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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금동원(琴東媛) 2015. 12. 28. 23:08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샘터(샘터사/ 2010년 01월 01일(2000년 출간)

 

 

 『내 생애 단 한 번』에서 저자는 혹독한 병마와 싸워오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정적인 삶을 보여주었던 이름 장영희. 이 책은 그녀가 우리말로 쓴 첫 수필집이자 「샘터」에 연재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호평받은 바 있는 글과 새로운 원고를 모아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주요 테마는 '생명의 소중함' '희망' '신뢰'의 메시지로,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편린들을 통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감동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시종 밝고 경쾌하며 친근한 내용으로 일관된 이 책에는 교수라는 호칭에 안맞게 장난 치기 좋아하고, 틈만 나면 공상에 빠지는 천진난만한 소녀같은 저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면 늘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정의로움과 작은것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참된 인간의 마음이 깨끗하게 투영되어 있다.

  또한 인간 장영희의 면모는 물론 장애인으로서 저자가 겪은 남다른 체험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에 대한 한없는 존경, 사회의 편견에 칼을 대는 날카로운 지적들이 다채롭게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면 떠올리는 암울하고 냉대받은 아픈 이야기들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적절한 유머와 위트로 승화시킨 저자의 문학적 재능과 여유는 그녀만이 갖는 독특한 색깔이자 아름다움이다.참을수 없었던 아픔들조차 건강하고 당당하게 전환시킬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독자들은 부족함이 또다른 희망을 낳는 디딤돌이 됨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한참 동안 들여다봐도 신통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꾸 책상 위에 높이 쌓여 있는 시험지로 눈이 가고 내일은 학생들에게 꼭 돌려줘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유언집을 침대에 내려놓고 다시 채점을 계속했다.

  이번 시험은 문제가 어려웠는지, 60점 이하의 학생들이 꽤 많았다. 점수가 나쁜 학생들의 시험지에다가 '꼭 내게 와서 면담할 것!(You've got to come and see me!)'이라고 쓰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내 유언은 바로 이 말, 'You've got to come and see me!'가 어떨까.' 아니면 퇴근할 때 과 사무실의 조교들에게 하는 말, '수고해라. 나 간다'는 어떨는지? 또는 학생들 시험 감독하다가 화장실 다녀올 때 하는 말, '커닝하지 말아요. 나 금방 돌아올테니.'는?
--- p.180-181

 

  질시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용서가 더욱 귀중하고, 죽음이 있어서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실연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더욱 귀중하고, 눈물이 있기 때문에 웃는 얼굴이 더욱 눈부시지 않는가.그리고 하루하루 극적이고 버거운 삶이 있기 때문에 평화가 값지고,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p. 48

 

  제각각 나에게 맞는 도수의 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을 보니,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희미하고 탐탁잖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못생겼다고 흉보며 사는 세상이 항상 시끄러운 것도 당연하다. 가끔 누군가 내게 행한 일이 너무나 말도 안 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며칠 동안 가슴앓이하고 잠 못 자고 하다가도 문득 '만약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꼭 이해하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동정심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그 대상이 나였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까짓거, 그냥 용서해 버리자'는 마음이 생기는...  --- pp.72-73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비슷한 우리들, 앞뒤로 보따리 하나씩 메고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앞보따리를 뒤적거려 보지만, 이렇게 보면 장점이 저렇게 보면 단점이고, 저렇게 보면 단점이 이렇게 보면 장점이다. 결국 장단점이 따로 없지만, 어차피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흘리신 적이 없었고, 그것은 이 세상의 슬픔은 눈물로 정복될 수 없다는 말없는 가르침이었지만, 가슴속으로 흐르던 '엄마의 눈물'은 열살짜리 딸조차도 놓칠수 없었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걷지 못하거나 보지못하는 자식을 업고 눈물같은 땀을 흘리며 끝없이 층계를 올라가는 어머니, 이 용감하고 인내심 많고 씩씩하고 하느님 같은 어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사랑과 응원을 보내며 보잘것없는 이글을 나의 어머니와 그들에게 바친다.--- p.111

 

  '나는 소년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커다란 공헌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에서는 여러분이 이미 언급했듯이,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일을 하느라 아주 바쁠 겁니다. 좋은 나라,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신없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그 사회에도 경쟁이 생기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혀 권력을 놓고 싸울 겁니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 이 눈먼 소년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자기 시간을 쪼개 그를 도와야 할 겁니다. 그러면 남을 돕고, 남을 위해 나의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교실이 조용해졌다. 진기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듣는 것은 많은 인내심을 요했지만, 말더듬 증상 때문에 그가 어렵사리 하는 말은 어쩐지 더욱 진지하고 진실되게 들렸다. 잠시 쉬었다가 진기는 다시 입을 열어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 p.103-104

 

  까짓 영어의 p와 f의 발음쯤 혼돈하면 어떤가. 영어는 기껏해야 지구상의 3분의 1정도 인구가 알아듣는 말이지만 불쌍한 노인을 보고 측은하게 느끼고 도와주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 누가 학문적인 자질 외의 다른 근거로 병진이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다고 비난한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내가 가르친 적이 없는, 아니 가르칠 자격이 없는 만국 공통어를 그렇게 능숙하게 구사한 병진이에게 A보다 더 좋은 학점이 있다면 그거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p.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살다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 2000/10/26 (smila)

 

