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1,2)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 민음사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선보이는 오르한 파묵 소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터키 대표작가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문학상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처음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2864일 동안 한 여자를 바라보며 살아간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이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서술방식으로 촘촘히 엮어져 있다.
1975년 터키 이스탄불, 부러운 것 없이 살아온 한 남자 케말은 시벨과의 약혼 준비로 바쁘다. 어느 날 그는 시벨의 선물을 사러 갔던 부티크에서 가난한 먼 친척의 딸인 퓌순을 만난다. 케말은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퓌순과의 밀회가 거듭되면서 케말은 자신과 비슷한 집안 출신인 시벨과 약혼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한편으로, 퓌순과도 계속 만나면서 삶을 즐길 생각을 가진다. 친척과 친구를 모두 초대한 성대한 약혼식. 행복해하던 케말은 퓌순이 하객으로 온 것을 보고도 그저 반갑기만 했다. 그러나 약혼식 다음 날, 만나기로 했던 시간에 퓌순은 오지 않았고, 그 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이 시작되고 만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내용이다. 케말은 퓌순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모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이 8년 동안 드나들었던 집을 사서 그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한다. 박물관의 이름은 다름아닌 '순수 박물관'.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들이 가득한 이 곳 박물관에서 케말과 퓌순, 그리고 그들의 모든 경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르한 파묵은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실제 전 세계 박물관 5,723군데를 다니며 자신의 박물관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고민했다고 한다. 또한 소설 속 케말이 ‘순수 박물관’을 만드는 바로 그 자리에 실제 '순수 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소설 속에는 이 박물관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2권 386쪽)이 들어 있으며,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 지도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작가소개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부유한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3년간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건축가나 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자퇴했다.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의 아들들』을 출간하여 오르한 케말 소설상과 <밀리예트> 문학상을 받았으며, 다음해에 출간한 『고요한 집』 역시 '마다마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받았다. 또한 1985년 출간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으로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는 뉴옥타임스 격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교수로 지내면서 대부분을 집필한 『검은 책』(1990)은 '프랑스 문화상'을 받았으며, 이 소설을 통해 파묵은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출간된 『새로운 인생』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내 이름은 빨강』(1998)은 현재까지 35개국에서 출간되었고,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2002), 이탈리아 '그란차네 카보우르 상'(2003),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2003)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정치 소설'이라 밝힌 『눈』(2002)을 통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소설을 실험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파묵은 2006년에는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검은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밖에 2005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평화상'과 프랑스 '메디치 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순수 박물관』(2008)은 파묵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였다. 그의 지독하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는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출간되는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거울 앞에 있는 작은 선반에서 퓌순의 립스틱을 보았다.
그것을 집어 냄새를 맡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장편소설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오르한 파묵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순수 박물관』(전2권)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27·28)으로 출간되었다.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 『검은 책』 등으로 이미 한국에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순수 박물관』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터키에서는 출간(2008년 8월) 당시, 초판 10만 부가 2주 만에 소진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이탈리아에서도 출간 2주 만에 5만 부가 판매되는 등, 출간되는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왔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오르한 파묵은 『순수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책에서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간 계속된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과 집착
