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노의 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손재준 역/ 열린 책/ 원제: Duineser Elegien
-목차
기도 시집
형상 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마리아의 생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두이노의 비가
○책 속으로
P.119 :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늘을 해시계 위에 내리시고
벌에는 바람을 일게 하여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을 살찌게 명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남쪽의 날을 이틀만 더 내리시어
무르익게 하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이제
집 없는 자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혼자인 사람은 또 그렇게 오래 홀로 남아서
잠 못 이루고 책을 읽거나,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흩날리는 가로수 길을
무거운 마음으로 소요할 것입니다.
-『형상
시집』
P.162 : 사랑의 노래
너의 영혼에 내 영혼이 닿지 않도록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영혼을
너를 넘어 다른 것에로 드높일 수 있을까?
아, 나는 그것을 어둠 속 어느 잃은 것 옆에,
너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어느 남모르는 조용한 자리에 숨겨 두고 싶다.
그래도 너와 나를 스치는 모든 것은
두 현에서
한소리를 불러내는 바이올린의 활처럼
우리를 하나이게 한다.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펴져 있는 몸일까?
어느 연주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아, 달콤한 노래여.
-『신 시집』
P.444 : 제8 비가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는 단 한 번도, 단 하루의
날도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 들어가는 그 순수 공간을
만나는 적이 없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세계이다,
결코 부정이
없는 어디도 아닌 곳,
공기처럼 숨쉬고, 무한정이라고 알기에 탐내지 않는
순수한 것,
감시받지 않는 것이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릴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거기 몰입했다가 누군가에게 흔들려
깨어난다. 혹은
죽을 때 그것이 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죽음에 이른 사람이 보는 건 이미 죽음이 아니라
먼 곳이기 때문이다
… (중략) …
-『두이노의
비가』
○작가 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년 체코 프라하 태생.
하사관에서 장교로 입신하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소녀 취향을 갖고 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길러졌다가 1886년 아버지에 의해 육군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참담한 시련의 시기로 묘사되고 있는 이 시절에 릴케는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은 주로 감상적이고 미숙한 연애시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러한 경향은 1896년 살로메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
선회하게 된다. 특히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과 스위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깊은 정신적 영감을 바탕으로 초기시의 대표작
『기도시집』이 완성되었다.
그 밖에도 브릅스베데의 화가촌에서 하인리히 포겔러와의 만남, 1902년 파리 방문을 통한 로댕과의
만남은 『형상시집』,『말테의 수기』의 집필 동기가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신시집』은 사물시의 결정으로서 로댕과의 만남에서 얻은
조형 예술 세계 체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체류와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의 여행은 릴케
말년의 역작인 『두이노의 비가』,『오르포이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녹아들어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하는 존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 아프리카, 스페인, 북구 등을 떠돌며 끊임없는 방랑 속에서 살았고, 2천 편이 넘는 시와 단편소설, 희곡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1926년 12월 자신을 찾아온 여인에게 장미꽃을 꺾어 주려다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스위스 발몽에서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과 사물, 풍경과의 만남에서 그 내면을 깊이 응시하여 본질을 이끌어내고자 한 그는 폴 발레리,
T.S.엘리엇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시인의 반열에 오르며 20세기 독일 현대 작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역자: 손재준
1932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1957년 서독 정부 학술 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을 떠나 같은 해부터 4년간 뮌헨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듬해부터 4년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1964~1999년까지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를 맡고 있으며 한국 펜 번역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여정』,『관계』,『안행』(공저),『바람과 그림자』『, 종이꽃』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게오르크 트라클의『귀향자의 노래』, 헤르만 헤세의『헤세의 명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막스 프리슈의『 호모 파버』,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과『 공포의 전율』 등이 있다.
○책 소개
독일 시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평가받는 『신 시집』부터 인고의 산물이자 만년의 대작인 『두이노의 비가』까지…
삶 속에서 죽음을 노래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선집
릴케는 모든 시인 중의 시인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두이노의 비가』는 예술에 의한 예술의 극복인 작품이다.
