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서문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 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 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 풍경은 수직적인 의미의 중첩이며, 수평적인 의미의 이동이다. 그 중첩과 이동을 낳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표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 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내 충동의 굴절된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풍경이다.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 김현 평론집『말들의 풍경』 서문의 일부, P211
'詩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William Wordsworth/ 초원의 빛( Splendor in the Grass) (0) | 2016.01.13 |
---|---|
백석(白石, 1912 ~ 1996) (0) | 2015.12.23 |
’96세 문학소녀’… 2시간동안 詩 20편 줄줄 (0) | 2015.10.20 |
시인 김정환/ 공적인 죽음을 말하다 (0) | 2015.09.26 |
문단의 15년 '아몰랑' (0) | 2015.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