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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금동원(琴東媛) 2016. 1. 6. 01:16

 

 

 

『기억 꿈 사상』-/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1875~1961)

-카를 구스타프 융 저/A. 야페 편/ 조성기 역/ 김영사

 

 

책소개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심리학의 거장이자 삶을 치유하는 영혼의 의사였지만 살아있는 세상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카를 융, 최후의 자서전이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 카를 융
  이 책은 융의 제자이며 여비서였던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으로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자서전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선명히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평생을 사로잡은 꿈, 죽음을 앞두고 경험한 환상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것을 분석하고 의식화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카를 융은 외적인 사건이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융의 견해에 따라 자서전은 내적 사건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카를 융 자신 생애의 특이성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작가소개

  Carl Gustav Jung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이다.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위스 바젤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1900년 취리히대학 부속 부르크흴츨리 정신병원의 E.블로일러 교수 밑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였다. 1904년경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제일 먼저 인식하고 연상실험을 창시하여, S.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을 입증하고, ‘콤플렉스’라 이름붙였다. 이어 1906년 정신분열병의 증상을 이해하는 데에 정신분석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1908년 4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개최된 최초의 국제정신분석학회 제창자가 되었으며, 이 회의에서 발행키로 결정한 기관지 《정신분석학 ·정신병리학 연구연보》의 편자(編者)로 뽑혔다. 1907년 이후에는 프로이트와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며 한 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였고,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여겼찌만 성격과 견해 차이로 인하여 5년만에 결별했다.
  그는 ‘리비도’라고 하는 개념을 성적(性的)이 아닌 일반적인 에너지라고 하였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의견이 대립되어,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경험한 강렬한 꿈과 환상 등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신화와 역사, 연금술에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자기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분석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모든 정신 활동의 원천으로 그 속에는 마음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된 마음을 실현하도록 촉진시키는 자가 조정의 중심핵이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즉,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 바 건강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에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왔다.
  만년에 융은 역사를 꿰뚫어보는 시사논평으로도 명성을 얻었으며, 1961년 85세를 일기로 퀴스나흐트에서 죽었다. 융은 심혼(心魂)의 의사(Seelenarzt)로서 자기실현의 가설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이 낳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사상(東洋思想)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東西)에 다리를 놓았으며, 새 천년(千年)에 인류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정신분석의 이론』, 『심리학과 종교』, 『영혼을 찾는 현대인』, 『심리학적 유형』, 『미발견의 자아』, 『심리학과 연금술』,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

 

역: 趙星基

  조성기는『라하트 하헤렙』『야훼의 밤』을 필두로 한 종교 소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랑』 『우리 시대의 소설가』같은 세태 소설 등으로 이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지만 이것과 별개로 고전 연구가이기도 하다.
1951년 3월 30일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여 부산중, 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시 카를 융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논문「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로 학위를 받았고,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응용한 「마음의 비밀」강연회를 학교,기업, 각종 단체에서 수십차례 개최했다. 대학 재학 중이 1971년 소설 「만화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으며, 1985년 「라하트하헤렙」으로 제9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1991년 중편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제1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프롤로그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아름다운 시간 - 대학시절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연금술을 발견하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여행
환상들
사후의 삶에 관하여
만년의 사상
회고

 

책속으로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이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p.48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 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가 메피스토텔레스를 단순한 놀이나 요술로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지나치게 신학적이요, 너무 경박하고 무책임한 일로 보였다. 괴테도 악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간교한 주장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다.---p.118

  <파우스트>가 나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그 문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닫힌 채로 있었다. 나는 소 두 마리가 도깨비마법에 걸려 그 머리들이 동일한 고삐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한 늙은 농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어린 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얘야, 그런 건 말하는 게 아니란다.”---p.201

