국어 국문학과 학사 졸업 논문을 썼던 시인이다.  오장환의 [8.15 해방 이전 오장환의 시세계 연구-『성벽』과 『헌사』, 그 외 미수록 작품-]을 논문 제목으로 하여 열심히 썼기에 감회가 더욱 남달랐다. 40~5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졸업 논문이여서 아쉬움은 크다. 월북작가로서 해금된지 얼마되지 않아 자료가 충분치 않았고, 오장환에 대한 연구서조차 많지 않아 마음만 바빴던 추억도 떠오른다.

「The Last train」의 첫 시행에 마음을 뺏겨 결정했던 논문 주제였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시인 오장환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생가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문학관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작지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금동원) 

 

  ■오장환(吳章煥.1918.5.5∼1948)

     시인. 충북 보은군(報恩郡) 회북면 중앙리 출생. 안성보통학교(安城普通學校)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수학했으며(중퇴),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 동경 지산중학교 수료.    시지(詩誌) [낭만] [시인부락(詩人部落)] [자오선(子午線)] 등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1933년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하였다. 1936년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37년에는 [자오선] 동인이 되었다. 문단에 등단한 이래 1937∼47년 <성벽(城壁)> <헌사(獻詞)>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등 4권의 시집을 차례로 냈다.  8ㆍ15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문학 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오장환- <The Last Train >

 

  김재용 편 / 실천문학사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시인 오장환이 1918년 5월 15일 태어났다. 1951년 33세로 몰. 오장환의 생은 짧았지만, 스스로의 표현 대로 '단지 시밖에 모르는 병든 사내'( '강도에게 주는 시'에서)였던 그의 20여년 시력에는 모더니즘과 순수 서정, 계급의식이 차례로 나타난다. 식민지와 근대, 해방과 분단의 한국사가 그렇게 한 몸에서 드러나는 시인도 흔치않다.

   일제 말기 젊은이들의 술자리에서 가장 인기있었다는 시가 오장환의 'The Last Train'이다. 이봉구의 <명동백작>을 보면 해방 당시 오장환은 병석에 누워 있었고, 명동 술집에 모인 치들이 이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병든 서울'은 그가 해방 직후 쓴 시다. '그렇다. 병든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진실화해위가 독재정권이 조작한 간첩사건으로 지난해 결론지은 1982년의 '오송회' 사건은 당시 고교 교사 등이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을 돌려 읽은 것이 발단이 된 사건이다. 오장환의 시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된 건 1989년 월북문인 해금 이후다. 그의 고향 충북 보은에는 생가가 복원되고 문학관이 세워졌고 1996년부터 매년 오장환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2015,11.06.<오장환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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