-루돌프 카스너
이 책은 1899년부터
1922년까지 발표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여덟 권(『기도 시집』, 『형상 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마리아의
생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두이노의 비가』)에 수록된 시 중 170편에 이르는 작품을 선정한 시 선집이다. 생전 다작가였던
릴케가 세상에 남기고 간 시적 대업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릴케는 언어를 가진 우리가 지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 찬미하고
변용하는 것, 즉 영원한 정신세계로 옮겨 놓는 일이야 말로 시인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권의 시집에는 끝없는 고독과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서 나오는 비탄을 삶의 찬미로 승화시킨,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성의 주옥같은 시들이 담겨 있다.
『기도 시집』은 릴케가 기독교의
『시도서』에서 그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기도서 같은 유려한 영혼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제1부 수도사 생활의 서에는 신이 우주에 편재하며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어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라는 시인의 범신론적 사상이 짙게 배어 있다. 제2부 순레의 서에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성숙하는 생성되어 가는 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제3부 가난과 죽음의 서에는 파리에서 참된 가난과 위대한 죽음의 의미를 탐색하게
된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기도 시집』은 릴케 전기시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두이노의 비가』를 위한 본질적인 기조 역할을
한다.
『기도 시집』이 한 주제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연작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반면, 『형상 시집』은 독립된 개개의 주제를 갖는 시들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상 시집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외계의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와 조형화의 과정이 특징이며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뜬
시인을 만나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애송시로 읽히는 「가을」, 「가을날」도 『형상 시집』에 포함되어 있다.
『신 시집』은 독일 시사에서
가장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사물을 보는 법과 사물에 언어를 주어 직접 말을 하게 한다는 시인의 생각이 구현된 신 시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1902년 8월 『로댕론』을 쓰기 위해 로댕을 만나러 파리로 간 릴케가 그곳에서 로댕과 가까이 지내며 그에게 받은 영향으로 쓰기
시작한 사물 시 또한 『신 시집』 2권(별권)에서 볼 수 있다.
『후기 시집』에서는 릴케가 이승과 저승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세계이자
전체의 세계라는 의미로 칭한 세계 내면 공간에 대한 시가 많이 담겨 있다. 밤하늘의 별에서 진정한 순수와 영원의 의미를 찾고, 우리를 둘러싼
집이며 목장의 언덕과 저녁노을이 우리와 한데 어우러져 단일한 공간 속에서 하나가 되는 일체의 경지를 노래한 시집이다.
『진혼가』는 예술가와
현실 생활의 모순을 그리고 있다. 릴케와 교우하던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죽음을 기리는 릴케의 시에서는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더불어
예술가에게 작품의 완성이란 죽음과 일치한다는 릴케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아의 생애』는 릴케가 1912년 두이노 성에서 『두이노의
비가』의 첫 부분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곁들여 쓰여진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후에 릴케가 직접 밝힌 바 있듯이 치치안의 그림 등이 모델이 되고
있고 외적 동기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 표현 기법은 대체로 언어의 조형화를 표방하고 있는 『신 시집』을 따르고 있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릴케의 시가 손의 작업을 넘어서서 마음의 작업임을 깨닫게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순수와 절실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오르페우스의 연인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그린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를 의식함으로써 항상 불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끔 한다.
필생의 역작 『두이노의 비가』는 만년의 릴케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완성한 작품으로, 1912년 두이노 성에서 집필을
시작하여 1912년 뮈조트 성에서 탈고했다. 릴케는 이 작품에서 폐쇄된 인간의 세계가 아닌 전일(全一)의 세계이자 열린 세계의 절대적인 존재를
찬미하고 있다. 『두이노의 비가』는 오늘날까지도 릴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끝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소멸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는
길을 시적 변용의 방법에서 찾은 릴케는 내면을 향한 끊임없는 깨달음의 삶을 지향하고자 했다. 릴케가 모든 시인 중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생(生)에 대한 통찰과 생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성숙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시로 옮겨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릴케의 한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죽음을 잘 이해하는 자만이 삶을 위대하게 만든다.(yes24)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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