  우선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아니마의 부정적 측면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 있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 앞에서 나는 좀 주눅이 들었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다르게 맺으려고 시도하여 내 환상의 기록을 그녀를 향한 나의 편지라고 간주했다. 이를테면 나의 의식과는 다른 관점을 취하는 나 자신의 어떤 부분에게 편지를 보내는 셈이었다. 그런데 나는 뜻밖의 특이한 회답을 받았다. 나 자신이 마치 한 여성적인 혼에 의해 분석을 받는 환자처럼 여겨졌다!---p.340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p.奔流)로 휘말려 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융의 사상과 생애를 완성하는 최후의 자서전.
  그의 사상세계로 들어가는 흥미진진한 입문서.
  이 자서전은 가히 융의 사상과 생애의 정수를 담았다고 할 만하다.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이던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대담을 한 결과 엮은 글을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보았다. 무의식의 깊숙한 밑바닥에 놓여 있는 자기(self)가 집단무의식을 담지한 원형의 세계라면, 보다 표면적인 자아(ego)는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이성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의 세계가 전부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중심은 아니다. 원형의 세계, 곧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그 매체는 바로 꿈의 상징들. 꿈은 나를 넘어선 세계와 나의 세계가 연결되는 지대,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는 지대, 문명화된 세계의 손상된 삶이 온전히 회복되는 지대인 것이다. 융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포착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 자서전에는 자신의 사상과 분석심리학을 형성해가는 융의 삶의 궤적이 감동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융은 유년시절에 이미,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는 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동시에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한다. 대수(代數)를 아주 자명한 것으로 큰소리치는 수학선생에게서 불안을 느낀 학창시절에는 성서와 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서 괴테의 <파우스트>와 칸트와 쇼펜하우어와 자연과학에서 답을 찾고자 했으며, 대학시절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궁핍해졌으나 니체를 읽고 마침내 정신의학의 길로 들어선다. 마술사와 같은 명의(名醫)로 명성을 얻어 수많은 환자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정신의학의 길을 개척한 과정,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신화와 환상을 통한 인간 마음의 진실에의 접근, 정신의 불멸과 맞닿은 ‘신의 문제’와 정신의 사멸과 맞닿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탐색, 연금술의 발견 등,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이룩한 한 위대한 인간의 가장 충실한 자기실현의 역사가 오롯이 드러난다.

  융의 자서전은 이전에도 몇 차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나, 심리학의 기초를 이루는 의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역사와 신화는 물론 신학과 연금술을 넘나드는 카를 융의 생애와 사상을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어실력뿐 아니라 인문 전 분야에 대한 소양, 정확한 한글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 카를 융처럼 신에 대한 갈등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번역에 둘도 없는 적임자인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는 카를 융 자서전 번역의 결정판을 내놓았다.

 

  융, 내 어두운 그림자와 대화하는 방법

  한겨레 | 정여울 문학평론가 | 2013-04-19

 