  그 때 나는 전율처럼 개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 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 그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 그 눈, 그 눈은 오래 전 내가 본 킹콩의 눈, 바로 그 슬픈 눈이었다... 젊음의 용기로, 불굴의 의지로 삶을 한껏 껴안고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인수 앞에서 나는 스승으로서 철저한 무력감을 느꼈다.--- pp. 226-227

 

 

책 소개

 

  더 느리게 그러나 더 깊이 세상을 보는 시선
  오뚝이 수필가 故 장영희 교수의 첫 번째 에세이집
  병마와 싸우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 삶과 희망을 보여주었던 이름 장영희. 이 책은 번역가로서 이름을 먼저 알렸던 그녀가 처음으로 쓴 우리말 수필집이다. 월간 <샘터>에 연재하면서 이미 수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글들과 새로운 글들을 묶었다. ‘생명의 소중함’, ‘희망’, ‘신뢰’를 주요 테마로, 생활 곳곳에서 마주치는 편린들을 통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200명 문인들이 추천한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일상에서 건져낸 경쾌하고 참신한 맛의 글들

  많은 작가들이 소재의 궁핍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주변에서 보고 체험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의 소재가 된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느낀 것 등 이 책에는 저자의 생활반경과 체험에서 우러난 글들이 대부분이다. 거창한 문학적 주제를 거세한 대신 평범하고 소박한 글 속에 어디서도 찾기 힘든 가치와 깊이를 담고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발견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장영희 교수는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줄곧 목발에 의지해왔다. 그런데 그의 글 속에서 장애인이라는 열등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시종 밝고 경쾌하며 친근한 모습이다. 장난치기 좋아하고, 틈만 나면 공상에 빠지는 천진난만한 소녀 같다.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정의로움과 작은 것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참된 마음이 깨끗하게 투영되어 있다. 가난한 할머니를 도와준 제자에게 과감히 A+를 준 이야기, 부모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에 대한 존경, 장애인으로서 겪은 남다른 체험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사회 편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까지, 모두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승화시켜 다채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행간마다 눈물과 웃음이 묻어 있다. 이는 그녀만이 갖는 문학적 재능과 여유, 그녀의 글이 가진 독특한 색깔이자 아름다움이다. 견디기 힘든 아픔들을 건강하고 당당하게 전환시킬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독자들은 부족함이 또 다른 희망을 낳는 디딤돌이 됨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을 ‘아름다운 삶’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마음의 보물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희망과 신뢰의 메시지 

  이 책에서 저자는 영겁의 시간을 거쳐 만난 인연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불행한 삶에도 나름의 가치와 희망이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화려한 것보다는 낡고 더러운 것에 더 애착을 느끼고, 유치한 연애편지 속에서 인간의 가장 소박하고 진실어린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마음을 노래한다. 한 개인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울림이 큰 우리네 삶의 체취와 감상들이 반듯하고 따뜻하게 녹아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등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무미건조하고 습관화된 삶보다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해야 제맛’이라는 저자의 평소 인생관이 잘 묻어 있다.

  차분한 자기 성찰뿐 아니라 삶과 죽음의 의미도 따뜻하게 승화시키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맑은 빛깔과 소리의 파장이 마음속을 파고든다. 부족함을 불평하기 좋아하고, 팍팍한 일상에 매몰된 채 자신마저 잊고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반성과 성찰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잊고 있던 혹은 간과했던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필이면 왜 나만 불행하고 운이 없나’라는 불평 대신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기쁨이 주어졌을까’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면서 ‘무미건조하고 습관화된 삶’이 ‘아름다운 삶’으로 느껴진다.

  이런 것들이 바로 저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희망과 신뢰의 메시지다.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가치와 진실로 인간답기 위한 미덕들이 잔잔하게 녹아있는 이 책에서 잘 숙성된 저자의 문학적 향취와 함께 마음의 고향에 찾아든 듯한 평화와 기쁨에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00년 초판 발행되었던 책의 소장용 양장본이다. 

 [추천사] 
  나는 일찍이 장영희 님을 학생들로부터 사랑받는 교수, 부녀 2대에 걸친 영문번역가, 그리고 명 칼럼니스트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샘터>에 연재하는 글을 보며 독보적인 에세이스트라는 것을 추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쾌한 사고와 가식을 꿰뚫는 지성의 눈, 글의 행간에서 전해오는 참사람의 온기에 매료되어 내 자신이 열성독자가 되었다. 곧고 푸른 여인 장영희 님의 글이,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밭에 파종되어 엄동설한에도 푸르게 자라는 보리 같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주리라 믿는다. ―정채봉(동화작가) 

  뭔가 유별나거나 기이하기까지 하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글쓴이의 반듯함과 착함이 나에게는 더 믿음이 간다. 핸디캡을 숨기려고도, 그렇다고 과장되게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 성숙함에서 오래된 문학의 향취가 배어난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투리 조각천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안목에 따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각보가 되듯이……. 따뜻한 난롯가에서 이런 글을 읽는다면 더없이 마음이 훈훈해지리라. ―박완서(소설가

 

 저자: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번역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 ≪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아버지 故 장왕록 박사의 10주기를 맞아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번역서로는 ≪종이시계≫, ≪살아 있는 갈대≫, ≪톰 소여의 모험≫, ≪슬픈 카페의 노래≫, ≪이름 없는 너에게≫ 등 20여 편이 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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