-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1975년 터키 이스탄불. 부유한 집안, 잘나가는 회사,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애인, 이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케말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 없이 삼십 년을 살아왔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그럴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시벨과의 약혼식 준비로 바쁘던 어느 날, 케말 앞에 가난한 먼 친척의 딸인 퓌순이 나타난다. 그녀는 시벨의 선물을 사러 갔던 부티크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퓌순은 얼마 전 18세가 되었으며, 미인 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다. 케말은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 어머니 소유로 되어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로 퓌순을 끌어들이는데, 무슨 생각인지 그녀도 적극적으로 그의 제안에 따른다. 그녀와의 밀회가 거듭될수록 케말은 점점 더 행복해지고 삶은 더욱 풍부해지는 것만 같다. 자신과 비슷한 집안 출신인 시벨과 약혼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한편으로, 퓌순과도 계속 만나면서 삶을 즐길 생각이었다. 어느 날, 퓌순은 문득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케말은 시벨과 헤어지고 퓌순과 결혼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처럼, 약혼 후에도, 아마도 결혼 후에도, 계속 그렇게 퓌순과 만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친척과 친구를 모두 초대한 성대한 약혼식. 행복해하던 케말은 퓌순이 하객으로 온 것을 보고도 그저 반갑기만 했다. 그러나 약혼식 다음 날, 만나기로 했던 시간에 그녀는 오지 않았고, 그 후 어디서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케말은 퓌순이 사라진 후에야 그녀를 향한 사랑을 깨닫고 고통스러워 하며, 그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사랑을 잃은 고통은 마음이 아니라 육체마저 병들게 하고, 그는 퓌순과 사랑을 나누었던 아파트에서 그녀가 남기고 간 물건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결국 케말은 약혼녀 시벨에게 퓌순의 일을 고백한다. 시벨은 그것이 그저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과 시간을 보내면 케말의 병(퓌순을 향한 사랑)이 나을 거라 여겨, 둘은 결혼도 하기 전에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퓌순을 향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간다. 결국 둘은 파혼하고, 케말은 본격적으로 퓌순을 찾아다니는데, 마침내 어느 날 퓌순에게서 그를 초대하는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8년간의 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내게 있어 행복은 이처럼 잊히지 않는 어떤 순간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삶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처럼 선이 아니라, 이런 감정적인 순간들을 하나하나 놓고 생각하는 것임을 알면, 연인의 식탁에서 팔 년을 기다린 것이 조롱거리나 기행이나 강박관념처럼 보이지 않고, 그저 퓌순 가족의 식탁에서 보냈던 행복한 1593일의 밤으로 보일 것이다. 추쿠르주마에 있는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던 모든 날들을 - 가장 힘들고,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자존심 상하는 날조차 - 지금은 크나큰 행복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들이 주는 위로, 그리고 박물관
- “모든 사람들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을, 퓌순이 남겨 놓은 것들과 나의 이야기들과 함께 박물관에 전시해 설명할 수 있을 얰라고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순수 박물관』은 한 남자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케말은 사랑하는 퓌순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모으고, 전 세계 박물관 5,723군데를 다니며 자신의 박물관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고민한다. 또한 퓌순이 살았으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이 8년 동안 드나들었던 집을 사서 그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한다. 그리고 그곳에 전시될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책을 쓸 결심을 한 후, 그 책을써 줄 작가를 만난다. 바로 이 박물관의 이름이 ‘순수 박물관’이며, 이 책의 제목이 ‘순수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 박물관』은 ‘순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을 독자들이 보고 있다는 설정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를 들면 “퓌순은 내가 박물관 입구에 한 짝을 전시해 놓은 그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와 같이 소설 중간중간에 박물관 전시품에 대한 언급이 계속된다.
달빛 아래, 물건들 하나하나는 빈 공간의 일부인 양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뉠 수 없는 분자처럼, 나뉠 수 없는 어떤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순간들로 이루어진 선이 시간이라고 했던 것처럼, 물건들이 모여 선을 이루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작가라면 내 박물관의 카탈로그를 한 편의 소설처럼 쓸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케말이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은 그것에서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 여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의 머리카락과 손수건, 머리핀 등 그녀가 가졌던 모든 물건을 숨겨 놓고, 오랫동안 그것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담겨 있고 그 사람의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바라보고 또 만지면, 마치 그 물건에 어떤 위안의 힘이 있는 듯 사랑의 고통이 줄어들 뿐 아니라, 그 안에 쌓여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나의 박물관은 퓌순과 나의 모든 인생이고, 우리의 모든 경험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물건들을 보는 나의 시선은 수집가가 아니라 약을 바라보는 환자의 시선이었다. 퓌순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은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필요했을 뿐 아니라, 고통이 잦아든 후에는 다시 나의 병을 떠올리게 하여 이 물건들과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고통이 가벼워졌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 그 작가의 이름이 바로 ‘오르한 파묵’이라는 점이다. 