  그저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 세상 전체와 싸우는 듯한 고통을 줄 때가 있다. 아무리 지원병력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나만이 허허벌판에서 내 꿈을 위해 싸우는 느낌이 들 때. 이럴 때 어디선가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진짜 싸움’에는 어떤 원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원병력이 투입되는 순간 정신의 진정한 성장은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내게 이런 깨달음을 선물한 책은 바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이었다. 사실 융의 책은 숨겨놓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심리학의 손아귀에 내 정신의 해부를 맡긴다는 것이 왠지 굴욕적이었기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현미경이 허락도 없이 내 마음을 이리저리 파헤치는 느낌이었다. 심리학에 내 정신의 해부를 맡기다니. 그건 내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는 수치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무의식이 의식을 향해 꿈이라는 메신저로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는 융의 상상은 매혹적이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융은 이 멋진 자서전에서 남의 정신이 아니라 바로 자기 정신의 평생에 걸친 치유과정을 낱낱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융을 통해 내 진짜 두려움과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무리 가운데 탁월함을 인정받고자 애쓰는 습관을 강제로 학습해왔다. 평범함을 향한 과도한 평가절하, 특별함을 향한 지나친 신성화. 그런 이분법 속에서 우리는 ‘그냥, 나’가 되는 법을 잊어버린다. 나 또한 특별해지고 싶은 갈망과 평범함을 향한 두려움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 보니 내 진짜 불안은 탁월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남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자기세계를 갖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즉 1등을 못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이 두려움은 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과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나는 요새 내 가장 어두운 그림자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과거의 융 읽기가 내 그림자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대면하게 해주었다면, 다시 읽는 융은 이제 그림자를 구슬리고,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고, 그림자와 화해하는 법을 배우라고 속삭인다. 내 무의식의 그림자를 쌓아둔 창고에는 수십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 수치심, 콤플렉스, 뿌리깊은 비관주의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그림자들을 이성의 햇볕에 말린다 해도 그림자 자체가 소멸되진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모습이라도 자기 그림자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분명 우리를 훌쩍 자라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상처받은 사람만이 남을 치유할 수 있다’는 융의 메시지는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더 깊이 상처받을수록, 더 큰 치유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야말로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무의식의 그림자와 만나는 또 하나의 비결은 ‘기도’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매일 기도한다. 기도는 신께서 내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나’와 ‘기도를 듣는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몸짓이기에 아름답다. 타인에게는 결코 쉽게 들려줄 수 없는, 나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즈넉한 시간을 가꾸는 것, 그것이 기도의 매력이다. 기도는 신이라는 뜨거운 2인칭의 힘을 빌려 바로 자기 자신의 숨겨진 무의식과 대화하는 기술이 아닐까

 

모순과 역설 속에서 완성된 지자(智者) 칼 융, 그의 자사전 기억, 꿈, 사상

흔적 | 2015-04-16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8017082

 

  신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말한 칼 융에 대한 글을 읽고 그의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을 찾아다녔던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이다. 칼 융(Karl Jung: 1875 - 1961)은 내적 사건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의이다. 미출간이어서 번역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책이 번역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을 손에 들게 되었으니 감격과 아쉬운 마음이 함께 든다.

 

  옮긴이 서문에 의하면 융의 이 자서전은 19권이나 되는 전집에 포함되지 않았다. 자서전은 학문적인 저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저작에 대한 적응을 목표로 한다면 자서전 읽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 꿈, 사상‘이라는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융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인 네 살 이전의 사건에 대한 기억, 꿈, 자발적인 환상, 그리고 사상적 지형도 등 융의 전채적 면모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부모의 별거로 크게 힘들었던 융은 여성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에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졌다.(26p) 융은 스스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의 일종으로 명명한 꿈을 통해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넓은 초원의 한 가운데 위치한 교회당에서 남근상을 한 신을 만난 그 꿈은 일생 동안 융을 사로잡았다. 융은 혼자 있을 때 종종 자신이 돌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자신인지 아니면 자신이 돌이고 다른 사람이 자신 위에 앉아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사고 실험 같은 것이 아닌지?

 

  인간 세계에서 멀어져 자연의 본질에 침잠하는 데 희열을 느끼던 융은 어느 순간 갑자기 자아의식을 갖는다. 이는 융이 현실과 내면의 인격으로 분열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융 자신은 제 1인격과 제2 인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 두 인격(으로의 분열)은 의학에서 말하는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설명한다.(91p) 제1 인격은 현실에 관심을 갖는 인격이고, 제2 인격은 종교적 의미의 내적 인격이다.

 

  융은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두 인격으로 분열되었다고 고백한다. 융은 세상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신에 대해서도 양가적 감정을 가졌다. 융은 신을 위대한 위험으로 정의했다. 신에 대해 회의적이던 융은 성령 체험을 하고서도 하느님을 은총과 무서움의 이중적 존재로 생각했다. 융은 어머니도 이중적 존재로 생각했다. 이런 분열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2 인격을 생각할 때 제1 인격이 침울해졌다는 융은 대극적인 충돌로부터 생애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상을 체험한다.(134p) 그것은 북서풍이 세차게 불어와 파도를 일으키는 라인강에서의 일로 그 강 대신 알자스 지방이 물에 덮여 호수가 된다면 어떨까?란 생각과 함께 빠져든 환상이었다. 융은 의학을 선택하며 그것을 계시를 받은 결과로 설명한다. 융은 몇몇 꿈에 대해 계시와 같다는 말을 쓴다. 융은 꿈은 어디서 오는가를 자문한다. 융이 내린 결론은 꿈이 제2 인격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융은 말한다. 제2 인격은 일종의 유령, 세계의 어둠에 맞설 만큼 힘이 커진 혼(魂)이라고.(172p) 융은 하느님이 자신의 꿈 속에서 신학과 그것에 기초를 둔 교회를 부인한 한편 그 밖의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을 허용해주었다고 말한다.(180p) 융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아버지가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난 꿈을 꾸고 사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186p) 융은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감을 갖지만 호기심에 끌려 니체의 책들을 읽는다.

 

  융은 차라투스트라를 니체의 파우스트로 정의하며 자신의 제2 인격을 차라투스트라라 말한다.(199p) 융은 니체는 인생 후반에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자신은 그것을 소년 시절부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융은 결국 철학자들을 불신했다. 그것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한 철학자들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융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철학을 지양하고 정신의학으로 들어서게 한 것은 멀쩡한 통나무 식탁의 한가운데가 아무 일도 없이 갈라진 사건으로 융은 이를 계기로 유령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융은 정신의학 및 정신병에 대해 바른 인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아무도 따라오려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에 들어선 것이라 설명한다. 융은 그것을 숙명이라고까지 말한다.(211p)

 

  융은 정상적인 것의 병적인 변형들이 자신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융은 그런 것들은 정신에 관해 더 깊은 인식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융은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가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고 언급한다.(225p) 융은 같은 차원의 말을 또 이렇게 들려준다. “정신의학이 마침내 정신병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나는 늘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241p)

 

  “겉으로 보면 정신병 환자에게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243 페이지) 융이 주목한 부분은 정신병 환자의 내적 체험의 의미 있는 현상들이었다. 융은 자신의 분석에서는 이론적 전제들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은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라고, 모든 환자에게는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어떤 분석에서는 자신이 아들러학파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고 다른 분석에서는 프로이트학파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249p)

 

  융은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한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 자아가 외부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세계가 바라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253p) 이는 분석가가 된다는 것은 우선 분석가가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글과도. “정신치료의 효력을 위해 꼭 필요한 환자와 의사 간의 교감으로 인해 의사는 환자가 당하는 고통의 높이와 깊이로부터 받는 강렬한 인상을 외면할 수가 없다.”(269p)는.

 

  융은 프로이트가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이라고 여기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276p) 융이 신경증 사례에서 성욕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성욕은 부차적일 뿐이었다. 프로이트는 성욕의 다른 요인들을 무시했다. 물론 융은 “네가 프로이트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다면 사기(詐欺)”라는 제2 인격의 말을 듣고 프로이트를 변호하기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 융은 자신에게 성이론은 가능성만을 지닌, 증명할 수 없는 가설 즉 신비적 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281p)

 

  융은 프로이트에게 성욕은 질투하는 신의 대체물, 교리 같은 것이었다고 주장한다.(282p) 융은 (니체의 저서를 읽은 적이 전혀 없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니체의 권력원리의 우상화를 보상하는 정신사의 교묘한 책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285, 286p) 융은 프로이트가 근친상간 등의 꿈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집착해 그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309p) 융은 자신이 성의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의미를 넘어 정신적 측면과 신성체험적 의미를 탐구하고 설명하려 했다고 말한다.