소설 속 오르한 파묵은 몰락해 가는 집안의 아들로, 세상 물정도 모른 채 소설가가 된답시고 혼자 틀어박혀 글만 쓰는 남자로 묘사되는데, 실제 오르한 파묵과 완전히 일치되는 모습이다. 또한 오르한 파묵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전 세계 곳곳의 박물관을 찾아다녔고,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 케말이 돌아다녔다고 하는 박물관도 모두 오르한 파묵이 직접 가 본 곳들이다. 2008년 방한했던 오르한 파묵은 서울에서도 ‘리움 미술관’을 포함하여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오르한 파묵은 주인공이 수집했다는 물건들을 직접 모아 집필실에 그 물건들을 놓아두고,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물건들과 박물관의 의미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오르한 파묵은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 직접 ‘순수 박물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소설 속 케말이 ‘순수 박물관’을 만드는 바로 그 자리에, 바로 그 형태의 박물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는 이 박물관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2권 386쪽)이 들어 있으며, 박물관 지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케말이 꿈꾸던 박물관이 실제로 문을 열고, 『순수 박물관』을 읽은 독자들은 ‘순수 박물관’을 방문해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순수 박물관’은 2010년 8월말에 개관할 예정으로, 현재 막바지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독자리뷰] '지금' 사랑하지 못했던 나날들, 순수 박물관
겨우살이 | 2013-02-22/ http;//blog.yes24/document/7102870
오르한 파묵. 이름만 떠올려도 이스탄불과 역사가 먼저 떠오르는 작가. 특히 처음에 읽었던 <내 이름은 빨강>이 뇌리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터키와 이스탄불 여행의 로망을 갖게 했던 오르한 파묵. 이 책은 2006년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쓴 책인데, 예상 외로 사랑 이야기라 설레임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은 <순수 박물관>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죽는 날까지 사랑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제목과 같이 아름다운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재력가인 케말은 약혼 직전 퓌순을 만나 불장난 같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의 약혼식 이후 상처받은 퓌순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케말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퓌순을 잊을 수 없어 파혼을 하고 모든 것을 버린 케말은, 그녀의 자취를 찾으며 그녀가 남긴 물건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오랜 수소문 끝에 겨우 퓌순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는 상태. 그럼에도 케말은 포기하지 않고 8년 동안 거의 매일 퓌순의 집을 찾아가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그 곁에 머물려 한다. 이제 그는 퓌순 없는 시간을 생각할 수가 없고 그녀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구분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나중엔 부모 남편과 가족처럼 되니 뜨악할 일이긴 하다...
책을 읽으면서 케말이 퓌순만을 사랑해 왔다고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 사랑이라 생각하기 좀 힘들곤 했다. 퓌순은 결정적일 땐 버림당하고 필요한 땐 거부당한 불쌍한 여자기도 하다. 정작 바라는 것은 이루지 못한, 마지막까지 이해받지 못한 사랑이었다고 할까. 심지어 퓌순의 입장에서 항변하여 다시 써보고 싶기까지 했다는. 케말이 퓌순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했던 것은 진정 사실이지만, 순수하게 존재 자체의 모든 아름다움에 빠져있었다는 느낌이랄까. 퓌순도 케말을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피차 고통스러운 사랑이 아니었는지 생각이 든다.
특히 박물관을 만드는 데서 케말식 사랑은 최고봉을 이룬다. '박물관식 사랑'이라고 명명 지으면 딱일 것 같다. '지금'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공간으로 변한 박물관. 세상의 모든 박물관을 답사한 후 만들어진 퓌순 만을 위한 곳. '순수 박물관'은 케말이 퓌순을 사랑하는 동안 모아온 그녀에 대한 기억이 담긴 물건과 공간을 포함한 시각적인 모든 것들을 모아 재구성 해놓은 곳이다. 심지어는 퓌순이 피우고 남긴 담배꽁초 4213개 까지 있다. 누구나 사랑했던 사람이 남긴 물건 하나 둘 쯤은 간직하고 있겠지만 그는 '모든 것'을 간직하려 한다. 아마 코푼 휴지 조각까지 버리지 않았을 거다, 케말이라면.
소설에서 케말은 죽기 전 소설가 오르한 파묵 씨에게 의뢰하여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동시에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을 순수 박물관으로 초대한다. 그는 이 박물관을 돌아보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자신이 매우 행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 실제로 이 순수 박물관은 지난 2010년 작가의 생일에 이스탄불 시내에 오픈되었고, 이 입장권에 도장을 받으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이스탄불에 가게 되면 들려야 하나?
역시 참 재미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집착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근원은 뭐였을까 하는 생각에 잠깐 섬칫 했다는. 오르한 파묵식의 사랑은 가히 지독하고 단 하나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사랑이다. 케말의 사랑 방식에 치를 떨곤 했으나 그래도 책의 마지막 파트에서 '순수 박물관'을 만들어 가던 내용을 읽으며 매혹 당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끝을 보고픈 맘에 책을 놓지 못해 또 지난 밤잠은 안녕이었던 시간. 그렇게 나도, 케말을 이해해 본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면혁명 / 아리아나 허핑턴 (0) | 2016.10.11 |
---|---|
그 쇳물 쓰지 마라: 댓글시인 제페토 (0) | 2016.09.27 |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0) | 2016.09.23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0) | 2016.09.16 |
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0) | 2016.09.12 |