 

  융은 성을 신의 이미지의 어두운 면으로 보았다. 융은 자신을 압도하는 환상에 저항감과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애썼다. 융은 자신 안의 여성성을 남성 무의식 속의 전형적이거나 원형적인 형상으로 파악해 거기에 아니마란 이름을 붙였다. 융은 자신을 한 여성적인 혼(魂)에 의해 분석을 받는 환자처럼 여기기도 했다.(340p) 융은 매일 저녁 글을 쓰는 데에 매달렸다. 그 자신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아니마)가 자신의 환상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미 적어 놓은 것은 아니마가 왜곡하지도 그것을 가지고 책략을 부리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341p)

 

  융은 무의식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 뒤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중개자인 아니마와 대화할 필요가 없어졌다.(343p) 융은 인생 후반기에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이지만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고 말한다.(351p) 융은 연금술이 그노시스와 미래 즉 현대의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말한다.(366p)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다. 융은 자신의 모든 저술은 숙명적인 강요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라고 말한다.(397p) 융은 동시성 현상을 일상적이라 할 만큼 겪었다. 동시성 현상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413p) 우리의 마음도 신체가 그렇듯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420p)고 말하는 융은 그 조상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그만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422p)

 

  융은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 사는 것에 익숙했다. 융은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무의식적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434p)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림자는 자아의 뒷면에 해당하는,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요소들이 모여 있는 층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것으로 나의 의식적 인격과는 상관이 없고 나의 전인격 즉 나의 자기(selbst)와 관계가 있다.(437, 438p)

 

  융은 자신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자기는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인격의 전체성 등을 의미한다. 융은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라 설명하며 그런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덧붙인다.(452p)

 

  융은 원형(原型)이 묘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융은 꿈의 예지능력을 가진 샤먼 같은 사람이었다. 융은 인도 여행 사실을 전하며 자신이 성자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도둑질처럼 여겨졌을 것이라 말한다.(488p)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488, 489p)는 융의 말은 단호하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491p) 융은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리지만 자신은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至福)이라고 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고 말한다.(525p)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533p) 말한 융은 환상과 꿈 등과 연관된 예지적 능력에 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융은 무의식의 가능성과 능력에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비평적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그런 무의식의 전달이 언제나 주관적인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인다.(539p) 융은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 단계로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 영원 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라 말한다.(551p)

 

  융은 어떤 원인으로 자신이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격렬한 충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그 본능이 신화적 표상을 찾아내기 위해 의식을 만든 셈이라고 말한다.(567p) 융은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라 말한다.(572p) 융은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이 그림자가 따른다고 전제하며 이제는 더 이상 악을 선의 결여라는 완곡어법으로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579p)

 

  일종의 메타노이아 즉 회심, 회개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악에는 물론 선에도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융의 진의는 분명하다. 극단을 피하는 것이 그것이다. 니르드반드바(nirdvandva) 즉 양쪽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선악의 대극에 더 이상 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580 페이지) 그러나 융은 선악이 상대적이라 해서 그 범주가 무가치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설명한다.

 

  일찍이 그노시스파로부터 제기된 “어디서 악이 나오는가?”란 문제에 대해 기독교 세계는 답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융은 인간 정신이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일깨운다.(586 페이지) 융은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597 페이지) 신화는 우리가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해진 것이다. 정신은 원형적 전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지 상태(tabula rasa)로서 출생시 새로 생기며 스스로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진부한 것으로 정의하며 융은 몸이 수백만년의 해부학적 전사(前史)를 가졌듯 정신체계도 그러하다고 설명한다.(610 p)

 

  융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하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 속으로 예상되는 일 뿐 아니라 그 외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한다.(625 페이지) 자신의 안에 데몬이 있었다고 말하는 융은 그것이 잠잠해진 곳에서만 사람들과 중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627p)

 

  융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는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이 자신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어리석음으로 많은 일을 후회하지만 그런 어리석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는 융,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하며 의미가 우세하여 모든 전투에서 이기기를 마음 졸이며 바란다는 융이다. 융은 세계를 거칠고 잔혹한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닌 세상으로 보았다. 모순과 역설 속에서 완성된 지자(智者)라는 말로 융을 수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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